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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30 좌흥이 아니다 - 일본어
  2. 2018.04.30 좌흥이 아니다 - 한국어

좌흥이 아니다(座興に非ず:ざきょうにあらず)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일본어 원문


 おのれの行く末を思い、ぞっとして、いても立っても居られぬ思いの宵は、その本郷のアパアトから、ステッキずるずるひきずりながら上野公園まで歩いてみる。九月もなかば過ぎた頃のことである。私の白地の浴衣(ゆかた)も、すでに季節はずれの感があって、夕闇の中にわれながら恐しく白く目立つような気がして、いよいよ悲しく、生きているのがいやになる。不忍(しのばず)の池を拭って吹いて来る風は、なまぬるく、どぶ臭く、池の蓮(はす)も、伸び切ったままで腐り、むざんの醜骸をとどめ、ぞろぞろ通る夕涼みの人も間抜け顔して、疲労困憊(こんぱい)の色が深くて、世界の終りを思わせた。

 上野の駅まで来てしまった。無数の黒色の旅客が、この東洋一とやらの大停車場に、うようよ、蠢動(しゅんどう)していた。すべて廃残の身の上である。私には、そう思われて仕方がない。ここは東北農村の魔の門であると言われている。ここをくぐり、都会へ出て、めちゃめちゃに敗れて、再びここをくぐり、虫食われた肉体一つ持って、襤褸(ぼろ)まとってふるさとへ帰る。それにきまっている。私は待合室のベンチに腰をおろして、にやりと笑う。それだから言わないこっちゃ無い。東京へ来ても、だめだと、あれほど忠告したじゃないか。娘も、親爺(おやじ)も、青年も、全く生気を失って、ぼんやりベンチに腰をおろして、鈍く開いた濁った眼で、一たいどこを見ているのか。宙の幻花を追っている。走馬燈のように、色々の顔が、色々の失敗の歴史絵巻が、宙に展開しているのであろう。

 私は立って、待合室から逃げる。改札口のほうへ歩く。七時五分着、急行列車がいまプラットホームにはいったばかりのところで、黒色の蟻(あり)が、押し合い、へし合い、あるいはころころころげ込むように、改札口めがけて殺到する。手にトランク。バスケットも、ちらほら見える。ああ、信玄袋(しんげんぶくろ)というものもこの世にまだ在った。故郷を追われて来たというのか。

 青年たちは、なかなかおしゃれである。そうして例外なく緊張にわくわくしている。可哀想だ。無智だ。親爺と喧嘩(けんか)して飛び出して来たのだろう。ばかめ。

 私は、ひとりの青年に目をつけた。映画で覚えたのか煙草(たばこ)の吸いかたが、なかなか気取っている。外国の役者の真似にちがいない。小型のトランク一つさげて、改札口を出ると、屹(き)っと片方の眉をあげて、あたりを見廻す。いよいよ役者の真似である。洋服も、襟(えり)が広くおそろしく派手な格子縞(こうしじま)であって、ズボンは、あくまでも長く、首から下は、すぐズボンの観がある。白麻のハンチング、赤皮の短靴、口をきゅっと引きしめて颯爽(さっそう)と歩き出した。あまりに典雅で、滑稽であった。からかってみたくなった。私は、当時退屈し切っていたのである。

「おい、おい、滝谷君。」トランクの名札に滝谷と書かれて在ったから、そう呼んだ。「ちょっと。」

 相手の顔も見ないで、私はぐんぐん先に歩いた。運命的に吸われるように、その青年は、私のあとへ従(つ)いて来た。私は、ひとの心理については多少、自信があったのである。ひとがぼっとしているときには、ただ圧倒的に命令するに限るのである。相手は、意のままである。下手に、自然を装い、理窟(りくつ)を言って相手に理解させ安心させようなどと努力すれば、かえっていけない。

 上野の山へのぼった。ゆっくりゆっくり石の段々を、のぼりながら、

「少しは親爺の気持も、いたわってやったほうが、いいと思うぜ。」

「はあ。」青年は、固くなって返辞した。

 西郷さんの銅像の下には、誰もいなかった。私は立ちどまり、袂(たもと)から煙草を取り出した。マッチの火で、ちらと青年の顔をのぞくと、青年は、まるで子供のような、あどけない表情で、ぶうっと不満そうにふくれて立っているのである。ふびんに思った。からかうのも、もうこの辺でよそうと思った。

「君は、いくつ?」

「二十三です。」ふるさとの訛(なまり)がある。

「若いなあ。」思わず嘆息を発した。「もういいんだ。帰ってもいいんだ。」ただ、君をおどかして見たのさ、と言おうとして、むらむら、も少し、も少しからかいたいな、という浮気に似たときめきを覚えて、

「お金あるかい?」

 もそもそして、「あります。」

「二十円、置いて行け。」私は、可笑(おか)しくてならない。

 出したのである。

「帰っても、いいですか?」

 ばか、冗談だよ、からかってみたのさ、東京は、こんなにこわいところだから、早く国へ帰って親爺に安心させなさい、と私は大笑いして言うべきところだったかも知れぬが、もともと座興ではじめた仕事ではなかった。私は、アパアトの部屋代を支払わなければならぬ。

「ありがとう。君を忘れやしないよ。」

 私の自殺は、ひとつきのび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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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흥이 아니다(座興に非ず)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이도 저도 못할 저녁 무렵에는 혼고(本鄕)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팡이를 질질 끌며 우에노(上野)공원까지 걸어본다. 9월도 중순이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내가 입은 백지의 유카타(浴衣)도 이미 철이 지난 듯하여, 내가 보아도 저녁 어둠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 같아 더욱 슬퍼지고, 살기가 싫어진다. 시노바즈(不忍) 연못을 훑어가며 불어오는 바람은 미지근하여 시궁창냄새가 났고, 연못에 있는 연꽃도 뻗은 채로 썩어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웅성웅성 떼를 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넋이 나간 듯,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여, 이 세상의 종말을 연상케 했다.


 우에노 역까지 오고 말았다. 수많은 검은 빛 여객들이 여기 동양 제일이라는 대정차장에 우글우글 준동하고 있었다. 모두 닳아버린 몸이다. 내게는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곳은 동북농촌 출신들에게 마(魔)의 문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을 지나 도회지로 나와서 처참하게 패하고는 또다시 이곳을 지나 벌레 먹힌 육체 하나에 누더기를 걸치고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분명 그렇다. 나는 대합실 의자에 앉고서 씨익 웃는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 동경에 와도 안 된다고 그토록 충고하지 않았던가. 딸래미도 아버지도 청년도 모두 생기를 잃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탁하고도 둔하게 열린 탁한 눈으로 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가. 공중에 뜬 환상의 꽃을 좇고 있다. 주마등과도 같은 여러 얼굴이, 여러 실패의 역사가 공중에서 펼쳐지고 있으리라.


 나는 일어서서 대합실로부터 도망친다. 개찰구 쪽으로 걷는다. 7시 5분 도착 급행열차가 지금 플랫폼으로 막 들어왔을 때 검은색 개미들이 이리 밀고 저리 제치며, 아니면 대굴대굴 굴러들 듯 개찰구를 향해 밀어닥친다. 손에는 트렁크. 바구니도 드문드문 보인다. 아아, 저런 신겐부쿠로(信玄袋)라는 것도 아직 이 세상에 있었다. 고향에서부터 쫓겨왔다는 것인가.


 청년들은 꽤나 세련되어있었다. 그리고 예외 없이 긴장감 때문에 들떠있다. 불쌍하다. 무식하다. 아버지와 싸우고 뛰쳐나온 것이겠지. 바보 같으니라구.


 나는 청년 하나를 유심히 보았다. 영화를 보고 배웠는지 담배 피는 모습이 꽤나 볼만 하다. 분명 외국 배우 흉내를 내는 것일 게다. 작은 트렁크 하나 들고 개찰구를 나오자, 한 쪽 눈썹을 힘껏 치켜 올려 주위를 돌아본다. 배우 흉내가 더해간다. 입은 옷도 무척이나 넓은 줄무늬였으며 바지도 일단 길면 좋은 걸로 알고, 목 아래부터 바로 바지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흰 마(麻)로 된 헌팅모자. 빨간 가죽 단화, 입을 굳게 다물고는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너무 우아하여 웃겼다. 놀려먹고 싶었다. 나는 당시 매우 적적했었다.


 “이봐, 이봐, 타키다니(瀧谷) 군.” 트렁크에 적힌 이름표에 瀧谷(타키다니)라고 적혀있었기에 그렇게 불렀다. “잠깐.”


 상대 얼굴도 보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앞서 걸어갔다.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멍하게 있을 때에는 그저 상대방을 압도시키는 명령을 하는 것이 제일이다. 상대는 마음 먹은 대로다. 섣불리 자연스럽게 하려 하거나 이유를 설명하여 상대방을 이해시켜 안심 시키려고 애를 쓰면 오히려 안 된다.


 우에노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천천히, 천천히 돌계단을 오르면서,


 “조금은 아버지의 마음도 달래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예에.” 청년은 긴장하여 대답했다.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의 동상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멈춰 서서 소맷자락에서 담배를 꺼냈다. 성냥불로 슬쩍 청년을 보자, 청년은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불쌍하게 여겨졌다. 놀려먹는 것도 이 정도에서 그만 두자고 생각했다.


 “자넨 몇 살인가?”


 “스물 셋입니다.” 고향 사투리가 섞여 있다.


 “젊구만.”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이제 됐어. 이만 돌아가도 돼.” 그저 자네를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을 뿐이야, 라고 말하려 했으나 점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놀려먹고 싶다는, 들뜬 설레는 마음이 생겨나길래,


 “돈은 있니?”


 우물쭈물 하더니 “있습니다.”


 “20엔, 두고 가라.” 나는 너무나도 웃겼습니다.


 꺼낸 것입니다.


 “이제 가도 되겠습니까.”


 바보, 농담이야, 놀렸을 뿐이야, 동경은 이렇게 무서운 곳이니 얼른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님을 안심시켜드려, 라고 나는 크게 웃으며 말해야 했었으나, 본래 좌흥 삼아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파트 방값을 내야 한다.


 “고맙다. 너를 잊진 않을 거야.”


 내 자살은 한 달 미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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