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지 않는 금고 홍성필 (1997) 1. '조금 흐린 날씨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리 상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뜬 후 처음 든 생각이다. 그 다음은 가로수가 양쪽 길가에 끝없이 늘어선 시내 어느 한 거리를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기분 좋게 밖으로 나갔을까.' "미경아, 아무리 일요일이라도 그렇지. 넌 언제까지 자고 있니? 어서 일어나지 못해. 빨리 씻고 밥 먹어라." 필요 이상으로 자서 그런지, 더 이상 잠이 오지도 않았지만 왠지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있고 싶었다. 이왕이면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일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아직 자고 있는 척을 했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