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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훈계(女人訓戒:にょにんくんかい)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0)

일본어 원문


 辰野隆(ゆたか)先生の「仏蘭西(フランス)文学の話」という本の中に次のような興味深い文章がある。

「千八百八十四年と云うのであるから、そんな古い事ではない。オオヴェルニュのクレエルモン・フェラン市にシブレエ博士と呼ぶ眼科の名医が居た。彼は独創的な研究によって人間の眼は獣類の眼と入れ替える事が容易で、且つ獣類の中でも豚の眼と兎(うさぎ)の眼が最も人間の眼に近似している事を実験的に証明した。彼は或る盲目の女に此(こ)の破天荒の手術を試みたのである。接眼の材料は豚の目では語呂が悪いから兎の目と云う事にした。奇蹟(きせき)が実現せられて、其の女は其の日から世界を杖で探る必要が無くなった。エディポス王の見捨てた光りの世を、彼女は兎の目で恢復(かいふく)する事が出来たのである。此の事件は余程世間を騒がせたと見えて、当時の新聞にも出たそうである。然(しか)しながら数日の後に其の接眼の縫目が化膿(かのう)した為めに――恐らく手術の時に消毒が不完全だったのだろうと云う説が多数を占めている――彼女は再び盲目になって了(しま)ったそうである。当時親しく彼女を知っていた者が後に人に語って次のような事を云った。

 ――自分は二つの奇蹟を目撃した。第一は云う迄もなく伝説中の奇蹟と同じ意味に於ける奇蹟が、信仰に依(よ)らずして科学的実験に依って行われたと云う事である。然し之れは左迄(さまで)に驚く可(べ)き現象ではない。第二の奇蹟のほうが自分には更に珍であった。それは彼女に兎の目が宿っていた数日の間、彼女は猟夫を見ると必ず逃げ出したと云う現象である。」

 以上が先生の文章なのであるが、こうして書き写してみると、なんだか、ところどころ先生のたくみな神秘捏造(ミステフィカシオン)も加味されて在るような気がせぬでもない。豚の眼が、最も人間の眼に近似しているなどは、どうも、あまり痛快すぎる。けれども、とにかくこれは真面目な記事の形である。一応、そのままに信頼しなければ、先生に対して失礼である。私は全部を、そのままに信じることにしよう。この不思議な報告の中で、殊に重要な点は、その最後の一行(いちぎょう)に在る。彼女が猟夫を見ると必ず逃げ出した、という事実に就いて私は、いま考えてみたい。彼女の接眼の材料は、兎の目である。おそらくは病院にて飼養して在った家兎にちがいない。家兎は、猟夫を恐怖する筈はない。猟夫を、見たことさえないだろう。山中に住む野兎ならば、あるいは猟夫の油断ならざる所以(ゆえん)のものを知っていて、之を敬遠するのも亦(また)当然と考えられるのであるが、まさか博士は、わざわざ山中深くわけいり、野生の兎を汗だくで捕獲し、以て実験に供したわけでは無いと思う。病院にて飼養されて在った家兎にちがいない。未だかつて猟夫を見たことも無い、その兎の目が、なぜ急に、猟夫を識別し、之を恐怖するようになったか。ここに些少(さしょう)の問題が在る。

 なに、答案は簡単である。猟夫を恐怖したのは、兎の目では無くして、その兎の目を保有していた彼女である。兎の目は何も知らない。けれども、兎の目を保有していた彼女は、猟夫の職業の性質を知っていた。兎の目を宿さぬ以前から、猟夫の残虐(ざんぎゃく)な性質に就いては聞いて知っていたのである。おそらくは、彼女の家の近所に、たくみな猟夫が住んでいてその猟夫は殊にも野兎捕獲の名人で、きょうは十匹、きのうは十五匹、山からとって帰ったという話を、その猟夫自身からか或いは、その猟夫の細君からか聞いていたのでは無かろうかと思われる。すると、解決は、容易である。彼女は、家兎の目を宿して、この光る世界を見ることができ、それ自身の兎の目をこよなく大事にしたい心から、かねて聞き及ぶ猟夫という兎の敵を、憎しみ恐れ、ついには之をあらわに回避するほどになったのである。つまり、兎の目が彼女を兎にしたのでは無くして、彼女が、兎の目を愛するあまり、みずからすすんで、彼女の方から兎になってやったのである。女性には、このような肉体倒錯(とうさく)が非常にしばしば見受けられるようである。動物との肉体交流を平気で肯定しているのである。或る英学塾の女生徒が、Lという発音を正確に発音したいばかりに、タングシチュウを一週二回ずつの割合いで食べているという話も亦、この例である。西洋人がLという発音を、あんなに正確に、しかも容易にこなしているのは、大昔からの肉食のゆえである。牛の肉を食べるので、牛の細胞がいつしか人間に移殖され、牛のそれの如く舌がいくぶん長くなっているのである。それゆえ彼女もLの発音を正確に為す目的を以て、いま一週二回の割合いでタングシチュウを、もりもり食べているというのである。タングシチュウは、ご存じの如く、牛の舌のシチュウである。牛の脚の肉などよりは、直接、舌のほうに効目(ききめ)があろうという心意気らしい。驚くべきことは、このごろ、めきめき彼女の舌は長くなり、Lの発音も西洋人のそれとほとんど変らなくなったという現象である。これは、私も又聞で直接に、その勇敢な女生徒にお目にかかったことは無いのだから、いま諸君に報告するに当って、多少のはにかみを覚えるのであるが、けれども、私は之をあり得ることだと思っているのである。女性の細胞の同化力には、実に驚くべきものがあるからである。狐(きつね)の襟巻(えりまき)をすると、急に嘘つきになるマダムがいた。ふだんは、実に謙遜なつつましい奥さんであるのだが、一旦、狐の襟巻を用い、外出すると、たちまち狡猾(こうかつ)きわまる嘘つきに変化している。狐は、私が動物園で、つくづく観察したところに依っても、決して狡猾な悪性のものでは無かった。むしろ、内気な、つつましい動物である。狐が化けるなどは、狐にとって、とんでも無い冤罪(えんざい)であろうと思う。もし化け得るものならば何もあんな、せま苦しい檻(おり)の中で、みっともなくうろうろして暮している必要はない。とかげにでも化けてするりと檻から脱け出られる筈(はず)だ。それができないところを見ると、狐は化ける動物では無いのだ。買いかぶりも甚(はなはだ)しい。そのマダムもまた、狐は人をだますものだと単純に盲信しているらしく、誰もたのみもせぬのに、襟巻を用いる度毎に、わざわざ嘘つきになって見せてくれる。御苦労なことである。狐がマダムを嘘つきにしているのでは無く、マダムのほうから、そのマダムの空想の狐にすすんで同化して見せているのである。この場合も、さきの盲目の女の話と酷似しているものがあると思う。その兎の目は、ちっとも猟夫を恐怖していないばかりか、どだい猟夫というものを見たことさえないのに、それを保有した女のほうで、わざわざ猟夫を恐怖する。狐が人をだますものでもないのに、その毛皮を保有したマダムが、わざわざ人をだます。その心理状態は、両女ほとんど同一である。前者は、実在の兎以上に、兎と化し、後者も亦、実在の狐以上に、狐に化して、そうして平気である。奇怪というべきである。女性の皮膚感触の過敏が、氾濫(はんらん)して収拾できぬ触覚が、このような二、三の事実からでも、はっきりと例証できるのである。或る映画女優は、色を白くする為に、烏賊(いか)のさしみを、せっせとたべているそうである。あくまで之を摂取(せっしゅ)すれば、烏賊の細胞が彼女の肉体の細胞と同化し、柔軟、透明の白色の肌を確保するに到るであろうという、愚かな迷信である。けれども、不愉快なことには、彼女は、その試みに成功したという風聞がある。もう、ここに到っては、なにがなんだかわからない。女性を、あわれと思うより致しかたがない。

 なんにでもなれるのである。北方の燈台守の細君が、燈台に打ち当って死ぬ鴎(かもめ)の羽毛でもって、小さい白いチョッキを作り、貞淑(ていしゅく)な可愛い細君であったのに、そのチョッキを着物の下に着込んでから、急に落ち着きを失い、その性格に卑しい浮遊性を帯び、夫の同僚といまわしい関係を結び、ついには冬の一夜、燈台の頂上から、鳥の翼の如く両腕をひろげて岩を噛(か)む怒濤めがけて身を躍らせたという外国の物語があるけれども、この細君も、みずからすすんで、かなしい鴎の化身と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ろう。なんとも、悲惨のことである。日本でも、むかしから、猫が老婆に化けて、お家騒動を起す例が、二、三にとどまらず語り伝えられている。けれども、あれも亦、考えてみると、猫が老婆に化けたのでは無く老婆が狂って猫に化けてしまったのにちがいない。無慙(むざん)の姿である。耳にちょっと触れると、ぴくっとその老婆の耳が、動くそうではないか。油揚を好み、鼠を食すというのもあながち、誇張では無いかも知れない。女性の細胞は、全く容易に、動物のそれに化することが、できるものなのである。話が、だんだん陰鬱になって、いやであるが、私はこのごろ人魚というものの、実在性に就いて深く考えているのである。人魚は、古来かならず女性である。男の人魚というものは、未だその出現のことを聞かない。かならず、女性に限るようである。ここに解決のヒントがある。私は、こうでは無いかと思う。一夜彼女が非常に巨大の無気味の魚を、たしなみを忘れて食い尽し、あとでなんだかその魚の姿が心に残る。女性の心に深く残るということは、すなわちそろそろ、肉体の細胞の変化がはじまっている証拠なのである。たちまち加速度を以て、胸焼きこげるほどに海辺を恋い、足袋(たび)はだしで家を飛び出しざぶざぶ海中へ突入する。脚にぶつぶつ鱗(うろこ)が生じて、からだをくねらせ二掻(か)き、三掻き、かなしや、その身は奇しき人魚。そんな順序では無かろうかと思う。女は天性、その肉体の脂肪に依り、よく浮いて、水泳にたくみの物であるという。

 教訓。「女性は、たしなみを忘れてはなら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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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훈계(女人訓戒)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0)

번역 : 홍성필


 타츠노 유타카(辰野 隆) 선생님이 쓰신 “프랑스 문학 이야기”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글이 있다.


 “1884년이라고 하니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오베르뉴 지방 끌레르몽 페랑 시에 사는 시브레 박사라고 하는 안과 명의가 있었다. 그는 동착적인 연구에 의해 인간의 눈은 짐승 눈과 바꾸기 쉬우며, 유독 짐승 중에서도 돼지와 토끼눈이 가장 사람 눈과 가깝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어느 소경인 여인에게 이 놀라운 수술을 시도한 것이다. 접안재료로서 돼지 눈은 아무래도 좀 불쾌하므로 토끼눈을 쓰기로 했다.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고 그 여인은 그날부터 세상을 지팡이로 더듬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디푸스 왕이 버린 빛의 세상을 그녀는 토끼눈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상당한 화젯거리였는지 당시 신문에도 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그 접안을 봉합한 곳에 염증이 생겨 ― 아마도 수술 당시 소독이 불완전했을 것이라는 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 그녀는 또다시 소경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그녀와 가까웠던 사람이 훗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나는 두 가지 기적을 목격했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전설 속 기적과 같은 의미에서의 기적이 신앙에 의하지 않고 과학적 실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두 번째 기적이 내게는 더욱 놀라웠다. 그것은 그녀가 토끼눈을 가지고 있었던 며칠 동안, 그녀는 사냥꾼을 보면 반드시 도망쳤다는 현상이다.”


 이상이 그 선생님 글인데 이렇게 옮겨 놓고 보니 어쩐지 군데군데 선생님의 교묘한 신비적인 날조도 가미되어 있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 돼지 눈이 가장 사람 눈에 가깝다는 점 등은 아무래도 너무나 통쾌하다. 그러나 아무튼 이는 진지한 기사이다. 일단 그대로 믿지 않는다면 선생님에 대해 실례이다. 나는 전부를 그대로 믿기로 한다. 이 불가사의한 보고 중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그 마지막 한 줄에 있다. 그녀가 사냥꾼을 보면 반드시 도망쳤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지금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녀의 접안 재료는 토끼눈이다. 아마도 병원에서 기르고 있던 집토끼임이 분명하다. 집토끼가 사냥꾼을 무서워할 리가 없다. 사냥꾼을 본 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산속에 사는 야생 토끼라면 어쩌면 사냥꾼에 대한 두려움도 알고 있어 이를 멀리 하는 것도 또한 당연하다고 여겨지나, 설마 박사님이 애써 산속 깊숙이 들어가 야생 토끼를 힘들게 포획하여 이를 가지고 실험에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사육된 집토끼였음이 분명하다. 아직 사냥꾼을 본 적도 없는 그 토끼 눈이 왜 갑자기 사냥꾼을 알아보고 이를 두려워하게 되었는가. 여기에 사소한 문제가 있다.


 대수로울 것 없다. 답은 간단하다. 사냥꾼을 두려워한 것은 토끼 눈이 아니라 그 토끼 눈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다. 토끼 눈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토끼 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잘 알고 있었다. 토끼 눈을 갖기 전부터 사냥꾼의 잔인한 성격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녀 집 근처에 실력 좋은 사냥꾼이 살고 있어, 그 사냥꾼은 유독 야생토끼 사냥을 잘 하여 오늘은 열 마리, 오늘은 열다섯 마리, 산에서 잡아왔다는 이야기를 그 사냥꾼으로부터 직접 또는 그 사냥꾼 부인으로부터 듣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해결은 쉽다. 그녀는 집토끼 눈을 갖고 그 빛나는 세계를 볼 수 있었으며 그녀 자신이 토끼 눈을 매우 아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예전부터 들어왔던 사냥꾼이라는 토끼의 적을 증오하고 두려워하여 결국에는 그를 노골적으로 회피하게 된 것이다. 즉, 토끼 눈이 그녀를 토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가 토끼 눈을 사랑하는 나머지 스스로 자진하여 그녀 쪽에서부터 토끼가 되어준 것이다. 여성에게는 이와 같은 육체도착이 매우 자주 보이는 듯하다. 동물과의 육체교류를 태연하게 긍정하고 있다. 어떤 영어학원 여학생이 ‘L’이라는 발음을 정확하게 발음하고 싶은 나머지 우설스프를 일주일에 두 번씩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또한 이와 비슷하다. 서양인이 ‘L’이라는 발음을 그렇게 정확히, 그것도 어렵지 않게 하고 있는 이유는 옛날부터 육식을 했기 때문이다. 쇠고기를 먹고 있으므로 소 세포가 어느새 인간에게 이식되어 소처럼 혓바닥이 어느 정도 길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도 ‘L’ 발음을 정확하게 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지금 일주일에 두 번씩 우설스프를 열심히 먹고 있다고 한다. 우설스프는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소 혓바닥으로 만들어진 스프이다. 우족 같은 것보다 직접 혓바닥에 효험이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놀라운 점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그녀의 혀는 길어지고 ‘L’ 발음도 서양인들과 비슷해졌다는 현상이다. 이 이야기는 나도 전해들은 것이므로 직접 그 용감한 여학생을 뵌 적은 없기에 지금 여러분들께 보고함에 있어서는 조금 자신감이 없으나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세포의 동화력은 실로 놀랍다. 여우 목도리를 하면 갑자기 거짓말쟁이가 되는 부인이 있었다. 평소는 매우 겸손하고 얌전한 부인인데 일단 여우 목도리를 하고 외출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활한 거짓말쟁이가 된다. 여우는 내가 동물원에서 자세히 관찰해본 바에 의해도 절대 교활하거나 악한 성질을 가진 동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성적이고 얌전한 동물이다. 여우가 변신한다니, 여우한테 있어서는 당치도 않는 누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변신할 수 있다면 굳이 그런 좁아터진 우리 안에서 볼품없이 어슬렁거리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 도마뱀으로라도 변신하여 스르륵 우리 속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할 수 없다는 점을 보면 여우는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근거 없는 과대망상이다. 그 부인도 또한 여우는 사람을 속인다고 맹신하고 있는 듯 누가 부탁하지 않는데도 목도리를 쓸 때마다 애써 거짓말쟁이가 돼 보여준다. 참으로 수고가 많다. 여우가 부인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부인 쪽에서부터 그 부인의 공상 속에 있는 여우와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도 위에서 본 맹인 여성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토끼 눈은 조금도 사냥꾼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냥꾼이라는 것을 본 적도 없는데도 토끼 눈을 가진 여성 쪽에서 애써 사냥꾼을 두려워한다. 여우가 사람을 속이는 것도 아닌데 그 목도리를 가진 부인이 애써 사람을 속인다. 그 심리상태는 두 여인 모두 거의 비슷하다. 전자는 실제 토끼 이상으로 토끼가 되고, 후자는 실제 여우 이상으로 여우가 되면서도 태연하다. 기괴한 노릇이다. 여성들이 갖는 피부촉감의 과민성이 지나쳐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촉각을 이와 같은 두 세 사실로도 분명하게 입증할 수 있다. 어떤 영화배우는 피부색을 희게 하기 위해 오징어 회를 열심히 먹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이를 섭취하면 오징어 세포가 그녀의 육체 세포와 동화되어 유연하고 투명한 흰색 피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미신이다. 그런데 불쾌하게도 그녀는 그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풍문이다. 이제 이 지경까지 오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여성을 가엾게 여기는 수밖에 없다.


 뭐든 될 수 있는 것이다. 북방에 있는 등대지기 부인이 등대에 부딪혀 죽은 갈매기 깃털들을 모아 작은 흰 조끼를 만들었는데, 정숙하고 귀여운 부인이었으나 그 조끼를 옷 밑에 입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침착함을 잃고, 그 성격이 들뜨더니 남편 동료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서 결국 어느 겨울밤, 등대 꼭대기에서 새 날개처럼 두 팔을 벌리고는 바위에 몰아치는 파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는 외국 이야기가 있으나 이 부인도 스스로 자진하여 가엾은 갈매기가 되어버린 것이리라.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일본에도 예부터 고양이가 노파로 변하여 집안에 소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그것도 또한 생각해보면 고양이가 노파로 변한 것이 아니라 노파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고양이로 변한 것이 분명하다. 비참한 노릇이다. 귀를 살짝 만지면 움찔하고 그 노파 귀가 움직인다지 않는가. 유부를 좋아하고 쥐를 잡는다는 이야기도 어쩌면 과장이 아닌지도 모른다. 여성 세포는 매우 쉽게 동물과 동화될 수 있다. 이야기가 점점 암울해지기 시작하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는 요즘 인어라는 것에 대한 실재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인어’란 옛날부터 항상 여성이다. 남자인 인어가 나타났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항상 여성인 것 같다. 여기에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숨어 있다. 나는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밤 그녀가 매우 거대고 징그러운 생선을, 몸가짐도 뒤로하고 다 먹어버리고는 나중에 왠지 그 생선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여성 마음에 깊이 남는다는 것은 즉 서서히 육체 세포에 변화가 시작된 증거이다. 순식간에 가속이 붙어 가슴이 타들어가듯 바다가 그리워지고, 맨발로 집을 뛰쳐나가 첨벙첨벙 거리며 바다로 돌진한다. 가슴에 우툴두툴 비늘이 나기 시작하고는 몸을 꿈틀거리며 헤엄쳐 나아가자 안타깝게도 그 몸은 기이한 인어. 이런 식이 아닐까 한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그 육체 세포에 의해 물에 잘 뜨고 수영을 잘 한다고 한다.


 교훈. “여성은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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