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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10

피부와 마음 - 한국어

피부와 마음(皮膚と心)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작은 콩알만한 두드러기가 왼쪽 유방 아래에 있어, 자세히 보자 그 두드러기 주변에도 조금씩 작은 두드러기들이 마치 이슬이라도 뿌려진 것처럼 퍼져있어서, 하지만 그 때까지는 가렵지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보기가 싫어 목욕탕에서 젖 밑을 타월로 세게,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비볐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와서 화장대 앞에 앉아 가슴을 피고 거울에 비쳐보았더니 징그러웠습니다. 목욕탕에서 제 집까지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며, 그 새에 가슴 밑에서 배에 걸쳐 손바닥 두 개 정도의 넓이로 새빨갛게 여문 딸기처럼 생겨있어, 저는 지옥을 보는 듯하여 제 주변이 점점 캄캄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지금까지의 저와는 달라졌습..

불꽃놀이 - 한국어

불꽃놀이(花火)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2) 번역 : 홍성필 소화(昭和) 초기, 동경에 있는 한 가정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이다. 요츠야(四谷) 구 모 번지 모 호에 츠루미 센노스케(鶴見 仙之助)라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서양화가가 있었다. 그 무렵 이미 50을 넘었었다. 동경에 사는 의사 아들이었으나 젊었을 때 프랑스로 건너가 르노와르라는 거장에게 사사하여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와서는 일본 화단에 있어서 상당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부인은 무츠(陸奧) 지방 출신이다. 교육자 가정에 태어나, 아버지가 전근을 명 받을 때마다 가족도 함께 이사하며 여러 곳으로 옮겨 다녔다. 그 아버지가 동경의 독일어학교 주사(主事)로 영전(榮轉)하여 온 것은 부인 나이 17세이던 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

황금풍경 - 한국어

황금풍경(黄金風景)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나는 어렸을 때 그리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식모를 괴롭혔다. 나는 게으른 일에는 질색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식모를 특히 괴롭혔다. 오케이(お慶)는 게으른 식모였다. 사과 껍질을 깎게 해도, 까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 번, 세 번씩 손을 멈추고는 ‘야!’ 하고 그 때마다 따끔하게 주의를 주지 않으면 한 손에는 사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채로 언제까지나 멍하니 있는 것이다. 머리가 좀 모자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보았으나 어린 마음에도 볼품이 없고 이상하게 마음에 거슬려 “야, 오케이, 하루는 짧다구” 라며 어른 흉내를 내..

가정의 행복 - 한국어

가정의 행복(家庭の幸福)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8) 번역 : 홍성필 '관료가 나쁘다'는 말은 이른바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게'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어딘가가 좀 부족한 듯하기도 하고 진부하여 바보같이 느껴져서, 내게는 '관료'라는 족속의 정체는 어떤 것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나쁜 건지 도무지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논외, 관심 밖, 이런 심정에 가까웠다. 즉, 관료는 목에 힘을 준다, 그것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그러나 민중들도 치사하고 더럽고 욕심 많고, 배신도 하며 쓸모 없는 인간들도 많으므로 말하자면 피장파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관리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학업에 전념하여 커감에 따라 입신출세, 오로지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며 근검절약, 친구한테 구두쇠라는 말을..

누구 - 한국어

누구(誰)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1) 번역 : 홍성필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쌔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가복음 8장 27절) 매우 위태로운 장면이다. 예수는 그 고뇌 끝에 자아를 잃고 너무나도 불안한 나머지 일자무식인 제자들을 향해 “나는 누구냐”라고 하는 이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일자무식인 제자들의 대답에 의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믿고 있었다. 우직하게 믿고 있었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축견담 - 한국어

축견담(畜犬談)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홍성필 나는 개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물릴 것이라는 자신이다. 나는 분명 물릴 것임이 틀림 없다. 자신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잘도 물리지도 않고 지내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여러분. 개는 맹수다. 말을 넘어뜨리고 가끔은 사자와 싸워 이를 정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나는 외로이 수긍하고 있다. 그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라.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저렇게 길가에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어, 한 낯 볼 품 없는 듯이 스스로를 비하하여, 쓰레기더미를 뒤지곤 하고 있으나 본래는 말을 넘어뜨릴 정도의 맹수다. 언제 어느 때에 광분하여 그 본성을 드러낼지 아무도 모른다. 개는 반드시..

찬스 - 한국어

찬스(チャンス)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6) 번역 : 홍성필 인생은 찬스다. 결혼도 찬스다. 연애도 찬스다. 이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다고 그 유물론적 변증법 따위를 들먹이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연애는, 찬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연애란 무엇인가. 나는 말한다. 그것은 매우 부끄러운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이다 뭐다,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금 내 책상 곁에 있는 사전을 펼쳐 보니 ‘연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었다. ‘성적충동에 기인한 남녀간의 애정. 즉, 사랑하는 이성과 한 몸이 되려는 특수한 성적애(性的愛).’ 그러나 이 정의는 애매하다. ‘사랑하는 이성’이란 ..

비잔 - 한국어

비잔(眉山)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8) 번역 : 홍성필 이는 그 음식점 폐쇄령이 아직 내리지 않았을 무렵의 이야기이다. 신쥬쿠(新宿) 주변에도 이번 전쟁으로 많이 불에 타고 말았으나, 가장 신속하게 복구된 곳은 먹고 마시는 집이었다. 테이토자(帝都座) 뒤에 있는 와카마츠야(若松屋)이라는, 판잣집은 아니지만 급조된 2층집도 그 중 하나였다. “와카마츠야도, 비잔(眉山)만 없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Exactly. 그 녀석은 너무 시끄러워. Fool 바로 그 자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들은 사흘에 한 번꼴로 그 와카마츠야를 찾아 가서는 그 곳 2층 타타미 6조 방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마시고, 그리하여 결국은 새우잠을 자게 된다. 그 집은 우리들에게 특별히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 돈도 ..

아침 - 한국어

아침(朝)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7) 번역 : 위어조자 나는 노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친구가 멀리서 오는 것을 남몰래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에 현관이 드르륵 열리면 미간을 좁히고 입을 실룩거리며, 그러나 내심 가슴을 설레며 쓰다만 원고지를 재빨리 치우고는 그 손님을 맞이한다. “어, 이런, 일하시는 중이셨군요.” “아니, 뭐.” 그리하여 그 손님과 함께 놀러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으므로 모처에 비밀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집사람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 9시경, 나는 집사람에게 도시락을 만들도록 하고 그것을 가지고 작업실로 출근한다. 과연 그 비밀작업실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기에 내 일..

사랑과 미(美)에 대하여 - 한국어

사랑과 미(美)에 대하여(愛と美について)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39) 번역 : 위어조자 남매 다섯이 있어 모두 로망스를 좋아했다. 장남은 스물 아홉. 법학사였다. 사람을 대할 때에 조금 거만하게 구는 나쁜 버릇이 있으나, 이는 그 자신의 연약함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어서, 사실은 매우 약하고 착하다. 남매들과 영화를 보러 가서는, 이건 졸작이다, 어리석다고 하면서도 그 영화에 나오는 사무라이들 간의 의리와 인정에 압도 되어 우선 먼저 울어버리는 것은 항상 큰 형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영화관을 나와서는 갑자기 거만해져 심술이 난 것처럼 잠시 동안 한 마디도 안 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다며 주저 없이 공언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강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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