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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24

짧은 백일몽 - 한국어

짧은 백일몽 홍성필 (1996) 1. 그리 맑은 날은 아니었다. 일기예보는 365일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대기가 불안정하므로......' 라고 시작하여 오늘도 일교차가 심하단다. 화창한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오랜만에 바깥 공기도 마실 겸 점심을 대충 때우고 집을 나섰다. 특별한 행선지를 정해놓지 않은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머리 속에서는 정신없이 매연을 몰고 다니는 시내버스가 오간다. 믿을 수 없는 정거장 표지판, 눈이 나쁘거나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만큼 숨어 다니는 시내버스, 지구력보다는 순발력과 날렵함을 겸비하여야만 비로소 탑승에 성공할 수 있는 전혀 대중적이지 못한 대중교통수단. 버스를 탄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안내방송을 들어봤자..

홍 의사의 추억 - 한국어

홍 의사의 추억 홍성필 (2008) 나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홍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홍 의사님’이나 ‘홍 박사’ 또는 ‘닥터 홍’도 아닌 그는 언제나 ‘홍 의사’였다. 물론 의사선생님이다. 이 ‘홍 의사’라는 단어가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어머니는 그를 ‘홍 의사님’도 아닌 그저 ‘홍 의사’라고 하셨다.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이 2008년이니 자그마치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여기는 아버지 생가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어머니를 만나 혼인을 하시고는 계속 서울에서 지내셨으나, 어머니의 산달이 다가오자 “자식은 내 고향에서 낳아야 한다”는 아버지 주장에 못 이겨, 결국 그 곳으로 내려가 시집..

이혼식 - 한국어

이혼식 홍성필 (1998) 등장인물 : 김덕길 노인 김영선 : 김덕길 노인의 3녀 김대식 : 김덕길 노인의 장남 경혜선 : 김대식의 처. 이옥순의 외동딸 이옥순 : 경혜선의 모 윤수복 노인 : 김덕길 노인댁 이웃 백함순 (백씨): 윤수복 노인의 처 명희, 윤숙, 연경 : 영선의 대학 동창 우체부, 순경, 하객, 사회자,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제 1 막 199x년 4월 1일 아침 김덕길 노인 집 무대 우측에 김덕길 노인댁 거실이 보이며, 좌측에는 현관이 있고, 현관 좌측에는 앞뜰이 있다. 김덕길 노인댁 거실의 벽은 뚫려 안이 보인다. 정면에는 김덕길 노인의 서재로 통하는 입구가 있으며, 우측에 침실 입구가 있고. 그 사이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서재 입구 앞에는 쇼파가 하나, 침실 앞과 맞은..

홍성필/이혼식 2018.05.03

열리지 않는 금고 - 한국어

열리지 않는 금고 홍성필 (1997) 1. '조금 흐린 날씨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리 상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뜬 후 처음 든 생각이다. 그 다음은 가로수가 양쪽 길가에 끝없이 늘어선 시내 어느 한 거리를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기분 좋게 밖으로 나갔을까.' "미경아, 아무리 일요일이라도 그렇지. 넌 언제까지 자고 있니? 어서 일어나지 못해. 빨리 씻고 밥 먹어라." 필요 이상으로 자서 그런지, 더 이상 잠이 오지도 않았지만 왠지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있고 싶었다. 이왕이면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일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아직 자고 있는 척을 했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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