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朝)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7)
번역 : 위어조자
나는 노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친구가 멀리서 오는 것을 남몰래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에 현관이 드르륵 열리면 미간을 좁히고 입을 실룩거리며, 그러나 내심 가슴을 설레며 쓰다만 원고지를 재빨리 치우고는 그 손님을 맞이한다.
“어, 이런, 일하시는 중이셨군요.”
“아니, 뭐.”
그리하여 그 손님과 함께 놀러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으므로 모처에 비밀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집사람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 9시경, 나는 집사람에게 도시락을 만들도록 하고 그것을 가지고 작업실로 출근한다. 과연 그 비밀작업실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기에 내 일도 대략 예정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오후 3시경이 되면 피곤도 하고 사람이 그리워졌으며 놀고도 싶어져 적당히 마무리를 짓고 집으로 돌아간다. 귀가 길에 오뎅집에 걸리게 되면 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는 일도 있다.
작업실.
그러나 그 작업실은 어느 여성의 집이다. 그 젊은 여성이 아침 일찍 니혼바시(日本橋)에 있는 어떤 은행으로 출근한다. 그 후에 내가 가서, 그리하여 4, 5시간 거기서 일을 하고, 그 여성이 은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나선다.
애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내가 그 분의 어머님을 알고 있어, 그리하여 그 어머님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 따님과 떨어져 동북지방에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가끔 내게 편지를 보내주어 그 따님의 혼담에 대해 내 의견을 구하기도 하고, 나도 그 후보자인 청년을 만나, 그 사람이라면 괜찮은 신랑감이겠지요, 찬성입니다, 라고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써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머님보다도 따님이 훨씬 더 나를 신뢰하고 있는, 아무래도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키쿠 짱, 얼마 전 너의 미래 신랑감을 만났어.”
“그래요? 어땠어요? 좀 겉멋 들지 않았나. 그렇죠?”
“뭐, 그저 그랬지. 그야 뭐 나에 비하면 어떤 남자라도 바보처럼 보일 테니까. 네가 참아라.”
“그것도 그러네요.”
따님은 그 청년과 깨끗이 결혼할 마음인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날 밤, 나는 술을 많이 마셨다. 아니, 술을 많이 마시는 건 매일 밤의 일이었으므로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었으나, 그날 밤 작업실에서 돌아가는 길에 역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곧바로 단골 오뎅집으로 안내하고 거하게 마시고는 서서히 술이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무렵, 잡지사의 편집자가, 아마 여기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며 위스키를 들고 나타나, 그 편집자를 상대로 또 그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이제 토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 될까 하고 중얼거리며, 왠지 끔찍한 생각이 들기에 이쯤에서 끝내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친구가 자리를 옮겨 이제부터는 자기가 사겠다고 말하더니 전철을 타고 그 친구의 단골 요리집으로 끌려가서는 거기서 다시 정종을 마시고, 간신히 그 친구, 편집자와 헤어졌을 때 나는 이미 걷지 못할 정도로 취해있었다.
“재워주게. 집에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 이대로 잘 테니까 부탁이야.”
나는 코타츠에 발을 집어넣고 윗도리를 입은 채로 잤다.
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캄캄했다. 몇 초 동안 나는 내 집에서 자고 있는 줄만 알았다. 다리를 조금 움직여보자 내가 양말을 신은 채로 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수가! 큰일이다!
아아, 이런 경험을 나는 지금까지 몇 백 번, 몇 천 번을 되풀이했을까.
나는 심음 소리를 냈다.
“춥지는 않으세요?”
라고 키쿠 짱이 어둠 속에서 말했다.
나와는 직각으로 코타츠에 다리를 집어넣고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아니, 춥진 않아.”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창문에서 소변을 봐도 될까.”
라고 말했다.
“상관 없어요. 그게 더 간편하고 좋겠네요.”
“키쿠 짱도 가끔 하는 게 아냐?”
나는 일어서서 전등 스위치를 돌렸다. 안 켜졌다.
“정전이에요.”
라고 키쿠 짱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창문 쪽으로 가서는 키쿠 짱의 몸에 발이 걸렸다. 키쿠 짱은 가만히 있었다.
“아이구, 이런.”
라고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간신히 창문 커튼을 만지고, 그것을 제친 후 창문을 조금 열어 물소리를 냈다.
“키쿠 짱의 책상 위에 클레브 공 부인이라는 책이 있었지?”
나는 다시 예전처럼 몸을 누이면서 말한다.
“그 무렵의 귀부인들은 궁전 마당이나, 아니면 복도 계단 밑에 어두운 곳 같은 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변을 보고 그랬거든. 창문에서 소변을 보는 것도 그래도 본래는 귀족적인 일이야.”
“술 드시겠다면 있어요. 귀족은 자면서 마시는 거죠?”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마시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귀족은 암흑을 꺼려하는 법이지. 원래부터 겁이 많으니까 말이야. 어두우면 무서워서 안돼. 초는 없나. 촛불을 켜주면 마셔도 괜찮아.”
키쿠 짱은 말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촛불이 켜졌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제 이걸로 오늘 밤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고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놓을까요?”
“등불은 등경 위에 두라고 성격에 나와 있으니 높은 곳이 좋겠지. 그 책장 위는 어떨까.”
“술은요? 컵으로 드시겠어요?”
“심야에 마시는 술은 컵에 따르라고 성경에 나와 있어.”
나는 거짓말을 했다.
키쿠 짱은 싱글싱글 웃으며 큰 컵에 술을 가득 따라서 가지고 왔다.
“아직 한 잔 더 따를 건 있어요.”
“아니, 이것 만으로 됐어.”
나는 컵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마신 후 다시 누웠다.
키쿠 짱도 나와 직각으로 누워, 그리고 속눈썹이 긴 큰 눈을 연신 깜빡이고 있어, 잠이 들 것 같진 않았다.
나는 가만히 책장 위에 있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촛불은 살아있는 것처럼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하며 움직인다.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문득 어떤 일이 뇌리를 스쳐 두려움을 느꼈다.
“이 촛불은 짧군. 조금 있으면 떨어질 것 같은데. 더 긴 촛불은 없나?”
“그것뿐이에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늘에 기도를 하고픈 심정이었다. 저 촛불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내가 잠이 들던지, 아니면 한 컵의 술기운이 깨든지, 그 둘 중 하나가 아니면 키쿠 짱이 위험하다.
촛불은 깜빡 거리며 조금씩 짧아지고 있으나 나는 전혀 잠이 오질 않았으며, 또한 한 컵의 술기운도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온몸을 뜨겁게 하고 점점 나를 대담하게 만들어갈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한숨이 나왔다.
“양말을 벗지 그러세요?”
“왜?”
“그게 더 따뜻해요.”
나는 그녀의 말대로 양말을 벗었다.
이제 큰일이다. 촛불이 꺼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나는 서서히 각오를 하려 하고 있었다.
촛불은 어두워지고, 그로부터 몸부림치듯 좌우로 움직이더니 순간 크고 밝아진 후, 직직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오므라들고는 꺼졌다.
조금씩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방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이미 어둠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 집으로 갈 차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