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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57

시체양초 - 한국어

시체양초(屍體蠟燭)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7) 번역 : 홍성필 저녁부터 심해진 바람은 바다에서 짐승이 굶주림에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고리(고리 주고(廚庫), 본당 건물을 스쳐가고, 대지를 허물어뜨릴 것만 같은 비는 간혹 모래를 내던지듯 문을 두드렸다. 문짝이라는 문짝, 기둥이라는 기둥들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집체는 마치 공중에라도 떠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여름에서 가을에 걸친 폭풍부의 특징 때문에 실내 공기는 숨 막히듯 찜통더위가 계속 되었다. 그 더위는 한층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고 폭풍우의 위력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랬기에 올해 열다섯이 되는 동자승 법신(法信)이 천정에서 떨어지는 그을음도 무서워 방안 구석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법신아!” ..

수술 - 한국어

수술(手術)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X월 X일. 제 집에서 “탐정취미모임” 정규모임을 가졌습니다. 매우 더운 밤이었으나 모인 것은 남성이 다섯, 여성이 셋. 저를 포함하여 도합 아홉 명이 어두컴컴한 전등 밑에서 미꾸라지 피와도 같은 수박을 먹으며, 처음에는 범죄나 유령에 관한 하염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이라는 건 흥미롭군요. 서양 전설에 나오는 마귀할멈은 아홉이라는 숫자를 매우 좋아했다고 하니까요.” 라고 회사원이고 서양문화 통인 N씨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저희는 괴담 기분에 빠져있었기에 마귀할멈이라는 말이 여느 때보다도 무척이나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N씨는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맥배드에서 세 명의 마귀할멈이 요술약..

보기 드문 범죄 - 한국어

보기 드문 범죄(稀有の犯罪)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7) 번역 : 홍성필 1. 비극이란 종종 마치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원인으로 발생하기도 합니다. 매우 작은 호기심이나 사소하기 짝이 없는 장난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큰 사건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책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려는 것은 역시 엉뚱한 원인으로 세 명의 보석강도가 그 생명을 잃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쓰면 감이 좋으신 독자 분들께서는 “아아, 보석을 다룬 추리소설이군. 요즘 추리소설에서 보석을 들먹이다니 너무나 구식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사실 말씀 그대로 보석과 권총에 대해서는 이미 질릴 대로 질렸습니다. 하지만 손목시계가 보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추리소설도 좀처럼 보석과 인연을 끊기..

메두사의 머리 - 한국어

메두사의 머리(メューサの首)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6) 번역 : 홍성필 T의과대학 4학년 여름 방학에 우리는 졸업시험을 위해 친구인 마치다(町田)와 함께 둘이서 이즈산(伊豆山)에 있는 S여관에 갔습니다. 6월 말이었기에 피서객도 아직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공부하기에는 매우 좋았으나, 공부는 명분만 그럴 뿐, 저희들은 신나게 놀고 말았습니다. 동양에서 최고라고 하는 센닌(千人)온천을 단둘이서 독점하고 헤엄치거나 삼대온천폭포를 맞기도 하였으며, 철도가 보이는 방에서 당구를 치거나, 돌멩이만 수두룩한 해안을 걸으며 모래 없는 것을 개탄하기도 하고, 아니면 방안에서 하츠시마(初島)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오징어만 먹은 탓에 설사를 하거나, 때로는 많은 돌계단을 올라 이즈산 신사를 참배하고, 또..

공포의 선물 - 한국어

공포의 선물(恐ろしき贈物) 고사카이 후보쿠 (小酒井 不木) (1925) 번역 : 홍성필 뉴욕 시 웨스트 제70가에 있는 아파트에 그레이스 워커라는 40대 전후인 여성이 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지극히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경찰은 예전부터 그녀를 지목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는 쉽게 말하자면 ‘만남의 방’ 같은 것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많은 양가집 자녀에게 부끄러운 행위를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바이로렛 리오나드라고 하는 15세 여자 아이를 데려왔을 때 경찰 단속에 걸려 소녀는 어떤 교화원으로 보내지고 그녀도 구속된 후 상당한 죄값를 치렀다. 석방되고 난 후 그녀는 이전에 살던 집 근처에서 아파트를 빌려 역시 예전과 같은 어둠의 일을 시작했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친구가 찾아와..

연애곡선 - 한국어

연애곡선(恋愛曲線) 고사카이 후보쿠(小酒井不木)(1926) 번역 : 홍성필 친애하는 A군! 자네의 인생 최대의 축제를 축하하기 위해 나는 지금 내 정성어린 기념품으로서 ‘연애곡선’이라는 것을 보내려 하고 있네. 이와 같은 선물은 결혼식 때는 물론 기타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일본은 고사하고 중국이나 서양, 아니 천지개벽 이후 아직 누구 손에 의해서도 시도되지 않았으리라 하고 나는 매우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네. 가난한 일개 의학자인 내가 아무리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산 물건이라 하더라도 백만장자 2세인 자네한테는 절대 만족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믿은 나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 연애곡선을 생각해냈고, 이것이라면 충분히 자네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믿으며 이 편지를 쓰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처..

좌흥이 아니다 - 한국어

좌흥이 아니다(座興に非ず)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이도 저도 못할 저녁 무렵에는 혼고(本鄕)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팡이를 질질 끌며 우에노(上野)공원까지 걸어본다. 9월도 중순이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내가 입은 백지의 유카타(浴衣)도 이미 철이 지난 듯하여, 내가 보아도 저녁 어둠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 같아 더욱 슬퍼지고, 살기가 싫어진다. 시노바즈(不忍) 연못을 훑어가며 불어오는 바람은 미지근하여 시궁창냄새가 났고, 연못에 있는 연꽃도 뻗은 채로 썩어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웅성웅성 떼를 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넋이 나간 듯,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여, 이 세상의 종말을 연상케 했다. 우에노 역까지 오고 말았다. 수많은 검..

용모 - 한국어

용모(容貌 )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1) 번역 : 홍성필 내 얼굴은 요즘 또다시 한층 커진 것 같다. 본래부터 작은 얼굴은 아니었으나 요즘 들어 더 커졌다. 미남이란 작고 아담한 얼굴을 말한다. 얼굴이 매우 큰 미남이란 그리 흔하지 않다. 상상하기도 힘들다. 얼굴이 큰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대단”, “장엄”, 또는 “훌륭”해지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하마구치 오사치 (浜口雄幸) 씨는 얼굴이 매우 큰 사람이었다. 역시 미남은 아니었다. 그러나 훌륭했다. 장엄하기까지 했다. 용모에 대해서는 남몰래 수양한 적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이렇게 되면 하마구치 씨처럼 되도록 수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커지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거만하다고 오해를 받는다. ..

여인훈계 - 한국어

여인훈계(女人訓戒)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0) 번역 : 홍성필 타츠노 유타카(辰野 隆) 선생님이 쓰신 “프랑스 문학 이야기”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글이 있다. “1884년이라고 하니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오베르뉴 지방 끌레르몽 페랑 시에 사는 시브레 박사라고 하는 안과 명의가 있었다. 그는 동착적인 연구에 의해 인간의 눈은 짐승 눈과 바꾸기 쉬우며, 유독 짐승 중에서도 돼지와 토끼눈이 가장 사람 눈과 가깝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어느 소경인 여인에게 이 놀라운 수술을 시도한 것이다. 접안재료로서 돼지 눈은 아무래도 좀 불쾌하므로 토끼눈을 쓰기로 했다.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고 그 여인은 그날부터 세상을 지팡이로 더듬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디푸스 왕이 버린 빛의 세상..

[희곡] 겨울의 불꽃놀이- 한국어

겨울의 불꽃놀이(冬の花火)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6) 번역 : 홍성필 등장인물 카즈에 29세 무츠코 카즈에의 딸, 6세 덴베에 카즈에의 부, 54세 아사 덴베에의 후처, 카즈에의 계모, 45세 카나야 세이조 마을 사람, 34세 기타 에이이치 (덴베에와 아사의 자, 미귀환) 시마다 데츠로 (무츠코의 친부, 미귀환) 모두 등장 안함. 장소. 쓰가루 지방의 어느 부락. 때. 1946년 1월 말경에서 2월에 걸쳐. 제1막 무대는 덴베에 집 거실. 다소 유복해 보이는 지주 집과 같은 형태. 안쪽에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보인다. 안쪽은 부엌, 바깥쪽은 현관이다. 막이 열리자 덴베에와 카즈에, 방 안쪽에 있는 스토브를 쬐고 있다. 둘 모두 말이 없다. 큰 벽시계가 3시를 알린다. 어색한 분위기. 갑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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