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자와 담배(美男子と煙草)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8)
번역 : 위어조자
저는 지금까지 혼자서 싸워왔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아무래도 질 것 같아서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설마 지금까지 경멸해온 자들에게 제발 나를 끼워달라, 내가 잘못했다며 이제 와서 부탁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역시 혼자 싸구려 술이라도 마시면서 제 싸움을 계속 싸워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싸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옛 것과의 싸움입니다. 흔해빠진 잘난 척에 대한 싸움입니다. 뻔히 보이는 외식에 대한 싸움입니다. 인색한 일, 인색한 자를 향한 싸움입니다.
저는 여호와에게라도 맹세하며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싸움을 위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리하여 역시 저는 혼자 항상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심정으로, 그리고는 아무래도 질 것만 같아졌습니다.
기성세대는 심보가 고약합니다. 무엇이 어떻다며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문학론인지 예술론인지를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늘어놓으면서,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을 짓밟고는, 더구나 그런 자기 자신도 죄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니 대단합니다. 밀어봐도 당겨봐도 옴짝달싹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저 목숨이 아까워서,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출세하여 처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 무리를 지어 부질없이 서로 칭찬해가며, 이른바 일치단결하여 외로운 자를 괴롭힙니다.
저는 질 것만 같아졌습니다.
얼마 전 어느 곳에서 싸구려 술을 마시고 있더라니 거기에 나이 든 문학가 세 명이 들어와서, 제가 그 사람들과는 면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갑자기 저를 둘러 싸고는, 꼴불견 하게 술에취해가지고서 제 소설에 대하여 매우 엉뚱한 험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흐트러지는 것은 정말 질색이므로, 그 악담도 웃어 넘기고 있었습니다만,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너무나 억울하여 갑자기 오열이 나오고는 멈추지 않아, 밥그릇도 젓가락도 내팽개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고는 집안일을 하고 있던 아내에게
"사람이, 사람이 이렇게 목숨 걸고 필사적으로 쓰고 있는데, 다들, 동네북처럼, ……저들은 선배라구. 나보다 열 살도 스무 살도 위란말이야. 그러면서 모두 힘을 합쳐 나를 부정하려 하고 말이야, ……비겁해. 치사하다구. 이제 좋아, 나도 이제 참치 않겠어. 선배들의 악담을 공공연하게 말할 거야. ……이건 너무하잖아."
라며, 부질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점점 심하게 울음이 터져 나와,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제 주무세요. 아셨죠?"
라고 말하고는 저를 잠자리로 데리고 갔으나, 누우면서도 그 억울함으로 치밀어오는 오열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아, 살아간다는 일은 정말 싫다. 특히나 남자는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아무튼 무엇이든지 싸우고, 그리고는 이겨야 하니 말입니다.
그 억울함 때문에 울고불고 한 날부터 며칠 후, 어느 잡지사에 있는 젊은 기자가 와서, 제게 묘한 말을했습니다.
"우에노(上野)에 있는 부랑자(浮浪者)를 보러 가지 않겠습니까?"
"부랑자?"
"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제가 부랑자와 같이요?"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아무렇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왜, 특별히 저를 고른 것일까요. 다자이라고 하면 부랑자. 부랑자라고 하면 다자이. 무슨 그런 인과관계라도 있는 것일까요.
"가겠습니다."
저는 주눅들었을 때 오히려 반사적으로 상대방에게 대항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곧바로 일어서서 양복으로 갈아입고는 제가 오히려 앞장서서 그 젊은 기자를 재촉하듯 집을 나섰습니다.
추운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손수건으로 콧물을 누르며 말없이 걸었으나,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심정이었습니다.
미타카(三鷹) 역에서 전철로 도쿄 역까지 가서, 거기서 시철(市鐵)로 갈아타고는 그 젊은 기자의 안내를 받으며 우선 본사에 들러 응접실로 간 후, 그리고 우선 위스키 접대를 받았습니다.
생각건대 다자이 그 인간은 소인배이므로 위스키라도 마시게 해서 조금 기운을 차리게 해주지 않는다면 부랑자와 제대로 대담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본사 편집부의 친절한 배려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위스키는 매우 기괴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여럿 미심쩍은 술을 마셔 온 사람이며, 절대 고상한 척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홀로 마시는 위스키는 처음이었습니다. 세련된상표까지 붙어 있는, 제대로 된 병이었습니다만, 내용물이 탁했습니다. 위스키로 된 막걸리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마셨습니다.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응접실에 모여든 기자들에게도 마시지 않겠냐며 권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미소를 띄우며 안 마시는 것입니다.
저 혼자만 취하고는,
"뭐야, 자네들. 이건 실례 아닌가. 자기들이 못 마실 정도로 요상한 위스키를 손님한테권하다니, 너무하잖나."
라고 웃으면서 말했더니, 기자들은 이제 서서히 다자이도 취하기 시작했다. 이 술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부랑자와 대면시켜야 한다며, 말하자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를 자동차에 태우더니 우에노 역까지 데리고 가서, 부랑자의 숲이라고 하는 지하도로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의 이와 같은 용의주도한 계획도 그리 성공했다고는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하도로 내려가도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 그저 똑바로 걷고는, 그리고 지하도 출구 근처까지 와서, 닭꼬치구이 집 앞에서 소년들 네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매우 기분이 상했기에 다가가서는,
"담배는 관두게. 담배를 피우면 도리어 배가 고파지거든. 관두게. 닭꼬치가 먹고 싶다면 내가 사주지."
소년들은 피우던 담배를 착하게도 버렸습니다. 모두 열 살 전후인,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닭꼬치구이집 주인을 보고,
"이봐, 얘들한테 하나씩."
하고 말하고는, 이상하게도 연민 같을 것을느꼈습니다.
이것도 선행이라는 것이 될까, 미치겠군. 저는 갑자기 발레리의 어떤 말이 떠올라, 더욱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한 행동이 속물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행동처럼 보여졌다면, 저는 발레리에게 얼마나 경멸 당해도 할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발레리의 말 – 선을 행할 경우에는 항상 사과하며 해야 한다. 선행만큼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없으니까.
저는 감기라도 걸린 것 같은 심정으로 등을 굽히고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도 바깥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기자들 네 다섯 명이 제 뒤를 따라와서는,
"어땠어요? 마치 지옥이죠?"
다른 한 사람이,
"아무튼 전혀 다른 세계니까."
또 다른 한 사람이,
"놀랐죠? 소감은요?"
저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지옥? 설마. 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우에노 공원 쪽으로 걸어가, 저는 조금씩 수다스럽게 되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아무 것도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의 괴로움만 생각하고, 그저 똑바로 보고, 지하도를 서둘러 빠져 나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저를 택해서 지하도를 보여준 이유는, 알겠습니다. 그건 말이죠. 분명 제가 미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아니, 농담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알아보지 못했나요? 저는 똑바로 걷고 있어도 그 어두컴컴한 구석에 누워있는 부랑자들 거의 모두가 단정한 얼굴을 한 미남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미남들은 지하도 생활로 떨어질 가능성을 다분하게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자네는 색이 하얗고 미남이니 위험하겠어. 조심하게. 나도 조심할 테니 말이야."
다시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거만하고 또 자만해지고, 누가 뭐라 해도 교만해 빠지더니 문득 정신이 들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하도 구석에 누워 이미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저는 지하도를 지나치기만 해도 그와 같은 전율을 정말로 느꼈습니다.
"미남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다고 치고, 그밖에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나요?"
라는 질문에 저는,
"담배입니다. 그 미남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도 보이지 않았으나, 담배만은 대개 피우고 있더군요. 담배도 싸지는 않겠지요. 담배 살 돈이 있다면 오히려 한 켤레라도, 게다짝 한 켤레라도 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콘크리트 맨바닥에 누워 맨발로,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니, 지금 인간은 밑바닥에 떨어져도, 알몸이 되더라도 담배는 피워야만 하도록 되어있는 거겠죠. 남 얘기가 아닙니다. 아마 제게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드디어 지하도 행이 실현될 빛을 발하기 시작했구먼."
우에노 공원 앞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방금 전 소년 넷이 겨울 대낮의 햇빛을 받으며, 그야말로 희희낙락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그 소년들 쪽으로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가만히."
한 기자가 카메라를 저희 쪽으로 돌리며 소리치고는,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번에는 웃어보세요!"
그 기자가 렌즈를 들여다보며 다시 그렇게 소리치고는, 소년 하나는 제 얼굴을 보고,
"얼굴을 마주보면 그냥 웃게 되네."
라고 말하고는 웃어, 저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천사가 하늘을 날아, 신의 뜻에 의해 날개가 사라지고 낙하산처럼 세계 방방곳곳에 내려앉는 것이야. 저는 북쪽나라 눈 위에 내려앉고, 자네는 남쪽나라 귤 밭에 내려앉았으며, 그리고 이 소년들은 우에노 공원에 내려앉은, 그저 그 차이뿐이지. 이제부터 무럭무럭자라도 소년들이여, 외모에는 반드시 무관심하고, 담배를 피우지 말며, 술은 축제날 외에는 마시지 말고, 그리고 조용하고 살짝 세련된 아가씨와 오랫동안 사랑하게.
부기
이때 찍은 사진을 나중에 기자가 가지고 와 주었다.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는 사진과, 그리고 또 한 장은 내가 부랑자들 앞에 쭈그려 앉아, 한 부랑아의 다리를 잡고 있는, 심히 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만약 이것이 후일에 무슨 잡지에라도 실렸을 경우, 다자이는 멋 부리는 녀석이다. 그리스도처럼 그 요한복음에 나오듯 제자 발을 씻어주는 모습을 흉내 내고있다. 웃긴다며 오해를 불러일으킬소지가 없지 않으므로 한 마디 변명을 하겠으나, 나는 그저 맨발로 걷고 있는 아이의 발바닥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호기심만으로 그런 폼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웃긴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 사진 두 장이 보내져 왔을 때, 나는 아내를 불러,
"이게 우에노에 있는 부랑자야."
하고 가르쳐주었더니, 아내는 진지한 얼굴로,
"네에, 이게 부랑자군요."
라고 하며, 심각하게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문득 나는 그 아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보고 놀라,
"넌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건 나라구. 네 남편이잖아. 부랑자는 저 쪽이야."
아내는 지나치게 진지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농담 같은 것은 모르는 여자이다. 진심으로 내 모습을 부랑자라고 잘못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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