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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4

낙하 - 한국어

1. 짜증이 나는 아침이다. 도대체 누가 아침을 상쾌하다고 했는가. 아마도 눈이 뜨면 진수성찬이라도 차려져 있어, 나비 넥타이를 맨 하인을 따라 나서면, 넓직한 식탁에 앉아 충분한 시간을 걸쳐가며 여유롭고도 우아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는 한가한 인간들이 만들어냈을 쓸데없는 소리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머리 속과 위장 안에서 난리를 치고, 자명종을 부서져라 내리치며 일어난 아침의 어디가 상쾌하겠는가. 더구나, 같은 술이라도 마음 편히 마시는 자리였으면 위안이나 되겠지만, 헤어진지 2년이나 되는 마누라를 앞에 두고 마신 술이 얌전히 소화가 될 리도 없다. 신혼 초에는 그렇게 애는 더 있다 갖자고 했음에도 끝까지 우기더니, 지금에 와서 무슨 양육비 타령인가. 그렇지 않아도 빠짐 없이 다가오는 아침은 곤욕..

홍성필/낙하 2018.05.11

홍 의사의 추억 - 한국어

홍 의사의 추억 홍성필 (2008) 나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홍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홍 의사님’이나 ‘홍 박사’ 또는 ‘닥터 홍’도 아닌 그는 언제나 ‘홍 의사’였다. 물론 의사선생님이다. 이 ‘홍 의사’라는 단어가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어머니는 그를 ‘홍 의사님’도 아닌 그저 ‘홍 의사’라고 하셨다.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이 2008년이니 자그마치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여기는 아버지 생가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어머니를 만나 혼인을 하시고는 계속 서울에서 지내셨으나, 어머니의 산달이 다가오자 “자식은 내 고향에서 낳아야 한다”는 아버지 주장에 못 이겨, 결국 그 곳으로 내려가 시집..

이혼식 - 한국어

이혼식 홍성필 (1998) 등장인물 : 김덕길 노인 김영선 : 김덕길 노인의 3녀 김대식 : 김덕길 노인의 장남 경혜선 : 김대식의 처. 이옥순의 외동딸 이옥순 : 경혜선의 모 윤수복 노인 : 김덕길 노인댁 이웃 백함순 (백씨): 윤수복 노인의 처 명희, 윤숙, 연경 : 영선의 대학 동창 우체부, 순경, 하객, 사회자,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제 1 막 199x년 4월 1일 아침 김덕길 노인 집 무대 우측에 김덕길 노인댁 거실이 보이며, 좌측에는 현관이 있고, 현관 좌측에는 앞뜰이 있다. 김덕길 노인댁 거실의 벽은 뚫려 안이 보인다. 정면에는 김덕길 노인의 서재로 통하는 입구가 있으며, 우측에 침실 입구가 있고. 그 사이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서재 입구 앞에는 쇼파가 하나, 침실 앞과 맞은..

홍성필/이혼식 2018.05.03

열리지 않는 금고 - 한국어

열리지 않는 금고 홍성필 (1997) 1. '조금 흐린 날씨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리 상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뜬 후 처음 든 생각이다. 그 다음은 가로수가 양쪽 길가에 끝없이 늘어선 시내 어느 한 거리를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기분 좋게 밖으로 나갔을까.' "미경아, 아무리 일요일이라도 그렇지. 넌 언제까지 자고 있니? 어서 일어나지 못해. 빨리 씻고 밥 먹어라." 필요 이상으로 자서 그런지, 더 이상 잠이 오지도 않았지만 왠지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있고 싶었다. 이왕이면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일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아직 자고 있는 척을 했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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