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범죄(稀有の犯罪)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7)
번역 : 홍성필
1.
비극이란 종종 마치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원인으로 발생하기도 합니다. 매우 작은 호기심이나 사소하기 짝이 없는 장난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큰 사건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책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려는 것은 역시 엉뚱한 원인으로 세 명의 보석강도가 그 생명을 잃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쓰면 감이 좋으신 독자 분들께서는 “아아, 보석을 다룬 추리소설이군. 요즘 추리소설에서 보석을 들먹이다니 너무나 구식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사실 말씀 그대로 보석과 권총에 대해서는 이미 질릴 대로 질렸습니다.
하지만 손목시계가 보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추리소설도 좀처럼 보석과 인연을 끊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보석 색과 빛깔은 사람을 매료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끝내는 일종의 황홀경에 빠질 정도이니 미노시마(箕島), 센바(仙波), 교야마(京山)의 세 명이 공모하여 보석전문 도둑이 된 것도 그저 유흥비로 쓰기 위한 돈이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왜 셋이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셋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하는 것은 본 내용과 관련이 없으므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셋은 보석에 대한 취향이 같았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석을 훔쳤는데, 항상 어느 정도 즐긴 후에는 팔아치워 돈으로 바꾸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돈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들 세 명의 보석에 대한 애착은 순수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뿐만 아니라 그들은 보석을 빼앗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해하게 하거나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기에 이른바 취미는 악취미라고 해야겠습니다.
이와 같은 악취미는 백일천하에서 얼마 버틸 수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경찰은 오랫동안 그 악취미를 제거하는 데에 실패했고,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 셋이 어디에 살고 어떤 얼굴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은 이 이야기의 필자뿐이며, 사실 그들은 시내 두 곳의 거주지 즉, 아지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명 모두 매우 분장술에 능했는데, 단순히 외모를 바꾸는 것만 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는 것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래서 경찰들도 좀처럼 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도둑으로 들어와서도 곧바로 그 집 주인으로 변장할 때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그런데 운이 다 했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해야 할까요. 경찰은 간신히 그들의 두 아지트 중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장소는 S구 B동이라는 비구니 절이 많은 동네로서, 전혀 보석 도둑들이 살 것 같지 않는 곳인데다가, 급할 때는 도망칠 수 있도록 경찰이 모르는 비밀 통로 같은 것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는 이번에 세 명이 어디 저택에 들어가 보석을 훔치기만 한다면 곧바로 아지트를 덮쳐서 그들을 체포할 작전을 세웠습니다. 이 점 또한 필자만 알고 있을 뿐, 그들 셋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N남작 집에 들어가 남작이 가지고 있던 청색 다이아몬드를 훔치자마자 경찰이 아지트를 습격하였고, 기묘한 이유로 결국 세 명 모두 생명을 잃게 된 것입니다.
N남작 집에 있는 청색 다이아몬드는 그들 셋이 오랫동안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물건은 시가로 최소한 2억이나 되는 보석이었으며 크기는 손가락 약지 끄트머리 정도 되었으나, 그 빛깔이 남쪽나라 바다처럼 푸르고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그들은 이 보석을 훔치면 잠시 일본을 떠나 중국에라도 가려던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역시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법이 없어, 결국 중국보다 훨씬 머나먼 저승길까지 여행하게 된 것입니다.
2.
이야기 순서대로라면 그들이 어떠한 수단으로 N남작 집에 있는 금고 속에 들어 있던 다이아몬드를 성공적으로 손에 넣었는지를 말해야 하지만 그런 추리소설은 이미 독자 여러분들도 질릴 대로 질렸을 테니, 저는 갑자기 세 명이 B동 아지트에 있는 탁자에 둘러 앉아 그들이 훔쳐온 다이아몬드를 탁자 중앙에 올려놓고 매료당한 표정으로 감상하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항상 이들 세 사람은 녹색 갓이 씌워진 탁상전등 불빛으로 보석의 아름다운 빛을 감상하곤 하는데, 때마침 시간이 새벽 2시인데다가 불과 1시간 전에 N남작의 집에서의 일로 상당히 심신에 피로를 느껴서인지 세 사람은 푸른 보석 빛깔 앞에서 마치 최면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오랜 시간 동안 묵언수행을 계속했습니다. 세 명 모두 담배를 싫어했으므로 옆에서 보면 매우 심심해보이지만 본인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나봅니다. 탁자에 올려놓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구부정하게 의자에 앉아서는 보석 빛에 자극을 받아 사색에 잠기는 것입니다. 소슬한 가을 밤, 바깥은 쓸쓸하고 절이 많은 동네의 고요함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기이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아름답다!”라고 미노시마가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굉장해!”라고 센바가 말했습니다.
“멋지다!”라고 교야마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30분 정도 감상하며 침묵이 이어졌을 때 청각이 가장 발달한 미노시마가 문밖에서 수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만약 세 명의 청각이 모두 예민했다면 지금부터 말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으나 센바와 교야마, 두 사람은 나이가 미노시마와 비슷한 서른 대여섯이면서도 청각의 발달이 평범하여 그 때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미노시마가 푸른 색 다이아몬드를 재빨리 집어 들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입속에 넣고 삼켜버리자 두 사람은 미노시마가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경찰의 추격이라고 하면서 보석을 독점하려 했다고 오해한 것입니다.
센바와 교야마는 동시에 미노시마한테 덤벼들었습니다. 그 때 미노시마가 그 이유를 설명하면 좋았을 것을, 미노시마는 세 명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데에 여념이 없어 갑자기 탁자 위에 있던 전등을 꺼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행위는 다른 두 사람의 의혹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쉿!” 미노시마는 두 사람에게 주의를 주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다음 순간 의자가 쓰러지는 소리, 탁자가 뒹구는 소리, 탁상 전등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어둠 속에서 극심한 격투가 시작한 것입니다.
엎치락덮치락 하며 요란한 소리가 계속됐습니다만, 그러는 와중에 갑자기 권총소리가 났고 동시에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조용해졌으나 그 때 문밖에서 쿵쾅쿵쾅 하고 사람들 발소리가 났습니다. N남작 집에서 도난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예전부터 지목하고 있었던 세 명의 아지트를 곧바로 덮친 것입니다.
경찰들이 셋이 있던 방으로 들어오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곧바로 문을 부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안에는 화약 연기와 냄새가 났습니다. 경찰들이 회중전등을 들고 실내를 비춰보자 가구더미 속에 미노시마, 즉 방금 전 다이아몬드를 삼킨 미노시마가 왼쪽 흉부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 있었습니다.
3.
만약 미노시마가 다이아몬드를 삼키지 않았다면 센바와 교야마도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미노시마 뱃속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되찾으려고 둘이 계획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B동 아지트에 있던 비밀통로를 통해 성공적으로 도망친 센바와 교야마는 제2의 아지트에 와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네가 미노시마를 죽이는 바람에 기껏 손에 넣은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말았잖아”라고 교야마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교야마의 말에 의하면 권총을 쏜 것은 센바처럼 보입니다.
“할 수 없잖아. 미노시마 그 놈이 우리 둘을 빼놓고 자기 혼자 다이아몬드를 독차지하려고 했으니까 그랬지. 그 놈한테 빼앗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고.”라고 센바는 미노시마를 죽인 것을 그다지 후회하지도 않고, 또한 다이아몬드를 잃은 것도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일본 땅을 떠날 수 있다고 기뻐했는데 완전히 엉망이 되고 말았어.”라고 교야마는 내뱉듯이 말했습니다.
“뭐 그렇게 낙심하지 마.”라고 센바는 위로했습니다. 센바는 매우 성격이 급한 편이기에 순간의 격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미노시마를 죽인 것이겠으나, 몹시 힘이 빠진 교야마를 보고 있노라니 우선 스스로 침착해지고 교야마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까워.”라고 교야마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눈치입니다.
“이런, 이봐.”라고 센바는 교야마에게 주위를 환기시키듯 말했습니다. “내 입장도 생각해줘. 난 사람을 죽였으니 오늘부터는 숨어 다녀야 해. 물론 잡히면 너도 끌어들일 생각이지만, 뭐 당분간은 잡히지 않을 테니 걱정은 마. 그것보다 무슨 새로운 일을 계획하자.”
“새로운 일보다 난 그 미노시마가 삼켜버린 다이아몬드를 되찾고 싶어.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교야마는 어디까지나 푸른빛 보석에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듣고 보니 센바가 생각하기에도 아까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쯤은 경찰 손으로 건너갔을 미노시마 시신에서 문제의 다이아몬드를 되찾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 돼. 미노시마 몸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경찰 놈들이 우리 아지트를 찾아냈을까. 어쩌면 미노시마 그 녀석이 경찰에 밀고해서 그 때 우리 둘을 경찰한테 넘겨주고 도망칠 생각이었는지도 몰라.”라고 센바는 어디까지나 미노시마의 행동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석을 미노시마가 가지고 있게 되면 더더욱 속상하잖아.” 교야마 역시 미노시마의 진심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라고 센바도 동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손을 쓸 도리가 없잖아.”
“한번 연구해보자고. 넌 나보다 인간의 몸에 대해서는 훨씬 많이 아니까 잘 생각해봐.”
센바는 본래 T의과대학 병리학교실에서 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기에 인간 해부에는 조금 익숙했으므로 교야마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센바는 인간 해부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자연히 살벌한 성미가 몸에 뱄는데, 아무리 인체 내부에 대해 안다고 하지만 미노시마의 몸속으로 들어간 다이아몬드를 되찾을 묘안이 떠오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잠깐만.” 하고 센바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는 잠시 사색에 잠겼습니다. 아침이 다가오는 듯, 거리에서 짐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둘은 그리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센바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묘안이 있어.”라고 센바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떤 건데?”라고 교야마는 흥분했습니다.
“아무튼 잘 들어봐.”라고 센바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미노시마의 시신은 오늘 틀림없이 대학 법의학교실로 운반되고 부검을 받겠지. 난 병리학교실에 있을 때 가끔 법의학교실에도 가봤는데, 법의학교실에는 교수와 조수 두 명, 그리고 병원 직원 도합 네 명이 있으며, 부검은 교수가 할 때도 있고 조수가 할 때도 있어. 살인사건의 시신이 외부에서 들어오면 일단 부검실에 놓고 곧바로 부검이 시작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4~5시간 뒤, 어떤 때는 교수 사정 때문에 다음 날에 하기도 하거든. 그러니 이번에도 그 동안 몰래 교실에 들어가서는 시체 배를 열어 위장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면 돼.”
“그렇군.” 하고 교야마도 이 묘안에 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밤이라면 또 모를까 오늘 낮에 부검이 시작되고 경찰들이 주변에 있다면 훔치러 들어갈 수도 없잖아.”
“그것도 그러네.”라고 센바는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가만히 교야마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는 “좋은 생각이 났어.”
“뭐야? 사람 얼굴만 쳐다보고 말이야.”
“바로 네 얼굴이 필요해서 그래. 무슨 말이냐 하면, 너한테 흰 가발을 씌우고 깨로 만든 콧수염과 턱수염을 붙이면 법의학교수인 오쿠다(奧田)박사와 꼭 닮았겠어. 그러니 교수로 분장하고 교실에 들어가서 다이아몬드를 꺼내오면 되잖아.”
“그래? 만약 그렇다면 참 재미있겠군.” 하고 지금까지 셋 중에서 가장 변장을 잘했던 교야마는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도 난 해부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안 되잖아. 만약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어쩔 도리가 없어.”
“바로 그거야. 네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된 거야. 그러니까 교수로 분장해서 조수한테 명령하고 모든 걸 조수한테 시키면 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이아몬드까지 그 조수한테 빼앗길 거잖아.”
“물론 멍하니 서 있기만 하면 안 되지. 곧바로 그 조수한테 명령해서 위장과 장은 자기가 연구해보고 싶다고 해서 위장을 절단하게 하고 그걸 가지고 도망치면 돼.”
“그렇지. 하지만 같은 교수가 둘이나 있으면 들키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도와주려는 거야.”라고 센바도 어느새 진지해졌습니다.
“우선 너랑 함께 경찰에서 왔다면서 법의학교실을 가는 거야. 교수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 동안에 네가 그 동안에 목소리나 버릇을 연구하는 거야. 그리고 갑자기 둘이서 교수를 묶어놓고 입을 막는 거지. 그러고는 네가 가지고 온 분장도구로 재빨리 교수로 변장해서 부검실로 간다. 그 동안 나는 교수실 안쪽에서 열쇠를 잠그고 진짜 교수를 지키고 있을게. 넌 부검실에서 조수한테 위장을 절단시키고 잠깐 내 방에 다녀온다고 하고 그걸 가지고 오는 거야. 여기서 재빨리 본래 옷을 갈아입고 내장을 신문지에 싸서 법의학교실을 빠져 나간다. 어때? 이거라면 그리 어렵지 않겠지?”
“기가 막히다.”라고 교야마는 벌써 계획이 성공한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정말로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2억 원을 둘이서 나눌 수 있으니 분명 기뻤을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준비를 시작하자. 지금부터 잠깐 눈을 붙이고 난 다음에 너는 전화를 걸어서 부검이 몇 시에 시작하는지 물어봐. 근데…… 혹시 벌써 시작한 건 아닐까?”라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괜찮아. 9시 이전에 시작하는 일은 절대 없어.” 라고 센바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4.
9시 조금 전.
센바는 법의학교실로 전화를 걸러 가서는 웃으며 돌아왔습니다. 둘 모두 숙면과 아침 식사 덕분에 기운이 넘쳐났습니다.
“어땠어?”라고 교야마가 물었습니다.
“아주 잘 됐어.”라고 센바는 물었습니다. “오후 3시 정각에 부검이 시작한다는 거야.”
“좋았어.”라고 교야마도 기쁜 듯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면서 그쪽에 물었지?”
“별로 어려울 건 없었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센바는 적지 않게 자랑스러워한다.
“여긴 경찰인데 어젯밤 S구 B동에서 살해된 시신은 벌써 도착했냐고 물었지. 그러자 거기 직원 목소리로 오늘 아침 일찍 도착했다고 하는 거야.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부검은 몇 시부터냐고 했더니 오후 3시부터라더군. 모두 잘 되고 있어.”
둘은 분장에 필요한 도구를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 40분경 법의학교실을 찾았을 때 둘은 완전히 사복경찰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덕분에 둘은 아무 의심도 받지 않은 채 교수실로 침입할 수 있었습니다. 교야마는 교수 얼굴을 한 번 보자마자 역시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동시에 교수 태도나 목소리가 지극히 흉내 내기 쉽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부검실에서 경찰과 검찰청 사람들의 입회하에 교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교수와 두세 마디 나눈 후 센바는 재빨리 교야마에게 신호를 보내 순식간에 교수 입을 막고 끈으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교야마는 흰 수술복을 입은 오쿠다 박사로 변장하고 말았습니다.
가짜 오쿠다 박사가 복도로 나가자 저쪽에서 역시 흰 옷을 입은 사내가 다가왔습니다. 교야마는 직감적으로 그가 조수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선생님. 모두 벌써부터 기다리고 계시기에 모시러 왔습니다.”
“그런가? 지금 좀 바빴거든.”라고 가짜 박사는 당당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조수는 경의를 표하기 위해 교수 뒤에 서서 걸어가려 했습니다. 교야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검실이 어딘지 모르기에 멈춰서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변장의 경험이 풍부한 교야마였으므로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오늘 부검은 자네들 둘이 해줬으면 하네. 그렇게 알고 먼저 가서 다른 조수에게 그렇게 전해주게.”
조수는 이상하다는 듯이 교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야노(矢野)는 오늘 안 나와서 선생님과 함께 부검할 예정이었는데요?”
“아, 그렇지.”라고 교야마는 내심 당황하며 대답했습니다. “잠시 깜빡했군. 사실 그 시신은 좀 수상한 곳이 있어서 뱃속에 있는……오장(五臟)을 내가 직접 조사하려고 하네. 그러니 수고스럽지만 자네가 우선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주지 않겠나.”
‘오장(五臟)’이라는 말을 지금까지 한 번도 선생님한테 들은 적이 없기에 조수는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만. 야노 조수가 없다는 것도 잊을 정도이니 선생님이 오늘은 좀 평소와 다르다고만 생각하였습니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조수가 앞서서 뛰어가려 하자,
“아, 이봐. 잠깐.” 하고 가짜 교수는 불러 세웠습니다. “자네,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뱃속에 있는 것만 가지고 와 주지 않겠나. 왠지 오늘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교야마도 다소 겁이 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선생님께서 직접 검사님한테 이 일을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선생님이 계시면 제가 곧바로 잘라내 드리겠습니다.”
이 마지막 말을 듣고는 갑자기 힘이 난 교야마는 “좋아. 그렇다면 인사를 가도록 하지.” 하고 조수 뒤를 따라 부검실로 들어갔습니다.
부검실 내에는 검사를 비롯해 기타 사법관, 경찰 몇 명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교야마는 주눅이 들었으나 기껏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며 용기를 내어 가볍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중앙 부검대 위에 있는 시체를 보게 되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신 얼굴과 국부는 거즈로 덮여 있었으나 가슴 흉터가 드러나 있고 거기서부터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는 교야마에게 있어서는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습니다.
“이 시신은.”하고 갑자기 교야마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 목소리가 뒤집혀 있었기에 모두 교수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한층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뱃속에 다이…… 아니, 그, 중요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것 같으므로 우선 뱃속에 있는 것만을 채취하여 그것을 저 자신이 조사해보려고 합니다. 이봐, 자네!”라고 조수를 보고는, “서둘러 채취해주게.”
본래 그 누구도 교수의 말은 거역하지 않는 법이기에, 무슨 질문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긴장했던 교야마는 어느 정도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수는 교수의 명령대로 복부를 절개하고 재빨리 복부 내장을 채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야마는 처음에는 섬뜩했으나 점점 보고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십 개나 되는 후복부 내장 모두가 에나멜로 만들어진 큰 철제 쟁반 위에 놓였을 때에는 곁에 있던 핀셋을 들고 장기 일부를 그럴 듯하게 만져볼 용기까지 생겼습니다.
가짜 교수는 이윽고 큰 쟁반을 들었으나 생각보다 무거웠기에 깜짝 놀라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제가 방까지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조수가 말했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이렇게 말하고 다시 들어 올렸으나 그 순간 문득 이것이 어제까지 함께 지내던 미노시마의 ‘창자’라고 생각하자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만약 그 때 조수가,
“선생님!”
하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쟁반을 바닥 위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릅니다.
조수는 말을 이었습니다. “흉부 해부는 어떻게 할까요?”
“계속 해주게. 난 곧 돌아오겠네.”
이렇게 말을 남기고 교야마는 도망치듯 부검실을 빠져나왔습니다.
5.
“정말 무겁네. 완전히 지쳐버렸어.”라고 교야마는 큰 신문지 다발을 탁자 위에 내던지고는 의자에 철퍼덕 앉았습니다.
“자업자득이야. 위장만으로 됐는데 쓸데없는 것까지 가져와서 말이야.”라고 센바는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얼굴에는 예정대로 일이 풀려 성공적으로 다이아몬드를 되찾은 것에 대한 만족스러움이 가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난 위장이라는 말을 깜빡하고 나도 모르게 ‘오장’이라고 해버렸거든.”
“바보야. 오장이라고 하면 가슴에 있는 내장까지 모두 들어간다고.”
“하지만 그 조수는 내 말을 그대로 믿고 아무튼 일을 잘 해줬잖아. 하지만 지금쯤 교실에서는 난리가 났겠지.”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교수는 내가 지키고 있는 동안 얌전히 있었어. 그런데 채취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네.”
“나도 정말 걱정이었지. ……자, 이제 서서히 다이아몬드를 꺼내볼까? 이제부터는 네가 할 차례야.”라고 교야마는 재촉하듯 말했습니다.
“내게 맡겨 둬.”라고 말하고 센바는 신문지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풀어감에 따라 생생한 피에 젖은 얼룩이 나왔기에 교야마는 묘한 기분이 들었으나, 센바는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루어 갔습니다.
이윽고 비교적 물기가 마른 듯한 내장이 드러났습니다.
“이게 비장이고 이게 간장. 이게 무척 무겁거든. 이게 위장이고 이 속에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고 그는 손가락으로 위장 표면을 만졌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밖에서 만져도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잠시 만지고 있었으나,
“어? 이상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교야마도 갑자기 온몸이 긴장되어 피에 물든 센바의 손끝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봐. 가위와 칼을 줘봐.”라고 센바의 말에 따라 교야마가 건네주자 재빨리 센바는 위장을 절개했습니다.
“없어. 장에까지 내려갔나?”
이렇게 말하고 센바는 조금 서두르는 듯이 십이지장, 소장, 대장, 직장을 절개하고는 그 내용물을 살펴봤으나 다이아몬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둘은 잠시 동안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분노와 절망 때문에 두 얼굴은 갑자기 창백해졌습니다.
“야! 없단 말이야!”라고 성미가 급한 센바가 이마에 핏줄을 세웠습니다.
“없을 리가 있나.”라고 교야마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잘 봐. 없잖아.”
“더 잘 찾아봐. 그 큰 간장이라는 것 속에는 없어?”
“이런 데에 갈 리가 있나.”
“그렇다면 미노시마가 입에 물고 있었나?”
그 말을 들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센바는,
“제기랄. 또 저 놈한테 한 방 먹었군. 그 녀석은 끝까지 속을 썩이네.”
라고 말하면서 마치 미노시마에게 복수를 하듯이 칼을 가지고 간장이나 비장을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이봐. 그만해. 없는 걸 어쩌겠어. 난 포기했다고. 기껏 네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이번에는 재수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야. 너도 포기해라.”라고 내뱉듯 말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교야마가 포기하지 못해 일을 계획했으나 지금은 센바가 오히려 포기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내장들을 찢어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만 하라니까.”라고 교야마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때 센바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끔찍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내장 중 하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고는 손으로 들어보더니,
“으악!”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게, 너, 웃기는 걸 가지고 왔구먼.”하고 무서운 눈으로 말했습니다.
“뭔데?”
“야, 이 자식아. 자궁이야!”
“뭐?”
“‘뭐’ 좋아하네. 잘 들어. 네가 가지고 온 건 여자 내장이란 말이야.”
“여자?”
“그럴 리가.”
“그럴 리가라니. 여자와 남자를 못 알아보는 놈이 어디 있어. 보면 알잖아.”
“하지만 얼굴과 국부에는 흰 거즈가 덮여 있었어.”
“머리카락이 있잖아,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은 없었어.”
“웃기지 마. 더구나 젖가슴을 보면 알거 아냐.”
“그게 젖가슴도 크지 않았던 것 같애.”
“야, 이 자식아.”라고 센바 목소리는 거칠어졌습니다.
“너 지금 나를 우습게 보는 거지?”
“뭐라고?”하고 교야마도 다소 화가 났습니다.
“너 이 자식, 조수를 속이고 미노시마의 다이아몬드를 뺏고 나서, 나한테는 다른 시체 창자를 가지고 왔잖아? 어쩐지 오래 걸린다 했더니!”
뜻밖의 말을 듣고 교야마의 분노는 갑자기 커졌습니다.
“무슨 소리야? 듣자듣자 하니 끝이 없군. 네 놈이 아까부터 여기저기 건드리더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이아몬드를 꺼내고는 내가 창자에 대해서 모른다는 걸 알고 자궁이라고 하면서 속이려는 게지?”
갑자기 센바는 교야마한테 달려들었습니다. 다음 순간 극심한 격투가 벌어지고 잠시 후 두 발의 총성이 울리고서 둘은 시체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신문에는 ‘보기 드문 범죄’라는 제목으로 T대학 법의학교실의 오쿠다 교수가 당한 재난과 감정시신의 복부장기 도난에 대한 전말이 보도되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S구 B동에 있는 비구니 절에 전날 밤 강도가 침입하여 비구니 가슴을 칼로 찔러 죽이고는 금품을 빼앗고 도망쳤는데, 그 비구니 시신의 장기를 두 사내가 가져갔으나, 무슨 목적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편 화장터에서 시신의 장기를 훔치는 범죄는 가끔 있으나, 법의학교실에 침입하는 것은 보기 드문 범죄라고 덧붙여졌습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도 장기가 뒤바뀐 경위는 아시겠지만, 여기에 당연히 드는 의문은 미노시마의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는 다음날 신문에서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경찰이 3인조 중에서 남은 두 명을 찾기 위해 비밀리에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미노시마 시신은 경찰에 의해 B동에 있는 아지트에서 해부되고, 그 결과 당연히 위장 안에서 푸른색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석은 무사히 N남작에게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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