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요셉의 재회

요셉의 재회 - 제1장 결단 제11회

관 리 인 2020. 3. 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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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결단 제11회

 그리고 3일이 지났소. 감옥에 갇히고 난 후, 아니, 이집트로 끌려온 이후 그 3일은 대단히 특별했소. 그렇지. ‘기다림’이라는 것을 내가 처음으로 맛본 날이라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다림’이라는 경험을 해본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더군.
 철이 든 이후 나 자신의 인생은 거기에 없었소. 노예라는 신분인 내게 무슨 힘이 있었겠소. 아무런 결정권도 아무런 선택지도 없었지.
 자유를 배우기 전 복종을 배웠소. 웃음을 배우기 전 주인 안색을 살피는 것부터 배웠네. 입 열기를 배우기 전 입을 다물고 귀 열기를 배웠소. 내 주장을 하기보다도 뒤로 물러서는 것부터 배웠던 것일세. 모든 것은 강제로 시작해서 강제로 끝났지. 나 자신을 생각하기에 앞서 내 주인님을 위해 움직여야 했었기에 말이오.
 그런 나에게 ‘기다림’이란 사치였네. 내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찌 내일을 꿈꿀 수가 있었겠는가.
 ‘기다림’이란 미래를 뜻하는 것.
 ‘기다림’이란 소망을 뜻하는 것.
 ‘기다림’이란 자유를 뜻하는 것.
 그러나 미래도 소망도 자유도 없던 나는 기다림이 용납되지 않는 삶, 기다림을 잊었던 삶이었지. 그러나 술 담당관의 꿈을 듣고 3일 동안은 ‘기다림’이라는 쾌감을 맛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네.
 기다린 이유를 말하자면, 내 꿈의 해석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소. 어렸을 때 꾼 꿈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네. 어떻게 달성될 것인지, 언제 성취될 것인지도 알 수 없소. 당시는 솔직히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꿈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이슬이나 안개처럼 사라질 부질없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닐세. 3일이란 말이오. 술 담당관의 꿈도 떡 담당관의 꿈도 모두 ‘3’을 가리키고 있었소. 그 꿈의 해석에 대해서는 물론 확신이 있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되는가를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외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닐세. 이번 꿈이 해석대로 성취된다면 나는 다시 한 번 ‘기다림’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오. 술 담당관의 꿈 해석이 진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먼 옛날, 히브리 땅에서 아버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꾸었던 꿈도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게 되네.
 아아, 또다시 기다릴 수 있소. 그렇지. 기다릴 수 있소. 기다릴 수 있게 되단 말이오. 미래를, 소망을, 그리고 자유를 얻을 길이 열리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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