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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쿠 36

투쟁 - 한국어

투쟁 (闘争)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K군. 친절한 문안 편지 반갑게 받았네. 나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장례식이다 뭐다 하며 매우 분주했으나 간신이 2~3일 정도 한가해졌기에 낙심하고 있을 무렵 자네 편지를 받고는 눈물겨운 가격을 느꼈다. 자네 말대로 모오리 선생님을 잃은 우리 법의학교실은 암흑이다. 뿐만 아니라 모리 선생님을 잃은 T대학은 눈에 띄게 적적해졌다. 그리고 또한 모오리 선생님을 잃은 일본 학계는 갑자기 힘이 빠졌다. 전에 가리오 박사님을 잃고 지금 다시 모오리 선생님께서 떠나시다니, 이 무슨 일본의 불상사인가 말이네. 모오리 선생님과 가리오 박사님께서는 일본정신병학계의 쌍벽이었을 뿐만 아니라, 두 분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이셨다. 그 두 분..

죽음의 키스 - 한국어

죽음의 키스 (死の接吻)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6) 번역 : 홍성필 1. 그 해 더위는 각별했다. 어떤 이는 60년만의 더위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600년만의 더위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6만년만의 더위라고는 하지 않았다. 중앙기상대 보고에 의하면 어느 날 최고온도는 화씨 120도였다. 섭씨가 아니라 다행이다. “중앙기상대 일기예보는 절대 신용할 수 없으나 기온 정도는 믿을 수 있겠지.”라고 신천옹(信天翁:바보새) 생식기를 연구하고 있는 가난한 모 대학교수가 비꼬면서 말했다고 한다. 도쿄(東京) 시민은 치장한 여성들을 포함해서 큰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열사병에 걸려 죽은 자가 하루에 30명을 넘었다. 하루에 40명 정도 인구가 줄었다고 해서 일본은 끄떡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매우..

잘못된 감정 - 한국어

잘못된 감정(誤った鑑定)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늦가을 밤 여느 때와 같이 내가 법의학자 브라이언 씨를 브롱크스에 있는 저택으로 찾아가자 그 분은 새로 나온 어떤 탐정소설 잡지를 읽고 있었다. “탐정소설가라는 건 지극히 엉터리를 쓰는군요.”라고 브라이언씨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네? 무슨 말씀이죠?”라고 나는 매우 당황하며 되물었다. “지금 조지 잉글랜드가 쓴 ‘혈액 제2종’이라는 탐정소설을 읽은 참입니다. 그 속에 나오는 의사가 혈액에 의한 부자간의 감별법을 논하고 있는데 실로 황당한 말을 하고 있어요. 한 번 들어보세요. 이렇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혈액을 한 방울씩 채취하여 그것은 진동기 속에 넣고 섞으면, 만약 정말로 부자지간이라..

육종 - 한국어

육종 (肉腫)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6) 번역 : 홍성필 1. “안타깝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요.” 나는 윗몸을 벗은 사내 오른쪽 어깨에 난, 어린 아이 머리만한 종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라고 의자에 앉은 사내는 가늘고, 그러나 저력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6개월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눈 딱 감고 오른팔을 떼어버렸다면 목숨은 건졌겠지만, 저 같은 노동자가 오른팔을 잃는다는 건 목숨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기에 어떻게든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절에도 점쟁이도 찾아가보고, 여러 온천도 돌아봤으나 종양은 계속 커갈 뿐이었습니다. 이제 안 되겠습니다. 더 이상 살려고 애를 쓰지 않을 겁니다…….” 곁에 서 있..

유전 - 한국어

유전(遺伝)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어떻게 해서 제가 형법학자가 되었냐고요?” 마흔을 넘은 K 박사가 말했다. “글쎄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바로 이 상처 때문입니다.” K 박사는 정면 좌측 목에 6cm 정도 되는 흉터를 가리켰다. “결핵 수술이라도 받으셨나요?” 나는 무심코 물었다. “아뇨.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쉽게 말해, 강제로 동반자살을 당할 뻔한 흉터입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그리 놀라실 일은 아닙니다. 젊었을 때는 여러 일이 일어나는 법이죠. 아무래도 호기심이 많은 시기다 보니 때로는 그 호기심이 화를 부르기도 하고요. 이 상처도 호기심 때문에 입은 것이랍니다.” K 박사는 잠깐 멈췄다..

어리석은 자의 복수 - 한국어

어리석은 자의 복수(痴人の復讐)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기이한 괴기와 전율을 찾아 조직된 ‘살인구락부’ 정기모임에서, 오늘 저녁은 주로 ‘살인방법’이 화제가 되었다. 회원은 남자 13명. 명칭은 ‘살인구락부’라도 살인을 실행하는 것이 아닌, 살인에 관한 자신의 경험(만약 있다면)을 이야기하거나 충격적인 살인사건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이 구락부의 주된 목적이다. “절대로 처벌받지 않는 살인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라고 회원 A가 말하자, “그것은 죽이려고 하는 인간이 자살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즉석에서 회원 A는 대답했다. “하지만 자살할만한 사정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지 않을까요?” 라고 A. “어렵지만 무엇보다 실력에 달렸겠..

어리석은 자의 독 - 한국어

어리석은 자의 독(愚人の毒)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여기는 XX 경찰서 신문실(訊問室)이다. 미지근한 바람이 가끔 거리의 먼지를 날리고 있을 뿐, 열린 창문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한여름 오후이다. 지금이라도 벽시계가 멈춰버릴 것만 같은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세 명의 정장차림을 한 신사가 책상 한 쪽에 나란히 앉아 가끔 부채를 부치며 잠시 후 들어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면에서 왼쪽에 자리 잡은 세 명 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인 쓰무라(津村) 검사는 이마가 넓고 눈이 날카로우며 수염이 없다. 가운데 백발 섞인 머리를 한 사람이 후지이(藤井) 경찰서장, 서장 오른 쪽에는 벗어진 머리를 금테안경과 턱수염으로 장식하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법의학자로서 유..

안락사 - 한국어

안락사(安死術:안사술)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6) 번역 : 홍성필 이야기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안사술(安死術)이 무슨 뜻인지를 잠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안락하게 죽도록 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영어에서 Euthanasia을 번역한 것입니다. “안락하게 죽도록 하는 방법”이란 두말 할 필요 없이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질병이라면 죽는 과정에 있어서 환자를 불필요하게 괴롭히지 않고 주사나 약 또는 그 외의 방법으로 가급적 고통을 줄이고 안락하게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유서네이지어’는 로마 시대에 빈번하게 행해졌다고 하며,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 중에서도 안사술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가 적혀있다고 합니..

안마사 - 한국어

안마사(안마:按摩)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콜록콜록. 나이 든 안마사는 그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그가 피우는 담배 연기 때문에 얼굴을 찌푸렸다. 고개를 조금 재치고 목과 오른쪽 어깨 각도가 60도 정도인 것을 보니 선천적인 맹인처럼 보인다. 교외에 있는 겨울밤은 고요하다. “선생님은 담배를 무척 좋아하시나봅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열 개비씩이나 태우시니 말이에요.” 그는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 난 니코틴 중독이라 온몸이 뻐근해서 안마사가 지나갈 때마다 안 부를 수가 없소. 니코틴 중독을 고칠 방법이 없는지 모르겠더군.” 그는 전형적인 중년 니코틴 중독자 특유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잎담배를 입에서 댄 체로 말했다. “그야 선생님. 눈알..

신체검사 - 한국어

신체검사(체격검사 : 体格検査) 고사카이 후보쿠 (1927) 번역 : 홍성필 1. “또 입학시험으로 젊은이들이 뼈를 깎는 고생을 하는군.” 손님인 후지오카(藤岡)는 측은하게 말했다. “정말 딱한 일이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과로해서 고등학교 같은 데에서는 기껏 입학해도 곧바로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라고 저는 맞장구를 쳤습니다. “고민한 끝에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학문이 증오스럽기까지 해.”라고 후지오카는 지극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동창이었던 후지오카는 24~5년 만에 저를 찾아왔는데 문득 말하다가 입학시험까지 주제가 흘러갔습니다. 올해 추위는 여전히 이어지고 춘분도 지났는데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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