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手術)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X월 X일. 제 집에서 “탐정취미모임” 정규모임을 가졌습니다. 매우 더운 밤이었으나 모인 것은 남성이 다섯, 여성이 셋. 저를 포함하여 도합 아홉 명이 어두컴컴한 전등 밑에서 미꾸라지 피와도 같은 수박을 먹으며, 처음에는 범죄나 유령에 관한 하염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이라는 건 흥미롭군요. 서양 전설에 나오는 마귀할멈은 아홉이라는 숫자를 매우 좋아했다고 하니까요.” 라고 회사원이고 서양문화 통인 N씨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저희는 괴담 기분에 빠져있었기에 마귀할멈이라는 말이 여느 때보다도 무척이나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N씨는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맥배드에서 세 명의 마귀할멈이 요술약을 조제하는 장면은 상당히 무서움을 자아냅니다. 그 요술약 성분 중 하나로서 새끼돼지를 아홉 마리 잡아먹은 암컷 돼지 피를 냄비 속에 넣는데, 그 순해 보이는 돼지들도 서로를 먹는다는 생각을 하자 왠지 징그럽더군요…….”
이러면서 N씨는 우리 아홉 명이 마치 아홉 마리 새끼 돼지이고, 지금이라도 암컷 돼지, 아니, 마귀할멈이 우리를 먹으러 오기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때 변호사 S씨는 말했습니다. “어떠세요? 지금 같은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늘 밤은 인간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에 대한 것을 화제로 해볼까요?”
“좋은 제목이군요. 여러분은 어떠시죠?” 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찬성입니다!”, “아주 좋습니다!”라고 모두가 동의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우선 말씀하신 분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으니 먼저 S씨께 부탁하도록 합시다.”
S씨는 머리를 긁으며 “이거 골치 아픈 걸 말했군요.”라고 말하며, 그러나 불평 없이 말을 시작했습니다. 법률가인 만큼 호즈비 박사가 쓴 ‘은거론(隱居論)’에 실려 있는 식인(食人)에 관한 사례를 잘 기억하고 계셨으며, 노인 은거 풍습의 시작은 ‘식인풍속’에 있다는 점까지 매우 질서정연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을 할 차례가 되었기에 저는 변태성욕과 식인과의 관계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면서 설명했습니다. 애인을 죽이고 심장을 꺼내서 기계로 갈아서는 빵 속에 넣어 구워 먹은 남자 이야기 같은 내용은, 평소라면 특별하지도 않았으나 유독 오늘 밤은 제가 생각해도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바깥에서부터 도둑처럼 들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에서까지도 피비린내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에는 대중문예작가 K씨가 일본문학에 나타난 식인 이야기가 있어, 여기에 대해서도 남녀 모두 각각 끔찍하고도 재미있는 말씀을 마셨으며, 마지막으로 C여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C여사는 몇 년 전까지 간호사를 하고 계셨는데 사정이 있어 지금은 타이피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C여사님께 부탁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제가 말하자 C여사 왠지 아까부터 두세 번 한 숨을 쉬고 있었으나 마침내 결심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큰 맘 먹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실은 제가 간호사를 그만 둔 것도 어떤 분의 식인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일반 여성분들 앞에서는 왠지 말씀 드리기가 좀…….”
“아니요, 괜찮아요. 어서 말씀해주세요.”라고 다른 두 여성이 입을 모아 강권했으므로 C여사는 “그러시다면” 하고 조용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문득 제가 열러 제친 미닫이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자 전갈자리가 평소보다 날카롭게 반짝이고 있었으며 벌써 서남쪽 하늘 지평선 가까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의과대학이 아직 △△의학전문학교였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저는 산부인과교실 간호사를 하고 있었는데 환자 담당이 아니라 수술실을 맡고 있어 수술 때에는 거즈나 수술도구를 건네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임교수는 T선생님이라고 하셔서 그 때는 마흔 전후였으며 아직 독신이셨습니다만 산부인과 수술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분이셨으며, 더구나 말솜씨도 훌륭하셨기에 학교 내에서는 물론 외부에서도 매우 평판이 좋으셨습니다. 아무리 명의라 하더라도 역시 인간인 이상 오진(誤診)은 피할 수 없겠으나 T선생님은 평소부터 재차 삼차 신중하게 확인하는 성격이셨기에 좀처럼 오진은 없었으며, 어쩌다가 간혹 있더라도 환자 생명에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T선생님이 어찌된 일인지, 말하자면 귀신한테 홀렸다고 해야겠지요. 딱 한 번 끔찍한 오진을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선생님은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저도 간호사라는 직업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매년 여름에는 교실에서 산부인과 세미나가 열렸는데, 그 해도 대략 스물 대여섯 명의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수강생이라고 해도 모두 시내나 근처에서 개업하고 계신 분들이셨기에 상당한 경험을 쌓으신 분들처럼 보였기에 T선생님도 특별히 조심하셨으며, 수술 시는 저희들이 하는 준비를 철저하게 감독하셨습니다.
어느 날 T선생님은 자궁섬유종(子宮纖維腫) 환자에게 자궁적출수술을 하여 수강생들한테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그 환자는 스물다섯의 미혼 여성이었으나 3개월 정도 전부터 월경이 멈추고 점차 쇠약해졌기에 선생님께 진찰을 받으러 왔으나 자궁 내벽에 섬유종이 생겼으니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고 하여, 환자도 마음을 먹고 그 대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겠으나 자궁을 적출하는 방식은 복부에서 하는 방법과 국부에서 하는 방법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T선생님은 수강생들한테 보여주는 관계상 후자를 선택하셨으므로 저희들도 그 준비를 했습니다. 수술실은 중앙에 수술대가 놓이고 그 수술대 주변에 대략 2.5미터 정도 떨어져서 학생들이 견학하는 자리가 수술을 보기 쉽게 하기 위해 마치 옛 로마극장처럼 뒤로 갈수록 한 단씩 높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스무 명 정도 되는 수강생은 그 곳에 반원형으로 앉아 선생님의 임상강의가 시작하기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선생님은 해당 환자를 데리고 와서 전반적으로 병력(病歷)를 말씀하시고는 자궁섬유종이라고 진단한 이유를 평소처럼 유창한 말투로 발표하셨습니다. 대략 30분 정도 설명을 마치고 환자를 다른 방으로 옮겨갔습니다. 즉, 그 다른 방에서 환자는 마취제를 맞고, 환자가 충분히 마취되었을 무렵에 수술실로 옮겨와 수술을 받게 한다는 순서였습니다.
이윽고 환자는 수술실로 옮겨왔습니다. 환자가 수술대 위에 놓이면 저는 매우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평소 선생님이나 조수 분들은 흰 모자를 쓰고 입에도 흰 마스크를 끼고서 수술을 하십니다. 우선 조수 분들에 의해 수술 국부에 대해 철저한 소독이 이루어지면 드디어 선생님이 수술을 시작하기 위해 특별한 수술도구로 자궁을 가급적 앞쪽으로 잡아당기고서, 다음으로 손가락으로 주의 깊게 환부를 만져보십니다.
또한 그 동안에도 선생님은 수강생들한테 열심히 설명하고 계셨습니다. 제게는 잘 모르겠으나 자궁섬유종이 발생했을 때에는 자궁이 사과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을 몇 번이고 설명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촉진(觸診)을 하고 계시자 선생님 말씀이 조금씩 흐트러지더니 나중에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눈을 가까이 대고서, 끄집어낸 것을 촉진하며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선생님 얼굴에 의혹의 빛이 비쳐지고는 그 이마에는 올리브기름과도 같은 땀방울이 가득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그 당시 여름날 밤 돌멩이인줄 알고 잡은 것이 두꺼비였다는 듯한 심정이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환자 자궁은 선생님의 예상에 반해,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집었더니 바람이 빠진 고무풍선처럼 가라앉았기 때문입니다. 수강생 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마치 토종닭이 자신의 알만한 달팽이에 맞았을 때처럼 고개를 빼고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수술실에는 먼지가 매우 적습니다만, 그 때는 먼지 하나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이윽고 선생님 손은 조금씩 떨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무엇인가를 결심하신 것처럼, 그러나 아무런 말씀 없이 문득 자궁 속에 손가락을 넣고는 피가 묻은 흰 덩어리를 뽑아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과 한 순간이었으며, 선생님은 그 덩어리를 오른손으로 꼭 쥐고 말았습니다. 수강생은 물론 아마 다른 조수 분들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으며, 역시 자궁 속에서 나온 악성 종양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저는 불행하게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제 착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착각이었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때 제 눈에 비친 것은 작으면서도 인간 모습을 갖춘, 3개월 정도 된 태아였습니다. 저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지고 순간 쓰러질 것만 같았으나, 그 때 선생님이 기이한 소리로 조수석을 향해서 하신 말씀 때문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수술은 이제 됐어. 뒤처리를 해주게.”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피투성이 손에 그 의문의 조직을 꼭 쥔 채로 저희들을 남기고 서둘러 나가고 말았습니다. 자궁적출수술은 ? ? ? 수강생 분들은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환자 자궁에서 심한 출혈이 있었습니다. 수석 조수 분은 매우 침착한 분이셨으므로 응급조치를 하셨으나 이무리 해도 출혈이 멈추지 않기에 저한테 T선생님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방금 전 받은 충격 때문에 머리가 혼미했으므로 정신없이 선생님 방으로 찾아갔으나 T선생님은 안 계십니다. 그래서 산부인과교실에 속하는 모든 방을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보고는 마지막으로 건물 끝에 있는 도서실에 가보자 선생님은 손에 피가 묻은 채로 책상에 기대어 어떤 책을 보고 계셨습니다만, 제 발소리를 듣자 고개를 들고 저를 보고는 씨익 웃었습니다.
아아, 그 때 T선생님 얼굴이!
선생님 입가에는 끈적끈적한 피가 묻어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선생님 잇몸과 이빨이 벌겋게 물들어, 마치 그림에 그려진 마귀 얼굴을 직접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순간 정신을 잃고 도서실 입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C여사는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저희들은 손에 땀을 쥔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이것뿐입니다. 그 환자는 그날 밤 쇠약해져서 사망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로부터 오랫동안 정신과 병동에 들어가 계셨으나 작년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을 때 폐렴에 걸려 쓸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문제는, T선생님이 환자 뱃속에서 태아를 꺼낸 일도, T선생님 입속이 시뻘겋다는 일도 과연 제 착각이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생님이 꺼낸 것이 태아가 아니었다고 해도 T선생님이 오진하신 것은 사실이며, 그리고 선생님이 그 의문의 조직을 처치 곤란하여 가장 안전한 장소로서 자신의 위장을 선택한 것도 역시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저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싫어져서 현재 직업을 갖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