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검사(체격검사 : 体格検査)
고사카이 후보쿠 (1927)
번역 : 홍성필
1.
“또 입학시험으로 젊은이들이 뼈를 깎는 고생을 하는군.”
손님인 후지오카(藤岡)는 측은하게 말했다.
“정말 딱한 일이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과로해서 고등학교 같은 데에서는 기껏 입학해도 곧바로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라고 저는 맞장구를 쳤습니다.
“고민한 끝에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학문이 증오스럽기까지 해.”라고 후지오카는 지극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동창이었던 후지오카는 24~5년 만에 저를 찾아왔는데 문득 말하다가 입학시험까지 주제가 흘러갔습니다.
올해 추위는 여전히 이어지고 춘분도 지났는데 겨울옷을 벗을 수도 없을 정도였으나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은 어딘지 모르게 봄기운이 있는 것처럼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후지오카는 초등학교 때 매우 기운이 넘치고 쾌활했으나 그 쾌활함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러나 입학시험 이야기가 되자 후지오카는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아까부터 그 점이 이상했는데 제 궁금증을 알아차렸는지,
“사실 나도 입학시험에 있어서는 쓴 맛을 봤어.”라며 설명하듯이 후지오카는 말했습니다.
“뭐?”라고 저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쓴 맛이라니?”
“아니, 뭐 전혀 말이 안 되는 바보 같은 일이야. 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쿄에 있는 I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육군사관학교를 지망했거든.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지 뭔가…….”
“자네같이 체격 좋은 사람이 말이야? 어디가 안 좋았는데?”
저는 후지오카의 이 말을 듣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대체 어디가 원인으로 이 훌륭한 체격을 가진 이가 두 번이나 신체검사에 합격하지 못했는지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괜찮다면 불합격이 된 연유를 말해달라고 재촉했습니다.
“그게 말이야.”라고 후지오카는 말했습니다. “자네는 소설을 쓰니까, 어디 한 번 이야깃거리라도 하나 줘볼까?”
이러면서 후지오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
정말 나는 보는 바와 같이 건강하고 오늘까지 이렇다 할 병에 걸린 적이 없었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도 매우 운동에 열심을 내서 테니스 선수도 했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식 시합 날이 되면 여의치가 않아 중간 정도밖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긴장한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아무한테도 지지 않지만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면 심박 박동이 심해지고 비지땀이 흘러나와 도무지 침착성을 잃고 맙니다.
예전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기에 나는 사관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시합이 있을 때에 긴장하는 성격이라면 훌륭한 군인이 될 수는 없겠으나, 그 때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군인을 지망했습니다. 역시 내 성격 탓에 군인이 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군인이 안 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군축이다 뭐다 하는 말이 나오는 세상에 어차피 제대로 된 인간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자 참으로 이 세상에서는 무엇이 행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졸업 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스스로도 입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입학시험이 시작하자 나는 뜻밖에도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원인이라 아쉽거나 안타깝기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불합격이 된 원인은 내 뒤통수에 있는 동전 크기만 한 부분 탈모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웃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원인이란 말입니까. 사관학교 입학시험 규칙에 탈모증이 있다면 불합격시키라고 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런 규칙이 있었다고 해도 그런 규칙은 사람을 바보취급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의관이 내 뒤통수를 검사하고 불합격 판정을 내렸을 때 나는 졸도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처참하다고 해야 할지 무참하다고 해야 할지, 그야말로 그 후 한 달 정도는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매우 슬펐습니다.
나는 군의관을 저주했다. 내 부족함을 증오하는 대신 군의관을 저주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애정 어린 조치를 취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동전 크기만 한 탈모가 있다는 것이 왜 나쁘다는 말인가요. 그것이 전염성인 것이라면 불합격 판정도 당연하겠으나 내 이 탈모는 어렸을 때 화상을 입어 생긴 흉터로서 지금도 이렇게 있습니다. 그 정도는 조금 더 검사하면 알만도 했는데 참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
신체검사에서 떨어져도 나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자네가 무슨 짓을 해서 군의관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닌가? 그래서 부분 탈모를 핑계로 불합격 판정을 내린 거겠지. 매년 똑같은 군의관이 검사하지는 않을 테니 꼭 한 번도 받아봐.”
라고 권해주었습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가 군의관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군의관이 진단을 게을리 했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사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신체검사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학과시험 때문에 고생하지만, 내게 있어서 학과시험은 오히려 둘째였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체검사를 통과하고 싶다, 어떻게든 이 탈모를 제대로 진단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정말 이상하죠? 정말 이런 기도를 하는 수험생은 지금도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드디어 신체검사 당일이 왔습니다. 검사관을 보자 작년과는 다른 군의관이었기에 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며 심장이 뛰었습니다.
제 차례가 왔을 때 제가 어떤 마음으로 군의관 앞에 나갔는지 상상이 되죠? 왠지 정신이 멍해지고 가슴 뛰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제 귀에 들렸습니다.
군의관은 결국 문제의 탈모를 발견했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제 온몸에는 소름이 바싹 돋았습니다.
“흠.”하고 군의관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큰 탈모군. 아아, 화상으로 생긴 거로구먼.”
이렇게 말하고는 불합격이라는 말을 안 했습니다.
그 때의 제 기쁨을 생각해보세요. 아울러 그 때 제 마음속 설렘을 상상해 보세요.
그야말로 제 심장은 종이라도 울리듯 터질 것만 같이 뛰고 있었으며 저 자신도 난리 치는 심장 때문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드디어 합격이다! 학과 시험은 별것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문득 정신이 들자 군의관은 제 앞에 앉아 맥을 짚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군의관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기에 저는 불안한 예감 때문에 몸을 움츠렸습니다.
“부정맥이 너무 심해.”라고 군의관은 중얼거렸습니다. “이건 안 되겠어. 극도의 심장병이야.”
이렇게 말하더니 ‘씨익’ 웃으며 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때 군의관의 끔찍한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불합격!”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속으로 들려오자 저는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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