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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57

거짓말 - 한국어

거짓말(嘘)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6) 번역 : 홍성필 “전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또 갑자기 무슨무슨 주의다, 이런저런 주의다 하면서 한심하게 소란을 떨며 연설 같은 짓도 하고 있지만, 저는 어딘지 모르게 믿을 수가 없어요. 주의도 사상도 쥐뿔도 필요 없지요. 남자는 거짓말을 그만두고, 여자는 욕심을 버린다면, 그걸로 이미 일본이 새롭게 건설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집이 불에 타, 츠가루(津輕)에 있는 생가에 얹혀 살게 되어, 우울하고 재미가 없어, 어느날 찾아온 초등학교 동창생이며, 이제 이 동네의 명예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화풀이 섞인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명예직은 웃으며, “예,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좀 반대가 아닌가요? 남자가 욕심을 버리고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

향응부인 - 한국어

향응부인(饗応婦人)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2) 번역 : 홍성필 사모님은 본래부터 손님들에게 어느 때나 신경 써가며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셨으나, 아뇨, 그러나 사모님의 경우 손님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손님을 두려워한다고 해도 될 정도셨으며, 현관에 초인종이 울리고 우선 제가 나간 후, 손님의 성함을 전해드리려 사모님 방에 들어가면, 사모님은 벌써 이미 독수리 날개 소리를 듣고 순식간에 날아가는 한 마리의 작은 새와도 같은, 이상하고도 긴장된 표정을 하고 계시며, 머리를 빗고 옷고름을 단정히 한 후 벌떡 일어나서, 제 말이 절반도 끝나기 전에 복도로 달려 나가시고는 현관으로 가서 재빨리 우는 듯하기도 웃는 듯하기도 한, 피리소리와도 같은 신기한 소리를 내며 손님을 맞고, 이미 그 때부터 정신착란을 ..

금주의 마음 - 한국어

금주의 마음(禁酒の心)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3) 번역 : 홍성필 나는 금주를 하려 하고 있다. 오늘날의 술은 매우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옛날에는 이것으로 이른바 호연지기를 키웠다고 하나, 지금은 그저 정신을 경박하게 만들 따름이다. 요즘 나는 술을 지극히 증오하고 있다. 적어도 생각 있는 인물이라면 이제 단호히 술잔을 박살내어야만 한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자, 얼마나 그 정신, 인색하고 치사해지고 있는지, 한 되쯤 되는 배급주 술병을 15등분하여 눈금을 긋고, 매일 정확하게 한 눈금씩 마시고서, 간혹 그걸 넘어서서 두 눈금을 마셨을 때는, 즉 한 눈금만큼 물을 더해 병을 옆으로 껴안고 진동을 가하여 술과 물, 두 놈들로 화합발효를 꾀하는,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또한 배급..

직소 - 한국어

직소(駆込み訴え)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0) 번역 : 홍성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으리. 그 사람은,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예. 못된 놈입니다. 나쁜 사람입니다. 아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살려둘 수가 없습니다. 예, 예. 차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을 살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원수입니다. 예, 모든 것을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산산조각을 내어 죽여주십시오. 그 사람은 제 스승입니다. 주인입니다. 하지만 저와 동갑입니다. 서른 넷입니다. 저는 그 사람보다 불과 두 달 늦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대단한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런 큰 차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얼마나 짓..

일등 - 한국어

일등(一燈)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0) 번역 : 홍성필 예술가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종족이다. 기를 쓰고 새장 하나를 들고 우왕좌왕한다. 그 새장을 빼앗기면 그들은 혀를 깨물고 죽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빼앗지 말아주었으면 하고 있다. 누구라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다. 어떻게든 밝게 살아가고 싶다며 열심히 노력한다. 옛부터 예술에서 일등품이란 늘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내하며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었다. 우리들 중에서 모든 노력은 그 일등품을 만드는 일만을 향해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는 그곳에 도달하고 싶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벼랑 끝에 앉아 우리들은 그 일을 위해 노력해왔을 터였다. 그것을 계속해가는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신으로부터 받은 새..

I can speak - 한국어

I can speak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괴로움은 인종(忍從)의 밤. 단념하는 아침. 이 세상이란 단념하는 훈련인가. 쓸쓸함을 참는 것인가. 그리하여 세월은 벌레한테 먹혀가고 행복도 누항(陋巷) 속에서 얻을 수 있으려나. 나의 노래, 말을 잃고 잠시 동경에서 무위도식하여, 그러는 동안 무슨 노래가 아닌, 말하자면 ‘생활 속에서의 혼잣말’이라는 것을 끄적거리기 시작하여, 자신의 문학이 나아갈 길을 조금씩, 자신의 작품에 의해 뭐, 이 정도면 될까? 라며 다소 자신감과도 같은 것을 얻고는 예전부터 복안으로 가지고 있던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년 9월, 코슈(甲州)의 미사카(御坂) 고개 정상에 있는, 텐카자야(天下茶屋)라고 하는 찻집 2층을 빌려, 거기서 조금씩 그 일을..

피부와 마음 - 한국어

피부와 마음(皮膚と心)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작은 콩알만한 두드러기가 왼쪽 유방 아래에 있어, 자세히 보자 그 두드러기 주변에도 조금씩 작은 두드러기들이 마치 이슬이라도 뿌려진 것처럼 퍼져있어서, 하지만 그 때까지는 가렵지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보기가 싫어 목욕탕에서 젖 밑을 타월로 세게,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비볐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와서 화장대 앞에 앉아 가슴을 피고 거울에 비쳐보았더니 징그러웠습니다. 목욕탕에서 제 집까지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며, 그 새에 가슴 밑에서 배에 걸쳐 손바닥 두 개 정도의 넓이로 새빨갛게 여문 딸기처럼 생겨있어, 저는 지옥을 보는 듯하여 제 주변이 점점 캄캄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지금까지의 저와는 달라졌습..

불꽃놀이 - 한국어

불꽃놀이(花火)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2) 번역 : 홍성필 소화(昭和) 초기, 동경에 있는 한 가정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이다. 요츠야(四谷) 구 모 번지 모 호에 츠루미 센노스케(鶴見 仙之助)라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서양화가가 있었다. 그 무렵 이미 50을 넘었었다. 동경에 사는 의사 아들이었으나 젊었을 때 프랑스로 건너가 르노와르라는 거장에게 사사하여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와서는 일본 화단에 있어서 상당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부인은 무츠(陸奧) 지방 출신이다. 교육자 가정에 태어나, 아버지가 전근을 명 받을 때마다 가족도 함께 이사하며 여러 곳으로 옮겨 다녔다. 그 아버지가 동경의 독일어학교 주사(主事)로 영전(榮轉)하여 온 것은 부인 나이 17세이던 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

황금풍경 - 한국어

황금풍경(黄金風景)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나는 어렸을 때 그리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식모를 괴롭혔다. 나는 게으른 일에는 질색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식모를 특히 괴롭혔다. 오케이(お慶)는 게으른 식모였다. 사과 껍질을 깎게 해도, 까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 번, 세 번씩 손을 멈추고는 ‘야!’ 하고 그 때마다 따끔하게 주의를 주지 않으면 한 손에는 사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채로 언제까지나 멍하니 있는 것이다. 머리가 좀 모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았으나 어린 마음에도 볼품이 없고 이상하게 마음에 거슬려 “야, 오케이, 하루는 짧다구” 라며 어른 흉내를 내..

가정의 행복 - 한국어

가정의 행복(家庭の幸福)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8) 번역 : 홍성필 '관료가 나쁘다'는 말은 이른바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게'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어딘가가 좀 부족한 듯하기도 하고 진부하여 바보같이 느껴져서, 내게는 '관료'라는 족속의 정체는 어떤 것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나쁜 건지 도무지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논외, 관심 밖, 이런 심정에 가까웠다. 즉, 관료는 목에 힘을 준다, 그것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그러나 민중들도 치사하고 더럽고 욕심 많고, 배신도 하며 쓸모 없는 인간들도 많으므로 말하자면 피장파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관리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학업에 전념하여 커감에 따라 입신출세, 오로지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며 근검절약, 친구한테 구두쇠라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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