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카이 후보쿠/어리석은 자의 독

어리석은 자의 독 - 한국어

관 리 인 2018. 5. 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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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독(愚人の毒)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여기는 XX 경찰서 신문실(訊問室)이다.

미지근한 바람이 가끔 거리의 먼지를 날리고 있을 뿐, 열린 창문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한여름 오후이다. 지금이라도 벽시계가 멈춰버릴 것만 같은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세 명의 정장차림을 한 신사가 책상 한 쪽에 나란히 앉아 가끔 부채를 부치며 잠시 후 들어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면에서 왼쪽에 자리 잡은 세 명 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인 쓰무라(津村) 검사는 이마가 넓고 눈이 날카로우며 수염이 없다. 가운데 백발 섞인 머리를 한 사람이 후지이(藤井) 경찰서장, 서장 오른 쪽에는 벗어진 머리를 금테안경과 턱수염으로 장식하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법의학자로서 유명한 T대학 의학부 교수 가타다(片田) 박사였다. 업무라고는 하나 윗도리리라도 벗고 싶은 더위를 참고 흘러나오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진심으로 수고가 많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진다.

셋은 지금 어떤 사건 때문에 유력한 증인으로서 소환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여 그 사건 수사에 있어서 지휘관인 쓰무라 검사는 소환한 증인 신문에서 후지이 서장과 가타다 박사에게 입회를 요청한 것이다. 그 증인은 검사한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람인지 그의 얼굴 근육은 무척이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가끔 얼굴 살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도 아마 실내 온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신문이라는 것을 하나의 예술이라 여기고 있는 쓰무라 검사는 마치 예술가가 그 제작에 착수할 때와 같은 흥분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에 반해 후지이 서장은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와 정비례를 이루는 경험 때문인지 전혀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저 흰 제복만이 유난히 반짝일 뿐이었다. 하물며 과학자인 가타다 박사의 넉넉한 얼굴에는 평소 애교가 넘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장소에서는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침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벽시계가 2시를 알리자 하복 양복을 차려 입은 청년신사가 한 형사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 오른손에 검은 가죽 가방, 말하자면 진찰용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의사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사람의 약점을 취급하는 직업이니만큼 추리소설 속에서까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 사람이 매우 현대적이라서 그와 같은 장소에는 익숙한지 진찰용 가방을 내던지듯 책상 밑에 놓고는 매우 경쾌한 태도로 세 명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 ‘선생님’을 안 붙이는 편이 낫겠다.

“야마모토(山本) 씨, 자, 이쪽으로 앉아 주세요.”

라고 검사는 어느새 흥분을 가라앉히고 밝게 웃으며 의사에게 말했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두를 부탁드린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오쿠다(奧田) 씨에 대한 사건에 관해서 당신이 생전에 고인을 진찰하셨기에 두세 가지 여쭈어볼 일이 있어서입니다. 이 사건은 의외로 복잡한 것 같았기에 시체 해부를 해주신 가타다 박사님과 그리고 수사본부에 계신 후지이 서장님께도 이렇게 입회를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쓰무라 검사는 상대방 얼굴을 예리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눈짓은 쓰무라 검사 특유의 버릇이며 과거 이 날카로운 눈짓 때문에 어떤 도박꾼 두목이 범죄를 모두 자백하고 말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이 눈짓도 야마모토 의사에 대해서는 전혀 효과가 없었는지,

“무엇이든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는 매우 경쾌한 대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 때 직원이 차가운 녹차를 가지고 왔기에 검사는 마주보고 있는 의사 야마모토에게 권하고 자신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을 이었다.

“우선 순서대로 간략하게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S구 R동 13번지에 거주하는 오쿠다 도메 씨라고 하는, 올해 55세 미망인이 지난 7월 23일 갑자기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오전 1시 경 돌연히 극심하게 오한이 시작했나 싶더니 고열이 발생함과 동시에 심한 구토를 일으켰습니다. 마치 배탈이 난 것 같아 아마도 더위를 탔으려니 하고서 그날은 의사를 부르지 않았지만 저녁이 되어 다행히 구토도 없어지고 열도 내렸기에 다음 날은 아무런 이상도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인 7월 25일 역시 그 때와 동일한 증상이 일어나고 너무나 구토가 심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인사불성이 되기도 했으므로 따님이신 기요코 양이 서둘러 가정부를 시켜 주치의인 야마모토 선생님, 즉 당신에게 진찰을 부탁했습니다. 그 결과 아마도 식중독이라고 진찰한 후 돈복약(한 번에 먹는 약. 설사약 같은 것 - 역자 주)을 처방했더니 그 약효 덕분에 저녁 무렵이 되자 구토도 가라앉고 열도 내려 환자는 완치되고 그 다음 날은 편안하게 지났습니다.

그러자 또 그 다음날인 7월 27일에 역시 전과 같은 시간에 전과 같은 증상이 시작하고는 구토만이 아니라 설사까지도 동반하고, 환자는 고통이 심한 나머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급보를 듣고 달려온 당신은 환자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평범한 식중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비로소 당신은 따님에게 주변 사정을 물었습니다.

그 때 따님이 말했다고 하는 것이 당신에 대한 의혹을 한층 깊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정을 말하기 전에 저는 오쿠다 집에 사는 가족들에 대해 말씀드려야 합니다. 남편은 본래 체신부 관리를 하고 계셨는데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상당한 재산을 남기고 타계하고, 활동적인 사모님은 세 아이를 키우며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듣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장남이 겐키치(健吉), 차남이 야스이치(保一), 그 누이가 기요코 양이었는데, 장남인 겐키치는 사모님한테는 친아들이 아닙니다. 친아들이 아니라고 해서 남편의 전처 소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쿠다 부부는 남편은 마흔, 부인은 서른이 넘어 결혼하였는데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으므로 먼 친척 중에서 고아였던 겐키치를 세 살 때 양자로 입적하여 키웠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겐키치를 입양한 이듬해에 부인이 임신하여 야스이치를 낳고, 다시 2년 후에 기요코 양을 낳았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세상에서 종종 있는 일이며, 이럴 때 양자는 이른바 부부에게 자식 복을 가져다준 아이라서 복덩어리라며 더욱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오쿠다 가정에 있어서도 겐키치는 친자식이 태어난 후에도 같은 배에서 나온 장손처럼 부부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특히 겐키치는 성격이 온순했기 때문에 남편인 오쿠다 씨가 마음에 들어 하여,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세 아이가 모두 어렸으므로 재산은 모두 부인에게 넘기기로 했으나 훗날에는 대를 이을 겐키치한테 물려주도록 단단히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세 남매는 남자 못지않은 사모님 손에 의해 무사히 키워졌습니다. 올해 겐키치가 스물 일곱, 야스이치 군이 스물 넷, 기요코 양이 스물 둘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남자 못지않게 엄하게 키웠던 사모님이라고 해도 자식 성격이란 어쩔 수가 없는지 차남인 야스이치는 형과 매우 달라서 이른바 불량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겐키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백화점으로 유명한 M의류업체 회계과에 근무하게 되었으나 야스이치는 대학을 중퇴하고 방탕하게 살며 신세를 망쳤습니다.

사모님은 본래 금전적으로는 매우 까다로운 편이었으나 친아들인 야스이치한테는 특별히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인지 아낌없이 금액을 지출해 왔습니다. 그러나 작년 봄에 모처에 있는 접대부를 사들여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에는 장남 체면 때문도 있었겠지만 매우 분개하여 모자간의 인연을 끊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겐키치가 중재해서 접대부를 사들이는 한편 사모님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 일단 Y구에서 약국을 하면서 따로 살게 하여 당분간 출입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에, 매우 고집이 완고하였으므로 야스이치 군이 접대부와 헤어지지 않는 이상 절대로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겐키치와 기요코 양이 몇 번이고 부탁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번 비극이 일어나기까지 별거상태가 계속된 것이지요.

자, 이야기는 여기서 겐키치 쪽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겐키치는 야스이치와 달리 행동이 매우 단정했는데 최근 M백화점에 근무하는 어느 아름다운 여직원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사랑은 타오르기 시작했으며 결국 겐키치는 지난 7월 15일 사모님한테 애인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모님은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매우 화를 냈습니다. 어쩌면 사모님 허락 없이 애인을 만든 일이 언짢았는지, 아니면 백화점 점원을 며느리로 맞아들인다는 것이 불만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 동안 믿고 있던 형까지 동생과 똑같은 짓을 한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 여자를 집으로 들인다면 나는 기요코 양하고만 살면서, 재산 상속은 데릴사위를 들여서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는군요.

이 말을 듣고 겐키치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슬퍼했습니다. 기요코 양 말에 의하면 오라버니는 그날 이후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합니다. 매일 고민하고 어머니나 자기한테도 제대로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로는 마치 정신병자처럼 혼자 중얼거릴 때도 있었다는군요.

그러자 23일에 사모님한테 이상한 병이 일어났습니다. M의류점에서는 7월이 결산기이며 회계과는 7월 21일부터 31일까지 1일교대로 숙직을 하며 사무를 정리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겐키치는 7월 21일이 숙직날이었기에 22일에 귀가하고 23일 아침 출근하여 그날 밤에 숙직, 24일에 귀가하여 25일 아침 출근하곤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사모님의 병은 겐키치가 휴무일 때 일어나지 않고 숙직하는 날, 그것도 겐키치가 집을 나가고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일어났습니다.

기요코 양은 항상 오라버니가 없을 때 어머니가 괴로워하기에 적지 않게 당황했으나 오라버니는 매우 분주한 처지였기에 숙직 당일 날 불러들일 수도 없었고, 더구나 오라버니가 쉬는 날은 공교롭게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오라버니에게 어머니가 괴로워했던 사실을 말해줘도 듣지도 않았으며 이 무렵부터 어머니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기에 어머니에게 제대로 위로의 말도 해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야마모토 씨. 사모님이 세 번째 발병했을 때 당신께서 기요코 양한테서 사정을 들었다는 것은 이런 내용입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듣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2.

“그런데.”

검사는 말을 이었다.

“사모님이 세 번째 즉 7월 27일에 발병했을 때에도 당신이 취한 조치에 의해 무사히 가라앉고 그 다음 날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29일 발병을 막기 위해 분말약 한 봉지를 처방하고 오전 10시 경 복용하도록 하기 위해 손수 직원한테 오쿠다 댁까지 배달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말약 약효가 부족했는지 사모님은 역시 11시 경이 되자 오한을 일으키고 이어서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여느 때와 같이 극심한 구토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 경 기요코 양은 당신을 부르러 갔습니다만 그날 당신은 아침 일찍 처방한 약 때문에 절대로 증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계셨는지 가족에게 행선지도 알리지 않은 채 어딘가로 가버리셨습니다. 그러고는 기요코 양이 서둘러 다른 의사를 부르려 했으나 그 때 사모님의 상태가 급변하여 오후 3시 반에는 결국 사모님이 절명한 것입니다. 사모님은 상당히 비대한 체형이었기에 심장이 그리 튼튼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중독 원인이 너무나도 강했는지, 지난 3회에 걸친 증상에는 견뎠으나 네 번째에는 결국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기요코 양은 27일에 당신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것을 보고 설마 오라버니가……하는 의심이 떠올랐기에 그날 밤 자세한 사정을 작은 오라버니 즉 야스이치한테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야스이치는 29일 어머니를 남몰래 찾아와서는 겐키치가 집을 나서는 것을 지켜본 후 집안으로 들어와 기요코 양의 도움을 받아 이 무더운 날에 옷장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사모님의 증상이 시작되자 서둘러 간호를 시작했으나, 사모님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스이치는 안타깝게도 사모님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기요코 양과 야스이치는 시신을 붙들고 울고 있을 때 당신은 느닷없이 오쿠다 댁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 아비산 중독이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잠시 관찰하고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사망진단서를 쓰셨습니다. 병명 난에는 정확하게 아비산중독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경찰도 당연히 그것을 보고 결국 사모님 시신은 부검으로 옮겨지고는 그 전후사정으로 미루어 겐키치가 곧바로 구속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 중에서 잘못된 점이라도 있나요?”

이렇게 말을 맺고 쓰무라 검사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한 번 닦은 뒤 잠시 서장 쪽을 돌아보고는 다음으로 야마모토 선생을 바라보았다. 모두 이의가 없으며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신문실은 잠시 정적이 흘렀으며 매미 울음소리가 키니네(quinine:말라리아 치료약 중 하나 - 역자 주)를 복용했을 때 발생하는 귀울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검사는 두세 번 부채질을 하고 소리 내며 접은 뒤 말을 이어갔다.

“겐키치를 조사한 결과 어머니에게 아비산을 준적은 절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물론 당연하며, 겐키치가 곧바로 자백을 했다면 사건은 매우 쉬웠기에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선생님을 모실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들은 우선 수순에 따라 겐키치가 과연 사모님에게 독을 주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해야만 했습니다.

일단 살인에 있어서 저희들이 가장 처음에 생각하는 것은 살인 동기입니다. 그리고 겐키치의 경우에 대해 살펴본다면 겐키치한테는 어머니를 살해하려는 동기가 충분히 있을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겐키치가 사모님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점, 열렬하게 사랑하는 여성과의 결혼을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점 등은 충분히 살인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기요코 양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에게 거절당한 후부터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리고는 발광이라도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마음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하니, 지금까지 매우 효성이 지극했던 겐키치라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다소 이상이 발생하면 끔찍한 계획을 꾸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겐키치는 완강하게 살인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겐키치의 살인에 대한 동기가 된 간접 원인, 즉 겐키치의 연인인 M의류상 점원에게 사정을 물었습니다. 그 점원은 오시마 에이코(大島 榮子)라고 하여 매우 내성적이고 흰 피부에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전에 S병원 간호사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미모 때문에 의사들이 귀찮게 굴기에 직업을 바꾸어 백화점에 근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S병원이라고 하면 선생님께서도 개업하시기 전에 거기에 계시지 않았던가요? ……여담은 그렇다고 치고, 그 오오시마 에이코 씨 말에 의하면 겐키치는 어머니가 거절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매우 슬퍼했으며 자신은 큰 은혜를 입은 어머니 뜻을 져버릴 수는 없다, 친 어머니가 아니므로 더욱 참아야 한다, 아예 같이 죽어주지 않겠느냐 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이코 씨는 지금 자기나 당신이 죽는다면 오히려 어머님께 불효가 되고, 자기가 당신과 결혼할 수 없다면 평생 독신으로 살며 친구로서 교제하겠으니 제발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마시고 어머님께 효도를 해달라고 하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겐키치는 그렇다면 자기도 영원히 독신으로 살겠다면서 동반자살에 대한 뜻은 완전히 접었다고 합니다만, 그 뒤에도 역시 매일 그늘진 표정으로 가끔 한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범죄학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자살을 단념한 자가 타살을 도모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에이코 씨의 충고로 일단 자살할 마음을 접었다고는 하나 심리적 타격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기에 가끔 한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며 고민이 쌓인 결과 살인이라는 차가운 서릿발이 마음속에 내리게 되었다고 생각해도 전혀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겐키치의 살인 동기를 인정하는 데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일어나는 문제는 겐키치가 어떠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자 여기에 겐키치의 살인방법을 추정하기에 충분한 사정이 돌발했습니다. 그것은 즉 사모님의 기이한 발병입니다. 그것은 오한과 고열과 구토, 그리고 설사를 주요 증상으로 하고 있으며 겐키치가 숙직하는 날 집을 나서면 항상 2시간 후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점이 세 번째 발병일 때 선생님의 주의를 끌었으며 선생님은 혹시 아비산 중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셨습니다. 의학에 있어서 문외한인 저희들이 생각해도 그와 같은 의심을 품는 것은 전적으로 당연하다고 보입니다. 구토와 설사는 아비산 중독일 때 일어나는 주요 증상이라고 하니 겐키치가 어떤 방법을 써서 사모님의 음식물에 아비산을 섞었으리라는 점은 이 또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추론입니다.

한편 사모님은 앞서 세 번에 걸친 발병으로부터는 다행스럽게 회복하고 네 번째 증상이 나타났을 때 결국 절명하셨으므로 이 사실로 미루어볼 때 앞서 세 번에 걸쳐 주어진 아비산은 양이 치사량 이하였다고 쉽게 상상할 수 있으며 살인자로부터 보자면 첫 번째 치사량을 주어 갑자기 사망하도록 한다면 혐의를 받을 수도 있으니 우선 세 번 정도 고통을 주고서는 그 다음에 치사량을 복용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매우 교묘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살인자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는 바로 독으로서 아비산을 선택한 점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가타오카 박사님 말씀에 의하면 서양에서는 아비산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의 독(fools poison)’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비산으로 독살할 경우 그 증상 때문에 바로 눈치 챌 수 있으며, 또한 시신부검에 의해서도 쉽게 그 존재를 발견할 수 있기에 어리석은 자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살인자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즉 아비산을 사용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의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비산은 이 경우에 있어서도 결국 문자 그대로 ’어리석은 자의 독‘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겐키치에 대한 혐의는 동기 면에 있어서나 기타 정황으로 보아도 점점 깊어질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와 같은 사정에 의해 겐키치가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단정한다는 것은 옛날 고릿적이라면 모를까 안타깝게도 현대에 있어서는 불가능합니다. 즉 겐키치가 사모님에게 아비산을 먹였다는 물적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때문에 저희들은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습니다. 첫째로 겐키치가 아비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겐키치가 아비산을 무엇인가에 섞여서 먹였다는 것을 아무리 자세히 조사해보아도 입증할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물 컵에 넣었거나 아니면 여름이었으니 음료수 속에 넣었거나 하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수상한 점이 있을 만도 한데 따님에게 물어도 가정부한테 물어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점이 밝혀지고 뒷받침할 만한 물적 증거 없이 겐키치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희들은 아무리 겐키치에 대한 정황증거가 많이 있다 할지라도, 물적증거가 없는 한 그 물적증거를 찾기보다 새롭게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요즘 경찰관이든 사법관이든 물적증거가 없는 경우 선입견에 사로잡혀 끝까지 물적증거를 찾으려 하다가 여러 가지 폐해가 발생하고 그 동안 범인은 놓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겐키치를 일단 사건에서 떼어놓는다면 어떤 추정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짚어보았습니다.

겐키치를 사건에서 제외시킨다면 우선 사모님이 자살하기 위해 아비산을 복용한 것이 아닐까도 해봤으나 이런 예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성립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모님이 자살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또한 자살한다면 번거롭게 하루건너 네 번이나 괴로워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신이상자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처럼 죽는다고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모님 자살을 논외로 한다면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사모님의 질병이 과연 아비산 중독이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모님은 앞뒤 네 번 동일한 증상이 나타났으나 네 번 모두 같은 원인이었는지는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 같은 초보자는 모르겠지만 증상이 흡사해도 원인이 전혀 다른 질병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 자리에 계시는 가타오카 박사님께 의뢰하여 아비산 중독 이외에 사모님 몸에서 어떤 다른 병균을 발견할 수 없을까 하여 면밀한 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가타오카 박사님은 시신 혈액검사 결과 혈구 속에서 말라리아 원충(原蟲)을 발견하셨습니다.

 

3.

검사는 마지막 말을 한 마디씩 또박또박 말하고는 그 말에 대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가만히 관찰했다.

과연 강한 반응이 있었다. 야마모토 선생은,

“뭐라고요? 말라리아?”

라고 놀란 듯이 소리 지르고는 가타오카 박사 쪽을 보고 캐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타오카 박사는 이 때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삼일열(三日熱) 말라리아 원충을 혈구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따라서 사모님이 사망했을 때에는 말라리아 발작도 합병증을 일으켰을 것이며, 또한 그로 말미암아 사모님이 하루걸러 그것도 같은 시간에 오한·고열·구토를 일으켰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구토가 말라리아 때 일어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 아닙니까?”

야마모토 선생은 반박했다.

“신경질적 여성이 말라리아에 걸리면 극심한 구토를 일으키거나 인사불성이 되기도 하니 다른 중독과 혼돈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검사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모님이 말라리아를 앓고 있었다면 적어도 네 번째 발병할 때, 네 번 모두 말라리아와 합병증을 일으켰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처음 세 번은 단순한 말라리아 발작이었으며 네 번째에는 아비산 중독과 합병증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이유는 처음 세 번은 다행히 회복하였으나 마지막에 운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실은 선생님께서 두 번째부터 진찰하셨는데 그 때 질병은 단순한 말라리아 발작이었는지 아니면 아비산 중독증상도 같이 일어났는지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야마모토 선생은 얼굴이 상기되고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힘겹게 닦아내며 대답했다.

“정말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제가 처음에 진찰했을 때에는 도저히 병명을 알 수가 없어서 그 다음, 그러니까 사모님이 세 번째 발병했을 때에도 말라리아라고는 조금도 모른 채 따님으로부터 사정을 듣고 혹시 아비산 중독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구토나 설사를 동반하는 말라리아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기에 오진을 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말라리아라고 알았다면 곧바로 키니네를 처방했을 것이므로 사모님의 세 번째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매번 발병할 때 말라리아 발작뿐이었는지 아니면 아비산 중독이 동반한 합병증이었는지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네 번째가 아비산 중독이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죠?”

“그것은 제가 네 번 모두 아비산 중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사모님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을 때 원인은 아비산 중독이 틀림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네 번째 때에는 진찰하지 않으셨죠?”

“급한 일이 생겨서 외출하고 있었기에 늦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아비산 중독이 일어나지 않도록 29일 아침 직원을 시켜 약을 한 봉지 배달시키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소화제였으며 아비산 중독을 막는 약은 아닙니다. 중독에 대해서는 따님에게 제가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털어놓고 적당하게 주의를 해두었기에 저는 비교적 안심하고 다른 용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걱정이 되었기에 일이 끝나는 대로 오쿠다 댁을 찾아갔더니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검사는 야마모토 선생의 답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으나 이윽고 입을 열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도 아비산 중독이라는 것은 단순히 상상에 의해 진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군요? 특별히 환자의 구토물을 화학적으로 검사하진 않으신 거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도 한 가지 제 상상을 말씀드려볼까요?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처음 세 번은 단순한 말라리아 발작이고 네 번째만이 아비산 중독과의 합병증을 일으켰다고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누군가가 처음 세 번째 발작을 이용해서 네 번째에 아비산을 환자에게 투여하고 독살시켜서 죄를 겐키치가 뒤집어쓰도록 계획을 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은 겐키치에게 원한을 갖고 있거나 겐키치를 제거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차남인 야스이치의 그 날 행동입니다.”

조금 전부터 검사 말을 지나치게 긴장하여 듣고 있던 야마모토 선생은 이 때 안도의 한 숨을 내쉰 것 같았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검사는 야마모토 선생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차남인 야스이치는 오랫동안 오쿠다 댁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는데 따님으로부터의 편지에 의해 겐키치의 행동과 어머님의 병이 어딘지 모르게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을 알고 29일 아침 겐키치가 집을 나서자 곧바로 몰래 들어왔습니다. 그 때 야스이치는 어떤 심정으로 찾아왔을까요. 모자간의 애정에 의해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왔을까요?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점은 매우 예민한 문제입니다. 어머니는 야스이치가 여자와 인연을 끊지 않는 동안은 절대 집으로 들여놓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야스이치는 약국을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갈 정도였으며 가끔 형님인 겐키치에 대한 넋두리를 했다고는 하나 최근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누이동생으로부터 어머님의 병과 형님의 행동에 대해 자세한 통지가 있었습니다. 야스이치가 따님의 편지를 읽었을 때 대의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일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말하자면 어머님을 제거하고 형한테 독살 혐의를 뒤집어씌운다면 야스이치는 당연히 오쿠다 집안의 재산을 상속 받고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야스이치는 어릴 때 불량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형님과는 친형제가 아닙니다. 아니, 아무리 친형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비슷했겠지요.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용하여 위험하긴 하나 연극 한 판을 벌여보자는 발상을 안 했다고 단정할 사람은 없겠지요. 불량기가 있었던 사람은 나쁜 짓을 할 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특히 운 좋게도 자신은 약방을 하고 있습니다. 즉 아비산은 가지고 있으며 그저 아비산을 이용하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비산을 들고 오쿠다 댁에 왔다고 추정해도 그리 불합리하지는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야마모토 선생은 검사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상상이라고는 하나 매우 진실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기에 문득 경탄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검사는 야마모토 선생의 미소도 못 본 척 하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야스이치는 어떻게 해서 아비산을 어머님께 먹였을까요. 그 점은 겐키치와 마찬가지로 문제입니다. 물론 야스이치도 어머님의 병이 말라리아라고는 모르고 형님인 겐키치가 어머님께 독을 먹였다고 믿고 있었으나 어떤 방법으로 형님이 어머님께 독을 먹이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랬기에 독자적인 방법으로 기회를 노리며 독을 먹이려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때 야스이치한테 있어서 좋은 정보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날 아침 선생님으로부터 사모님이 10시 경에 드리라고 했던 가루약 한 첩이 있다는 사실을 따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스이치는 따님에게 잠깐 그 약을 보여 달라고 해서 몰래 가지고 왔던 아비산을 그 속에 넣었습니다. 아비산은 흰색이고 맛도 알 수 없으므로 절대 복용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자, 저는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단순한 상상처럼 말씀드렸으나, 실은 상상할 만한 정황, 아니 오히려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선생님이 그날 아침 직원을 시켜 보낸 약을 쌌던 종이를 가타오카 박사님께 분석을 의뢰한 결과 아비산 존재가 명백하게 인정되었습니다.”

 

4.

이 말을 듣자 야마모토 선생은 축구공처럼 의자에서 튕겨 일어섰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만이 움직일 뿐 말문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검사는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놀라실 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넣었다고 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원을 시켜 보낸 약 속에 아비산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선생님이 넣은 것이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야스이치 군에게 혐의를 걸어봤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것이 이루어졌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혐의라고 하면 야스이치 군만이 아니라 겐키치나 따님, 그리고 가정부한테도 일단 걸어봐야 합니다. 앞서 저는 겐키치에 대해서는 일단 분리해서 생각하도록 말씀드렸으나, 여기에 와서는 겐키치를 또다시 등장시켜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가령 사모님이 처음 세 번에 걸친 발병이 말라리아라고 상상하고 겐키치와는 무관하다고 해도 겐키치도 또한 그 사실을 이용해서 독을 투여했다고 생각해도 될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처음 세 번에 걸친 발병까지 겐키치가 의심을 받고 있으므로 네 번째에 독을 투여했다면 당연히 겐키치가 당연히 범인이라고 지목받고 있는데 설마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겐키치 자신한테서 본다면 앞서 센 번에 걸친 발병에는 자신이 무관하니 네 번째에 독을 넣어서 다른 사람한테 혐의가 가게 하도록 계획을 짰다고 해도 지장이 없습니다.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겐키치의 애인인 오시마 에이코 씨로부터 들은 말인데, 겐키치 외에도 에이코 씨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이코 씨와의 결혼을 어머님으로부터 거절당하고 겐키치가 동반자살을 주장한 이유도 에이고 씨를 말하자면 연적한테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에이코 씨는 겐키치와 결혼할 수 없다면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며 굳게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소심한 겐키치가 여전히 불안감을 가졌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겐키치가 그 연적을 제거하려 했다는 점도 또한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겐키치가 어머님께 독을 주어서 어떻게 연적을 제거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 됩니다만, 야마모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시겠죠? 새삼 여쭙는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겐키치의 연적이란 선생님이시라면서요?

아니, 이런 것을 질문 드린다고 흥분시켜 송구스럽습니다만 이것도 신문 순서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겐키치가 그날 아침 어머님께 드릴 약이 선생님으로부터 보내온 것을 기회로 삼아 그 속에 아비산을 넣어 마치 선생님이 독살한 것처럼 보였다고 생각해도 절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겐키치가 독을 넣었는지 아니면 야스이치 군이 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약봉지에 남는 지문은 본래 불완전한 것이라서 누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떤 특정한 사람의 지문이 나왔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비산을 넣었다고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따님이나 가정부, 더 나아가 선생님 자신이 넣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도무지 모르겠기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선생님 외에 안 계시다는 생각에 이렇게 모셨던 것입니다.”

검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후지이 서장과 가타오카 박사도 어딘지 모르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야마모토 선생은 적지 않게 긴장해 보였으나, 높은 기온에 어울리지 않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한테 해결하라고 해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야마모토 선생은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신가요? 저는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선생님 외에 안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왜죠?”

“왜냐하면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생님께서 29일 아침 직원에게 들려 보낸 약 속에 아비산이 있었다고 하면 그 아비산을 넣은 사람은 야스이치나 겐키치, 따님이나 가정부, 그것도 아니라면 선생님 자신이거나 약을 들고 온 직원이겠지만 직원과 가정부 그리고 따님은 논외로 하고 남아 있는 남은 사람은 야스이치와 겐키치, 그리고 선생님 세 분이기 때문입니다. 겐키치와 야스이치에 관한 사정은 방금 전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만, 선생님에 대해서도 겐키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선생님께 있어서도 겐키치는 연적입니다. 오시마 에이코 씨에 의하면 선생님께서 S병원에 계실 때 에이코 씨한테 집요하게 접근하기에 그것이 너무나 피곤하여 병원을 그만 두고 M의류점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은 실연당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역시 연적끼리라고 해도 선생님께서 겐키치를 증오하는 정도는 겐키치가 선생님에 대해 품은 감정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따님한테서부터 말을 듣고 이번 기회를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이 사모님의 질병이 말라리아라는 사실을 아셨는지 여부는 묻지 않기로 하고 구토나 설사가 있다는 것을 기회로 삼아 아비산을 이용하려 한 점은 매우 자연스러운 추리 아닌가요? 겐키치나 야스이치도 의사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겐키치와 야스이치, 그리고 선생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누가 이 기회를 이용하기에 적합한지를 묻는다면 누구라도 선생님이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합니다. 야스이치가 약방을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의학적 지식이 있다고 해도 선생님만큼 쉽게 묘안이 떠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옛부터 독살은 여성들의 전매특허라고 여겨져 왔으며 남성이 독살을 할 때는 의사나 약사라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의사인 선생님을 지목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야스이치는 약방을 하고 있으므로 아비산을 얻기 쉽다고 해도 야스이치나 겐키치 모두에게 있어서 아비산을 넣을 때 매우 큰 모험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손쉽게 아비산을 투여할 수 있으며 명령하여 먹일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 명 중 선생님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인정한다는 것이 큰 잘못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야마모토 선생 얼굴은 흙색처럼 창백해지고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제가 아비산을 섞어 넣었다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겐키치나 야스이치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선생님이 29일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문제의 약을 직원한테 들려 보내고 선생님 자신이 환자에게 직접 먹이지 않았다는 것이 착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큰 실수는 선생님이 오쿠다 댁을 찾아와 사모님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오늘 아침 들려 보낸 약을 환자가 먹었는지 여부를 묻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야스이치 군은 그날 아침 겐키치가 집을 나선 뒤 몰래 숨어들어와 따님으로부터 10시 경에 먹어야 할 약이 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혹시나 형님이 그 속에 독을 섞지나 않았을까 의심하여 그 약을 어머님께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 약은 그대로 보존되고 가타오카 박사님께 분석을 의뢰하자 0.2그램의 아비산, 즉 치사량의 두 배나 되는 독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말을 듣자 야마모토 선생은 목에서 일종의 신음소리를 냈다.

“아니, 그래도.”

야마모토 선생은 소리쳤다.

“사모님은 아비산 중독으로 죽은 게 아닌가요?”

“물론 선생님의 사망진단서에는 아비산 중독이 사망원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타오카 박사님이 시신을 부검한 결과 말라리아의 존재를 발견하였으며, 그 결과 네 번씩이나 극심한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에 네 번째에 심장이 쇠약해져서 쓰러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겐키치나 야스이치, 또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사모님의 사망과는 무관합니다.”

이 때 야마모토 선생은 갑자기 눈을 꿈뻑거리더니 책상 위에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로 엎드러졌다. 그랬기에 검사가 한 다음 말을 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야마모토 선생님, 저는 당신을 오쿠다 부인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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