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결단 제15회
한 마디, 단 한 마디라도 좋으니 술 담당관께 말씀을 드리고 싶었소. 이 요셉을 잊으셨느냐고, 이 요셉을 진정 잊으셨느냐고 한 마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소.
하지만 방법에 없었지. 속수무책이오. 여기에 계실 때에는 내 도움을 필요로 하고 계셨으나, 지금은 폐하를 바로 곁에서 모시는 지체 높으신 분이시고, 반면에 나는 모시고 있던 주인의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쓴 채로 투옥된 노예신분이지. 죄인인 나로서는 구름 위에 계시는 듯한 분을 뵐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기도를 뿐이었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기도를 드리곤 했지. 그러나 현실 속에서도 꿈 속에서도 아무런 답도 보이지 않았네.
미래도 희망도 자유도 없소. ‘기다림’이라는 것은 아픔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나날이었소. 나는 그저 ‘기다림’이라고 하는 아픔을 참아내고 있었지. 마치 형들로부터 던져진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때 느꼈던 무력감이 되살아났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더군. 기다림이라는 것이 고통이라면 이를 치료하는 약을 찾아낼 수가 있었소. 그것은 ‘망각’이오. 잊어버리는 것. 그래, 술 담당관도, 그 분과 맺은 약속도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소. 술 담당관이 나를 잊으셨다면, 나도 잊을 수밖에 없지 않소이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오.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면 나도 잊으면 그만일세. 안 그런가. 망각은 언젠가 나를 평안하게 해주리라 믿기로 했네.
시간은 흘러가고 계절은 변해갔네. 감옥에는 술 담당관이나 요리 담당관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 들어오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갔소. 술 담당관처럼 회복된 사람들도 있었으나 요리 담당관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네.
내 앞에는 반복되는 시간, 반복되는 계절, 반복되는 일상이 있을 뿐이었소. 하나님은, 그래,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계셨네. 그 침묵은 칠흑과도 같은 감옥의 어둠보다도 깊게만 느껴졌소.
그러나 운명의 날, 그 날은 갑자기 찾아왔소. 간수장이 서둘러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네. 감옥 안에 그가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소. 놀랍게도 폐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이 아닌가. 이 요셉을 찾고 계시다는 말일세.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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