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부모라는 두 글자

부모라는 두 글자 - 한국어

관 리 인 2018. 4. 30.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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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두 글자(親という二字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6)

번역 : 홍성필


 '親(부모)라는 건, 두 글자라는 문맹인 부모님 말씀.' 이 옛 시는 읊는 사람으로 하여금 서글프게 만든다.


 "어디에 가서 뭘 하든지 親(부모)라는 두 글자는 잊지 말아라."


 "아부지. 親(부모)라는 글자는 한 글자라구요."


 "음, 어쨌거나 한 글자든 세 글자든 말이다."


 이런 식의 가르침은 교훈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서 옛 시의 해설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실은 얼마 전 어떤 문맹인 부모를 만나 이런 옛 시가 문득 떠올랐다는 것뿐이다.


 이재민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으나, 이재민이 되면 이상하게도 우체국에 갈 일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두 번이나 이재민 생활을 하여 결국 츠가루(津輕)에 사는 형님 댁으로 도망쳐 들어가 얹혀 사는 신세가 되었는데, 간이보험이다, 채권매각이다, 하는 볼일 때문에 종종 우체국에 갔으며, 또한 조금 지나자 센다이(仙臺)지역 신문에 '판도라의 상자'라는 제목의 실연소설(失戀小說)을 연재하게 되어, 그 원고의 발송이다, 전보치는 방법에 대한 협의다, 하여 더욱 우체국에 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 문맹인 부모를 알게 된 건 그 우체국 의자에서였다.


 우체국은 항상 꽤나 붐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나으리, 이것 좀 써 주겠시유?"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없어 보이고, 그리고 교활할 듯하며, 얼굴이나 몸집도 매우 작은 할아버지였다. 술꾼이 분명하다, 하고 나는 동족에게 느끼는 예민함으로 금새 알아보았다. 얼굴 피부가 파랗고 거칠며 코가 빨갛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우체국에서 설치해둔 벼루상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예금통장과 지급청구서 (그는 그 종이를 '돈 받는 종이'라고 한다), 그리고 도장, 이 세 가지를 내밀며 "써 줄 텐가?" 라는 말을 들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얼마죠?"


 "사십 엔."


 나는 그 지급청구서에 '사십 엔 정'이라고 적은 후 통장번호, 주소, 성명을 써 나아간다. 통장에는 옛 주소인 아오모리(靑森) 시 무슨 동네 몇 번지라는 곳에 줄이 그어져 있어, 새 주소인 키타츠가루(北津輕)군 카나기마치(金木町) 아무개 댁이라는 것이 곁에 적혀 있었다. 아오모리 시에서 피해를 입고 이쪽으로 옮겨온 사람인 지도 모른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으나, 과연 맞았다. 그리고 성함은,


 타케우치(竹內) 토키.


 라고 되어 있었다. 부인 통장인가 정도로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창구에 내고 다시 돌아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 있더니, 잠시 후 다른 창구에서 현금지급담당 직원이,


 "타케우치 토키 손님."


 이라 부른다.


 "옙."


 하고 노인은 태연하게 대답하고서 창구 쪽으로 간다.


 "타케우치 토키 손님. 사십 엔. 본인이신가요?"


 라고 직원이 묻는다.


 "아니구만유, 딸이지유. 예, 내 막내딸이구만유."


 "가급적 본인이 오도록 해주세요."


 라는 말을 하며 직원은 노인에게 돈을 건낸다.


 그는 돈을 받고서, 그리고는 '히힛'하며 웃기라도 하듯 두 어깨를 슬쩍 들더니 그야말로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는,


 "본인은 저 세상에 갔시유."


 나는 그로부터 매우 자주 그 노인과 우제국에서 얼굴을 마주쳤다. 그는 내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 웃으며,


 "나으리." 라고 부르고는 "좀 써주겠시유?"라고 한다.


 "얼마죠?"


 "사십 엔."


 항상 같았다.


 그리고 그러면서 조금씩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과연 술꾼이었다. 사십 엔도 그 날에 마실 그의 술값이라고 한다. 이 주변에는 여전히 불법술집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의 큰아들은 전쟁터에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큰딸은 키타츠가루인 이 마을의 나무 통 만드는 집으로 시집을 보냈다. 피해를 입기 전, 그는 막내딸과 둘이서 아오모리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공습으로 집은 타버리고, 막내딸은 큰 화상을 입어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으나 '코끼리가 왔어요, 코끼리가 왔어요.'라는 혼잣말을 하더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코끼리 꿈이라두 꿨나봐유. 묘한 꿈이지유, 흣." 하길래 웃는 줄 알았으나, 천만에, 울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라는 건 어쩌면 증산(增産:모두 발음이 같음 - 역자 주)이 아니었을까. 그 타케우치 토키 씨는 그때까지 오랫동안 구청에서 근무해왔다고 하니, '증산이 왔다'는 건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이라서, 그 말이 입에 배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나 그 문맹인 부모의 해석처럼 코끼리 꿈을 꾸었다는 쪽이 몇 십 배나 더 딱하게 여겨진다.


 나는 흥분하여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정말 지나치게 착실하고 폼잡기 위한 논쟁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겁 많고 마음도 여린 사람들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예요."


 스스로 생각해도 어리석은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말하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타키우치 토키 손님."


 라고 직원이 부른다.


 "옙."


 라며 대답하고서 노인은 의자에서 일어난다. 다 마셔버리세요, 라고 나는 아주 말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에잇, 다 마셔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저금통장은 물론 딸 명의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 내용은 어쩌면 타케우치 토키 씨의 통장보다도 훨씬 빈약했는지도 모른다. 금액의 정확한 보고 따위는 김빠지는 일이므로 안 하겠으나, 아무튼 그 돈은 어떤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겨서 갑자기 형님 댁에서 나와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할 때에, 비참한 꼴을 안 당하기 위해 우체국에 맡겨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 어떤 사람을 통해 위스키 열 병 정도를 살 수 있다는 소식이 있어, 그 답례를 위해서는 내 저금 중 거의 대부분이 필요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고는, 에잇, 다 술로 만들어버리자고 생각했다. 나중 일은 또 나중 일로서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안 되면 또 그 때에는 어떻게 되겠지.


 내년에는 벌써 서른 여덟인데도 아직 내게는 이런 형편없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평생을 이렇게 산다면, 이도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우체국에 갔다.


 "나으리."


 그 노인이 와 있다.


 나는 창구에 가서 지급청구서를 받으려고 했더니,


 "오늘 돈 받는 종이는 필요 없시유. 입금하는 거거든유."


 라고 말하며 상당한 양의 십 엔 짜리 지폐뭉치를 보이고는,


 "딸래미 보험금이 나왔거든유. 역시 딸 명의로 오늘 입금시킬 생각이구만유."


 "그것 참 잘되었군요. 오늘은 제가 돈을 찾으러 왔습니다."


 매우 묘한 전개였다. 이윽고 둘의 볼일은 끝났으나 내가 현금지급창구에서 받은 지폐뭉치는, 공교롭게도 방금 노인이 입금시킨 지폐뭉치 바로 그것이었기에, 왠지 모르게 노인에게 매우 송구스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돈을 어떤 사람에게 줄 때에도 타케우치 토키 씨의 보험금으로 위스키를 사는 것 같은 착각을 나는 느꼈다.


 며칠 후, 위스키는 내 방안 장롱 안으로 운반되고, 나는 부인에게,


 "이 위스키에는 말이야, 스물 여섯 살 짜리 여인의 생명이 녹아 들어있어. 이걸 마시면 내 소설도 훨씬 매력이 넘치게 될지도 모른다구."


 라고 말하고 나서, 우체국에서 문맹인 불쌍한 노인을 만났던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말해주자, 부인은 절반도 채 듣지 않고는,


 "거짓말. 아빠는 또 쑥스러워서 꾸며낸 말씀을 하시네요. 그치, 아가야?"


 라며 기어오는 두 살 짜리 아이를 무릎 위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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