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카이 후보쿠/육종

육종 - 한국어

관 리 인 2018. 5. 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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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 (肉腫)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6)

번역 : 홍성필


1.

“안타깝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요.”

나는 윗몸을 벗은 사내 오른쪽 어깨에 난, 어린 아이 머리만한 종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라고 의자에 앉은 사내는 가늘고, 그러나 저력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6개월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눈 딱 감고 오른팔을 떼어버렸다면 목숨은 건졌겠지만, 저 같은 노동자가 오른팔을 잃는다는 건 목숨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기에 어떻게든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절에도 점쟁이도 찾아가보고, 여러 온천도 돌아봤으나 종양은 계속 커갈 뿐이었습니다. 이제 안 되겠습니다. 더 이상 살려고 애를 쓰지 않을 겁니다…….”

곁에 서 있던 부인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는 진찰실 리노리움(쿠션 바닥 - 역자 주) 위에 떨어졌다. 한여름 오후, 미지근한 바람이 울려 퍼지는 매미울음 소리와 함께 열어젖힌 창문을 통해 불어왔다. 나는 사내 등 뒤에 서서 갈색 피부에 덮인 갈비뼈와 함께, 군데군데 화산 분화구처럼 붉게 짓무르고, 자칫하면 인간 얼굴처럼 보일 수도 있는 움직이는 종양 덩어리를 보고 위로할 말을 찾고 있었다.

환자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선생님. 제 평생소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부탁이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드리죠.”라고 대답하고 나는 환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들어 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라고 꾸뻑 인사하고는 “부탁이란 다름 아닌, 이 종양을 떼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이 뜻밖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직 서른을 갓 넘은 나이지만 그 얼굴에는 60 정도 된 노인한테서나 보이는 주름이 잡히고, 푹 파인 눈에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뇨. 걱정하시는 건 당연합니다. 저는 치료를 위해 이 종양을 떼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제 오른쪽 어깨에 자리 잡고 6개월 동안 밤낮없이 저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이 지독한 녀석한테 어떻게든 복수를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선생님 손으로 이 지독한 놈을 제 몸에서 떼어주시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가능하다면 제 손으로 마음껏 갈기갈기 찢겨내고 싶습니다. 그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저는 마음 놓고 눈을 감겠습니다. 선생님. 제발 부탁입니다. 제 평생소원입니다.”

환자는 손을 모으고 내게 부탁했다.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던 오른팔은 왼손 절반정도까지 말라 있었다. 나는 환자의 지치고 지친 몸을 보고, 수술은커녕 마취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부득이 말을 했다.

“예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는 견갑골에서부터 나온 종양으로서, 어깨뼈는 물론 오른팔 전체를 절단해야 하는 큰 수술이라서 말이에요. 이렇게 쇠약한 상태에서 수술 도중에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입니다.”

환자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으나 이윽고 부인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토요(豊). 너도 각오하고 있지? 아무리 수술 중에 죽어도 이 놈을 떼어낸 것을 네가 봐준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해. 이봐, 너도 선생님한테 말씀 좀 드려봐.”

부인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그저 나를 보고 고개만 계속 숙일 따름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완치될 가망이 없는 환자를 수술하는 것은 의사로서 양심에 가책을 느껴지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럴 때 흔쾌히 환자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대로 둔다 한들 1개월도 채 버티지 못한다. 만약 환자가 수술을 견디고 끔찍한 종양이 떼어진 자신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분명 환자 마음은 편해질 것이다.

“좋습니다. 원하시든 대로 수술을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2.

“정신이 드세요? 다행입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안심하세요.”

다음 날 오전에 치러진 수술 후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병실로 찾아갔다. 나는 횐 시트 속에서 내민 흙색 얼굴을 보고 위로하듯 말했다. 침대를 둘러싸고 부인과 간호사 모두 불안한 심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환자는 아직 희미하게 클로로포름 냄새를 풍기며 대답했다.

“안정을 취하세요.”

간호사에게 필요한 지시를 한 후 물러나려 하자,

“선생님!”

하고 환자가 불렀다. 이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져 있었으며 지금 마취에서 막 깨어난 사람 목소리 같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제발 부탁입니다. 종양을 보여주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환자의 기력에 놀랐다기보다는 집념에 놀랐던 것이다.

“나중에 천천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가만히 계셔야 해요.”

“제발 지금 당장 보여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두 손을 뻗어 가로막으면서,

“움직이면 안 된다니까요. 갑자기 움직이면 의식을 잃는 수가 있어요.”

“그러니 기절하기 전에 보여주세요.”라고 말하고는 또다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일종의 압박을 느꼈다. 종양을 떼어낸 모습을 보고 싶다는 원을 풀어주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수술을 굳이 강행한 내가 어찌해서 지금 그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간호사에게 방금 절제한 그의 오른팔을 갖고 오도록 명했다.

이윽고 간호사는 거즈로 덮인 직경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타원형 법랑철기(琺瑯鐵器)로 만들어진 쟁반을 들고 왔다. 이를 본 환자는,

“이봐, 오토요. 날 좀 일으켜주게.”

라고 말했다.

“안 돼. 안 돼요.”

나는 큰 소리로 말렸으나 그는 고집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꼭 일으켜달라고 떼를 쓰면서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일어나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겨드랑이에 걸쳐 흉부 전체에 붕대를 감은 가벼운 등을 손으로 받치며 뇌빈혈을 일으키지 않도록 지극히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일으켜 앉혔다. 환자는 매우 긴장해서인지 생각보다 멀쩡했으나, 그래도 이마에는 식은땀이 스며 나왔다.

나는 간호사한테 그의 몸을 받치고 있도록 한 다음 환자의 두 다리를 덮은 흰 시트 위에 법랑철기로 만들어진 쟁반을 살며시 올려놓고 거즈 덮개를 걷어냈다. 다섯 손가락, 손바닥, 전박, 상박, 견갑골, 그 견갑골에서 나온 육종이 머리가 되고 전체가 마치 일종의 생물 시체인 것처럼 피범벅이 되어 누워 있었다. 환자 얼굴에는 마치 무력해진 원수를 보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오르고는 두세 번 침을 삼켰다. 그의 눈에는 팔의 상박부(上膊部) 쪽은 보지도 않고 오직 육종 표면에만 쏠려있었다.

약 3분 정도 그는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으나 갑자기 그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요오드포름 냄새가 실내에 풍겼다.

“선생님!” 하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수술하실 때 쓰시던 칼을 빌려주세요.”

“네?”라며 나는 놀랐다.

“어쩌시려고요?”라고 부인도 걱정스럽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알 것 없어. 선생님, 빨리요!”

나는 기계적으로의 명령에 따랐다. 2분 후 나는 수술실에서 가져온 은색 메스를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는 문득 그 왼손을 뻗어내어 육종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은 독수리처럼 번쩍였다.

“으음. 차가워. 죽었군!”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부인 쪽을 돌아보았다.

“오토요. 이 붕대를 풀고 내 오른쪽 어깨를 꺼내주게!”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는 매우 놀랐다. 극심한 전율이 내 모든 신경을 쥐고 흔들었다.

“어머, 여보…….”라고 하는 부인.

그리고는 끔찍한 10초 동안의 침묵! 그 10초 동안에 환자는 자신의 오른팔이 절단되어 눈앞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 것 같았다.

“우후, 우후…….”

신음소리인지 웃음인지 또는 기침인지도 모르는 소리를 내었다 싶더니 그의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하면서 맥이 풀리고는 간호사 팔에 기대었다. 그 때 그의 왼손은 몸과 함께 뒤로 당겨졌으나 왼손 손가락이 육종 조직 깊숙이 파고들어있었기에, 절단된 오른팔은 쟁반에서 들려나와 흰 시트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5초 후, 단말마의 경련이 일어났을 때, 그 오른팔도 함께 흰 시트 위에서 요동치며 주변 사방에 피의 반점을 뿌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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