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眉山)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8)

번역 : 홍성필


 이는 그 음식점 폐쇄령이 아직 내리지 않았을 무렵의 이야기이다.


 신쥬쿠(新宿) 주변에도 이번 전쟁으로 많이 불에 타고 말았으나, 가장 신속하게 복구된 곳은 먹고 마시는 집이었다. 테이토자(帝都座) 뒤에 있는 와카마츠야(若松屋)이라는, 판잣집은 아니지만 급조된 2층집도 그 중 하나였다.


 “와카마츠야도, 비잔(眉山)만 없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Exactly. 그 녀석은 너무 시끄러워. Fool 바로 그 자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들은 사흘에 한 번꼴로 그 와카마츠야를 찾아 가서는 그 곳 2층 타타미 6조 방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마시고, 그리하여 결국은 새우잠을 자게 된다. 그 집은 우리들에게 특별히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 돈도 뭐도 안 가지고 가서는, 후불처리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미타카(三鷹)에 있는 우리 집 바로 근처에 역시 와카마츠야라고 하는 생선가게가 있어, 그곳 주인이 예부터 나와는 술친구이기도 하며, 또한 우리 가족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 그 주인이, “한 번 가보세요. 내 누님이 신쥬쿠에서 새로 가게를 냈습니다. 예전에는 츠키지(築地)에서 하고 있었지요. 당신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누님한테 말을 하고는 있었거든요.  하룻밤 묵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그 길로 바로 가서 취하고는 그리고 묵었다. 누님이라는 분은 벌써 나이가 어느 정도 든, 깔끔한 여주인이었다.


 무엇보다 외상이 되는 점이 매우 편리했다. 나는 손님들을 접대할 경우 대부분 그 곳으로 안내했다. 내게 오는 손님들은, 내가 이렇긴 해도 소설가 나부랭이이므로 소설가가 많아야할 텐데, 화가나 음악가들이 내방할 때는 있어도 소설가는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그래도 신쥬쿠에 있는 와카마츠야 여주인은 내가 데리고 가는 손님들이 모두 소설가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 듯, 특히 그 집에서 일하는 여종업원 토시 짱은 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밥보다 좋아했다고 하여, 내가 그 집 2층으로 손님을 안내하면 벌써 저 분은 누구냐면서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묻는다.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씨야.”


 그는 나보다도 다섯이나 나이가 많은, 머리가 벗어진 서양화가였다.


 “어머?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이 밥보다도 좋다며 허풍을 치는 토시 짱은 매우 당황하며,


 “하야시 선생님이라는 분이 남자예요?”


 “그래. 타카하마 쿄오코(高浜虛子)라는 할아버지도 있고, 카와바타 류우코(川端龍子)라는, 콧수염 난 훌륭한 신사도 있어. (사실은 모두 여류 소설가임 - 역자 주)”


 “모두 소설가예요?”


 “뭐, 그렇지.”


 그날 이후 그 서양화가는 신쥬쿠에 있는 화카마츠야에 있어서 하야시 선생님이 되었다. 사실은 니카 회(二科會 : 미술단체 - 역자 주)에 있는 하시다 신이치로(橋田新一郞) 씨였다.


 한 번은 내가 피아니스트 카와카미 로쿠로(川上六郞) 씨를 와카마츠야에 있는 그 2층으로 안내한 적이 있다. 내가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로 내려갔더니, 토시 짱이 술병을 들고는 계단 밑에 서 있으면서,


 “저 분은 누구세요?”


 “시끄러 죽겠네. 누구면 어떻냐.”


 나도 과연 짜증이 났다.


 “에이, 누구신데요?”


 “카와카미라고 해.”


 이미 화가 치밀어 올라 평소처럼 농담도 하기 싫어져, 나도 모르게 사실대로 말을 했다.


 “아아, 알았다. 카와카미 비잔(川上眉山). (추리작가 - 역자 주)”


 웃기다기 보다는 참을 수 없는 그녀의 무지함이 한심하여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정으로,


 “에잇, 멍청아!”


 라고 소리쳐줬다.


 그날 이후 우리들은, 얼굴을 맞대고는 그녀를 토시 짱이라 부르고 있었으나, 뒤에서는 비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와카마츠야를 ‘비잔 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잔 나이는 스물 전후이며, 그 외모는 키가 작고 검은 피부에, 얼굴은 납작하고 눈이 가늘었으며 어디 하나 좋은 점이 없었으나 눈썹만은 가냘프게 초승달 모양으로 아름다워, 그 때문에도 비잔(眉山)이라는 그녀의 별명이 딱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무지함과 뻔뻔함, 그리고 소란스러움에는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아래층에 손님이 있어도 그녀는 우리들이 있는 2층으로만 찾아와, 그러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우리들 화제에 끼어들어온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일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 인권이라는 건…….”


 하고 누가 말하자,


 “네?”


 라며 곧바로 나서서는,


 “그건 어떻게 생긴 거예요? 역시 미국 건가요? 언제 배급되죠?”


 인견(人絹)으로 잘못 들은 듯하다. (일어에서 ‘人權’과 ‘人絹’은 같은 발음 - 역자 주) 너무 지나치기에 함께 앉아 있던 모두가 흥이 깨져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비잔 혼자서 매우 재미있다는 듯 웃는 얼굴로,


 “아무도 안 가르쳐주잖아요.”


 “토시 짱, 아래에 손님 온 것 같은데?”


 “상관없어요.”


 “아니, 너는 상관없더라도…….”


 점점 불쾌해질 따름이었다.


 “쟤는 백치가 아닐까요?”


 우리들은 비잔이 없을 때 마음껏 울분을 토해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잖아요. 이 집도 나쁘진 않지만, 저 비잔이 있으면 역시 좀 그렇죠?”


 “그래도 자기 딴에는 꽤 잘난 줄 알아요. 우리들이 이렇게 미워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오히려 모두의 귀염둥이…….”


 “으악! 못 참겠어.”


 “근데 정말 그런지도 모르지. 내가 듣기로 저 친구는 귀족…….”


 “네에? 그건 금시초문입니다. 묘한 이야기로군요. 비잔이 자기가 그러던가요?”


 “그럼요. 그 귀족이라는 것 때문에, 저 녀석, 큰 실수를 저질렀거든요. 누군가가 저 녀석을 속이고 하는 말이, 진짜 귀부인은 오줌을 눌 때 앉지 않는다고 가르쳐줬어요. 그러자 저 멍청이가 남몰래 화장실에서 시험해본 거예요. 그랬더니 이거야 원, 사방팔방으로 다 튀어서 화장실은 물바다가 되고, 그러고는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니까요. 알고 계시겠지만 여기 화장실은 뒤쪽에 있는 과일가게와 공동으로 쓰고 있는데, 과일가게 주인이 화를 내서, 아래 여주인한테 항의하고, 하마터면 범인은 우리들, 주정뱅이들은 못 말린다, 이렇게 되어 우리들이 누명을 쓴 불쾌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들이 취했다고 해도 그렇게 대홍수를 만들어놓는 실수는 안 하잖아요. 아무래도 이상해서 여기저기 알아보았더니, 비잔이었어요. 그 녀석은 우리들한테 단번에 자백하더군요. 화장실 구조가 나쁘답디다.”


 “그런데 왜 또 귀족이라고…….”


 “요즘 유행하는 말 아닐까요? 듣기에 비잔 집안은 시즈오카(靜岡) 시에서 명문으로…….”


 “명문? 별 희한한 명문도 다 있네.”


 “살고 있던 집이 어마어마하게 컸대요. 전쟁 때 모두 불타서 몰락했다지만요. 글쎄, 테이토자(帝都座)만큼 컸다고 하니 놀랍죠.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까 무슨 초등학교라고 해요. 저 비잔은 그 초등학교 급사 딸이었던 거예요.”


 “음, 그래서 하나 생각난 게 있다. 저 녀석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너무 험악하죠? 올라갈 때는 쿵쾅쿵쾅, 내려갈 때는 굴러 떨어지듯이 퉁탕퉁탕 하고 내려가서,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고서는 문을 쾅 닫아버립니다. 덕분에 우리들이, 언제였죠?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적이 있잖아요? 저 계단 밑에는 방이 또 하나 있어, 여주인 친척이 이빨 수술을 하러 상경해 와서는 그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치통에는 그 쿵쾅쿵쾅도 퉁탕퉁탕도 울리잖아요. 여주인한테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2층 손님들이 자기를 죽인다면서요. 그런데 우리들 식구들한테는 그 정도로 난폭하게 오르내리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여주인한테는 제가 대표로 한 마디 들었어요. 기분이 안 좋아서 저는 여주인한테 말했죠. 그건 비잔, 아니, 토시 짱이 분명하다고 말이에요. 그러자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비잔은 웃으면서, 자기는 어렸을 때 튼튼한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라왔다면서,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거예요. 그 때 저는, 여자란 참으로 한심하고도 허영심에 찬 허풍을 떤다며 어이없어 했는데, 그랬군요. 학교에서 자랐군요. 그렇다면 허풍은 아닙니다. 초등학교에 있는 계단은 튼튼하니까 말이에요.”


 “들으면 들을수록 불쾌하네. 이제 내일부터 단골집을 바꿉시다. 바꿀 때도 됐어요. 어디 다른 아지트를 찾읍시다.”


 그러기로 다짐하고 다른 술집을 여기저기 들르면서 걸어 봐도 결국 다시 와카마츠야로 오게 된다. 무엇보다 외상이 되므로 나도 모르게 이쪽으로 오고 만다.


 처음에는 내 안내로 이 집으로 온 그 대머리 하야시 선생, 즉 서양화가 하시다 씨도 그 후로부터는 혼자 와서 이 집 단골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 밖에도 두세 명 그런 사람들이 생겨났었다.


 날도 풀리고, 이제 서서히 벚꽃이 피기 시작하여 나는 그날, 젠신자(前進座)에 있는 젊은 배우 나카무라 쿠니오(中村國男) 군과 비잔집에서 만나 볼일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 볼일이란, 사실은 그의 중매 때문인데 조금 복잡하여, 우리 집에서는 조금 목소리를 낮춰가며 의논해야하는 사정도 있었기에 비잔 집에서 만나 서로 큰 소리로 말하고자 약속한 것이었다. 나카무라 쿠니오 군도 그 때는 이미 비잔 집에서 거의 단골이었으므로, 그리하여 비잔는 그를 나카무라 무라오 씨 (中村武羅夫 : 작가 - 역자 주)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보니 나카무라 무라오 선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며, 하야시 선생, 즉 하시다 신이치로 씨가 가게 탁자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가관이었어요. 비잔이 된장을 밟아버렸어요.”


 “된장을요?”


 나는 카운터에 한쪽 팔꿈치를 올려놓고 서 있는 여주인 얼굴을 보았다.


 여주인은 매우 불쾌한 듯이 미간을 찡그리고는 다시 하는 수 없다는 듯 웃으면서,


 “저 아이가 덤벙거리는 건 말도 마세요. 바깥에서부터 눈을 부릅뜨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더니 갑자기 철퍼덕 했다니까요.”


 “밟은 거예요?”


 “네. 오늘 막 배급 받은 된장을 그릇에 가득 담아두었는데, 저도 놓는 곳이 안 좋긴 했겠지만, 하필이면 거기에 발을 집어넣을 건 없잖아요. 거기다가 발을 뽑더니 뒤꿈치만 들고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더라니까요. 아무리 못 참겠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서두를 필요야 없잖아요. 화장실에 된장 묻은 발자국이라도 있으면 손님들이 뭐라고 …….”


 말을 하다 말고는 크게 웃었다. 


 “화장실에 된장은 곤란하겠네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하지만 화장실 가기 전이라 다행이네. 화장실 갔다가 나온 발이라면 문제지. ‘비잔의 물바다’라고 해서 워낙 유명하니까 말이야. 그 발로 밟았다면 분명 된장도 똥이 되고 말 거야.”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된장은 쓸 수 없어요. 지금 토시 짱한테 버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전부요? 이게 중요한 건데. 가끔 아침에 여기 와서 된장국을 얻어먹을 때가 있는데,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묻는 건데 말이에요.”


 “전부예요. 그렇게 의심나신다면 이제 저희 집에서는 손님한테 된장국은 안 내놓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겠네요. 토시 짱은요?”


 “우물가에서 발을 씻고 있습니다.”


 라고 하시다 씨는 말하고는,


 “아무튼 장렬했습니다. 저는 보고 있었거든요. 된장 밟는 비잔. 카부키 연극으로 만들면 볼만 하겠던 걸요?”


 “아니, 볼만 하긴요. 된장 준비하는 게 큰 일일 거예요.”


 하시다 씨는 그날 볼일이 있다면서 곧 돌아가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나카무라 선생을 기다렸다.


 된장 밟은 비잔은 술병을 들고 쿵쾅쿵쾅 올라왔다.


 “자네는 어디 몸이 안 좋은 게 아니야? 가까이 오지 말라구. 병 옮을라. 맨날 화장실만 가잖아?”


 “설마요.”


 하고 즐겁다는 듯이 웃고는,


 “저 있잖아요. 어렸을 때는, 토시 짱은 화장실 같은 곳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듯한 얼굴이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귀족이라면서. ……근데 가식 없는 내 느낌을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는 언제 봐도 방금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하는 얼굴인데…….”


 “어머, 너무해.”


 그래도 역시 웃고 있다.


 “언제였던가, 윗도리 소매를 등으로 돌린 채로 여기에 술을 가지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런 건 일목요연이라고 하는 거야. 문학적으로는 말이야. 그런 꼴로 술을 따르다니, 예의가 아니지 않나.”


 “맨날 그런 소리만 하셔.”


 태연하기 짝이 없다.


 “이봐, 자네. 더럽지 않나. 손님 앞에서 손톱 때를 후벼 내다니. 나는 이레 봬도 손님이라구.”


 “어머, 하지만 당신들도 모두 이렇게 하고 있지 않아요? 다들 손톱이 깨끗한 걸요.”


 “그게 어디 같나? 대체 자네는 목욕탕에 들어가나? 솔직하게 말해봐.”


 “그야 들어가죠.”


 라며 애매한 대답을 하고는,


 “저 있잖아요. 아까 책방에 갔다 왔어요. 거기서 이걸 샀거든요. 당신 성함도 나와있더라구요.”


 주머니에서 신간 문예잡지를 꺼내들고는 여기저기 펼쳐들며 내 이름이 나온 곳을 찾고 있는 듯하다.


 “집어 치워!”


 참다못해 나는 소리 질렀다. 패주고 싶을 만큼 증오를 느꼈다.


 “그런 건 읽는 게 아니야. 넌 알지도 못하잖아. 왜 또 그런 걸 사오고 그래? 낭비야.”


 “어머, 하지만 당신 이름이.”


 “그럼 넌 내 이름이 나온 책을 몽땅 다 사 모을 수 있을 것 같애? 없잖아?”


 이상한 논리였으나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잡지는 내게도 보내왔으나, 거기에는 내 소설을 철저하게 비난하는 논문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을 비잔이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읽는다니. 아니, 그런 이유뿐만이 아니라, 비잔 같은 녀석이 내 이름이나 작품을 조금이라도 만진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었다. 아니, 의외로 소설이 밥보다 좋다고 하는 인간들은 이런 비잔 같은 종족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작가는 피땀 흘려가며 처자들을 희생까지 시켜가면서 그런 독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자 울음도 안 나올 만큼 어굴함이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잡지는 치워주게. 안 치우면 후려 팬다.”


 “죄송하게 됐네요.”


 역시 웃으면서,


 “안 읽으면 되잖아요.”


 “애초부터 산다는 게 바보인 증거야.”


 “어머, 전 바보가 아니에요. 어린 거라구요.”


 “어려? 네가? 허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어 매우 불쾌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음주가 지나친 탓에 갑자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열흘쯤 앓아누워 있다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기에 다시 술을 마시러 신쥬쿠로 나갔다.


 황혼 무렵이었다. 신쥬쿠 역전에서 누가 내 어깨를 두드리기에 돌아보자, 그 하야시 선생 즉, 하시다 씨가 취기 어린 모습으로 웃으며 서 있다.


 “비잔 집에 가시나요?”


 “네. 함께 어떠세요?”


 라고 나는 하시다 씨에게 권했다.


 “아뇨. 저는 벌써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어때요? 다시 한 번.”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하던데…….”


 “이제 괜찮아졌어요. 갑시다.”


 “네에.”


 하시다 씨는 평소답지 않게 왠지 무척 마지못하다는 듯이 응했다.


 뒷골목을 둘이서 걸으며 나는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된장 밟는 비잔은 여전하던가요?”


 “없더군요.”


 “네?”


 “오늘 가보니 없더라구요. 그 아이는 죽을 겁니다.”


 깜짝 놀랐다.


 “여주인한테서 지금 듣고 오는 길이거든요.”


 라고 하시다 씨도 진지한 얼굴로,


 “그 아이는 신장결핵이었데요. 물론 여주인도, 그리고 토시 짱도 그런 일은 몰랐지만 너무 자주 화장실에 가니까 여주인이 토시 짱을 병원으로 데려가서 진찰해보니 그렇게 되어, 더구나 이미 양쪽 모두 망가져서 수술이고 뭐고 늦어서,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데요. 그래서 여주인은, 토시 짱한테는 아무 것도 알리지 않고 시즈오카에 계신 아버님 댁으로 돌려보냈다더군요.”


 “그랬군요……. 착한 아이였는데.”


 나도 모르게 한 숨과 함께 그 말이 튀어나와, 나는 당황해서 자기 입을 막고 싶었다.


 “착한 아이였습니다.”


 하시다 씨는 차분하게 말하고서,


 “요즘 세상에 그렇게 마음씨 좋은 아이는 보기 힘들어요. 우리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해 줬으니까요. 우리들이 2층에 묵으면서 새벽 2시건 3시건 간에 눈을 뜨면 아래로 내려가서, 토시 짱, 술, 하고 한 마디만 하면 ‘네!’하고 대답하고는, 추운데도 전혀 귀찮아하지도 않으면서 곧바로 일어나 술을 가져와주었으니 말이에요. 그런 아이는 좀처럼 없습니다.”


 눈물이 나려 했기에 나는 얼버무리려고,


 “하지만 ‘된장 밟는 비잔’은, 그건 당신이 붙여준 거였죠?”


 “미안하다고 생각해요. 신장결핵은 화장실에 자주 간다고 하더군요. 된장을 밟고, 계단을 굴러 떨어지듯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도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비잔의 물바다’도?”


 “물론이죠.”


 라고 하시다 씨는 내가 비꼬는 것 같은 질문에 화가 난 듯한 어투로,


 “귀족 흉내 같은 걸 내려고 한 게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우리들 곁에 있고 싶어서 참고 또 참았기 때문이에요. 계단을 올라갈 때 쿵쾅쿵쾅 거린 것도 병으로 몸이 불편해서, 그래도 무리를 해가며 우리들을 위해 일해 주었던 거예요. 우리들 모두 무척이나 속을 썩였죠.”


 나는 멈춰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으로,


 “다른 곳으로 갑시다. 거기서는 마실 수 없겠어요.”


 “동감입니다.”


 우리들은 그날로 단골집을 바꾸었다.

'다자이 오사무 > 비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잔 - 일본어  (0) 2018.04.30
비잔 - 한국어  (0) 2018.04.30
Posted by 문학관 관리인 위어조자(謂語助者)

미남자와 담배(美男子と煙草)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8)

번역 : 위어조자


저는 지금까지 혼자서 싸워왔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아무래도 질 것 같아서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설마 지금까지 경멸해온 자들에게 제발 나를 끼워달라, 내가 잘못했다며 이제 와서 부탁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역시 혼자 싸구려 술이라도 마시면서 제 싸움을 계속 싸워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싸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옛 것과의 싸움입니다. 흔해빠진 잘난 척에 대한 싸움입니다. 뻔히 보이는 외식에 대한 싸움입니다. 인색한 일, 인색한 자를 향한 싸움입니다.

저는 여호와에게라도 맹세하며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싸움을 위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리하여 역시 저는 혼자 항상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심정으로, 그리고는 아무래도 질 것만 같아졌습니다.

기성세대는 심보가 고약합니다. 무엇이 어떻다며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문학론인지 예술론인지를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늘어놓으면서,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을 짓밟고는, 더구나 그런 자기 자신도 죄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니 대단합니다. 밀어봐도 당겨봐도 옴짝달싹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저 목숨이 아까워서,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출세하여 처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 무리를 지어 부질없이 서로 칭찬해가며, 이른바 일치단결하여 외로운 자를 괴롭힙니다.

저는 질 것만 같아졌습니다.

얼마 전 어느 곳에서 싸구려 술을 마시고 있더라니 거기에 나이 든 문학가 세 명이 들어와서, 제가 그 사람들과는 면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갑자기 저를 둘러 싸고는, 꼴불견 하게 술에취해가지고서 제 소설에 대하여 매우 엉뚱한 험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흐트러지는 것은 정말 질색이므로, 그 악담도 웃어 넘기고 있었습니다만,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너무나 억울하여 갑자기 오열이 나오고는 멈추지 않아, 밥그릇도 젓가락도 내팽개치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고는 집안일을 하고 있던 아내에게

"사람이, 사람이 이렇게 목숨 걸고 필사적으로 쓰고 있는데, 다들, 동네북처럼, ……저들은 선배라구. 나보다 열 살도 스무 살도 위란말이야. 그러면서 모두 힘을 합쳐 나를 부정하려 하고 말이야, ……비겁해. 치사하다구. 이제 좋아, 나도 이제 참치 않겠어. 선배들의 악담을 공공연하게 말할 거야. ……이건 너무하잖아."

라며, 부질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점점 심하게 울음이 터져 나와,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제 주무세요. 아셨죠?"

라고 말하고는 저를 잠자리로 데리고 갔으나, 누우면서도 그 억울함으로 치밀어오는 오열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아, 살아간다는 일은 정말 싫다. 특히나 남자는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아무튼 무엇이든지 싸우고, 그리고는 이겨야 하니 말입니다.

그 억울함 때문에 울고불고 한 날부터 며칠 후, 어느 잡지사에 있는 젊은 기자가 와서, 제게 묘한 말을했습니다.

"우에노(上野)에 있는 부랑자(浮浪者)를 보러 가지 않겠습니까?"

"부랑자?"

"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제가 부랑자와 같이요?"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아무렇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왜, 특별히 저를 고른 것일까요. 다자이라고 하면 부랑자. 부랑자라고 하면 다자이. 무슨 그런 인과관계라도 있는 것일까요.

"가겠습니다."

저는 주눅들었을 때 오히려 반사적으로 상대방에게 대항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곧바로 일어서서 양복으로 갈아입고는 제가 오히려 앞장서서 그 젊은 기자를 재촉하듯 집을 나섰습니다.

추운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손수건으로 콧물을 누르며 말없이 걸었으나,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심정이었습니다.

미타카(三鷹) 역에서 전철로 도쿄 역까지 가서, 거기서 시철(市鐵)로 갈아타고는 그 젊은 기자의 안내를 받으며 우선 본사에 들러 응접실로 간 후, 그리고 우선 위스키 접대를 받았습니다.

생각건대 다자이 그 인간은 소인배이므로 위스키라도 마시게 해서 조금 기운을 차리게 해주지 않는다면 부랑자와 제대로 대담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본사 편집부의 친절한 배려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위스키는 매우 기괴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여럿 미심쩍은 술을 마셔 온 사람이며, 절대 고상한 척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홀로 마시는 위스키는 처음이었습니다. 세련된상표까지 붙어 있는, 제대로 된 병이었습니다만, 내용물이 탁했습니다. 위스키로 된 막걸리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마셨습니다.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응접실에 모여든 기자들에게도 마시지 않겠냐며 권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미소를 띄우며 안 마시는 것입니다. 

저 혼자만 취하고는,

"뭐야, 자네들. 이건 실례 아닌가. 자기들이 못 마실 정도로 요상한 위스키를 손님한테권하다니, 너무하잖나."

라고 웃으면서 말했더니, 기자들은 이제 서서히 다자이도 취하기 시작했다. 이 술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부랑자와 대면시켜야 한다며, 말하자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를 자동차에 태우더니 우에노 역까지 데리고 가서, 부랑자의 숲이라고 하는 지하도로 안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의 이와 같은 용의주도한 계획도 그리 성공했다고는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하도로 내려가도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 그저 똑바로 걷고는, 그리고 지하도 출구 근처까지 와서, 닭꼬치구이 집 앞에서 소년들 네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매우 기분이 상했기에 다가가서는,

"담배는 관두게. 담배를 피우면 도리어 배가 고파지거든. 관두게. 닭꼬치가 먹고 싶다면 내가 사주지."

소년들은 피우던 담배를 착하게도 버렸습니다. 모두 열 살 전후인,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닭꼬치구이집 주인을 보고,

"이봐, 얘들한테 하나씩."

하고 말하고는, 이상하게도 연민 같을 것을느꼈습니다.

이것도 선행이라는 것이 될까, 미치겠군. 저는 갑자기 발레리의 어떤 말이 떠올라, 더욱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한 행동이 속물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행동처럼 보여졌다면, 저는 발레리에게 얼마나 경멸 당해도 할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발레리의 말 – 선을 행할 경우에는 항상 사과하며 해야 한다. 선행만큼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없으니까.

저는 감기라도 걸린 것 같은 심정으로 등을 굽히고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도 바깥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기자들 네 다섯 명이 제 뒤를 따라와서는,

"어땠어요? 마치 지옥이죠?"

다른 한 사람이,

"아무튼 전혀 다른 세계니까."

또 다른 한 사람이,

"놀랐죠? 소감은요?"

저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지옥? 설마. 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우에노 공원 쪽으로 걸어가, 저는 조금씩 수다스럽게 되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아무 것도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의 괴로움만 생각하고, 그저 똑바로 보고, 지하도를 서둘러 빠져 나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저를 택해서 지하도를 보여준 이유는, 알겠습니다. 그건 말이죠. 분명 제가 미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아니, 농담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알아보지 못했나요? 저는 똑바로 걷고 있어도 그 어두컴컴한 구석에 누워있는 부랑자들 거의 모두가 단정한 얼굴을 한 미남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미남들은 지하도 생활로 떨어질 가능성을 다분하게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자네는 색이 하얗고 미남이니 위험하겠어. 조심하게. 나도 조심할 테니 말이야."

다시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거만하고 또 자만해지고, 누가 뭐라 해도 교만해 빠지더니 문득 정신이 들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하도 구석에 누워 이미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저는 지하도를 지나치기만 해도 그와 같은 전율을 정말로 느꼈습니다.

"미남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다고 치고, 그밖에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나요?"

라는 질문에 저는,

"담배입니다. 그 미남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도 보이지 않았으나, 담배만은 대개 피우고 있더군요. 담배도 싸지는 않겠지요. 담배 살 돈이 있다면 오히려 한 켤레라도, 게다짝 한 켤레라도 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콘크리트 맨바닥에 누워 맨발로,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니, 지금 인간은 밑바닥에 떨어져도, 알몸이 되더라도 담배는 피워야만 하도록 되어있는 거겠죠. 남 얘기가 아닙니다. 아마 제게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드디어 지하도 행이 실현될 빛을 발하기 시작했구먼."

우에노 공원 앞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방금 전 소년 넷이 겨울 대낮의 햇빛을 받으며, 그야말로 희희낙락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그 소년들 쪽으로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가만히."

한 기자가 카메라를 저희 쪽으로 돌리며 소리치고는,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번에는 웃어보세요!"

그 기자가 렌즈를 들여다보며 다시 그렇게 소리치고는, 소년 하나는 제 얼굴을 보고,

"얼굴을 마주보면 그냥 웃게 되네."

라고 말하고는 웃어, 저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천사가 하늘을 날아, 신의 뜻에 의해 날개가 사라지고 낙하산처럼 세계 방방곳곳에 내려앉는 것이야. 저는 북쪽나라 눈 위에 내려앉고, 자네는 남쪽나라 귤 밭에 내려앉았으며, 그리고 이 소년들은 우에노 공원에 내려앉은, 그저 그 차이뿐이지. 이제부터 무럭무럭자라도 소년들이여, 외모에는 반드시 무관심하고, 담배를 피우지 말며, 술은 축제날 외에는 마시지 말고, 그리고 조용하고 살짝 세련된 아가씨와 오랫동안 사랑하게.


부기

이때 찍은 사진을 나중에 기자가 가지고 와 주었다.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는 사진과, 그리고 또 한 장은 내가 부랑자들 앞에 쭈그려 앉아, 한 부랑아의 다리를 잡고 있는, 심히 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만약 이것이 후일에 무슨 잡지에라도 실렸을 경우, 다자이는 멋 부리는 녀석이다. 그리스도처럼 그 요한복음에 나오듯 제자 발을 씻어주는 모습을 흉내 내고있다. 웃긴다며 오해를 불러일으킬소지가 없지 않으므로 한 마디 변명을 하겠으나, 나는 그저 맨발로 걷고 있는 아이의 발바닥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호기심만으로 그런 폼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웃긴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 사진 두 장이 보내져 왔을 때, 나는 아내를 불러,

"이게 우에노에 있는 부랑자야."

하고 가르쳐주었더니, 아내는 진지한 얼굴로,

"네에, 이게 부랑자군요."

라고 하며, 심각하게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문득 나는 그 아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보고 놀라,

"넌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건 나라구. 네 남편이잖아. 부랑자는 저 쪽이야."

아내는 지나치게 진지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농담 같은 것은 모르는 여자이다. 진심으로 내 모습을 부랑자라고 잘못 본 듯하다.

'다자이 오사무 > 미남자와 담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남자와 담배 - 일본어  (0) 2018.04.30
미남자와 담배 - 한국어  (0) 2018.04.30
Posted by 문학관 관리인 위어조자(謂語助者)

아침(朝)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7)

번역 : 위어조자


 나는 노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친구가 멀리서 오는 것을 남몰래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에 현관이 드르륵 열리면 미간을 좁히고 입을 실룩거리며, 그러나 내심 가슴을 설레며 쓰다만 원고지를 재빨리 치우고는 그 손님을 맞이한다.


 “어, 이런, 일하시는 중이셨군요.”


 “아니, 뭐.”


 그리하여 그 손님과 함께 놀러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으므로 모처에 비밀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집사람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 9시경, 나는 집사람에게 도시락을 만들도록 하고 그것을 가지고 작업실로 출근한다. 과연 그 비밀작업실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기에 내 일도 대략 예정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오후 3시경이 되면 피곤도 하고 사람이 그리워졌으며 놀고도 싶어져 적당히 마무리를 짓고 집으로 돌아간다. 귀가 길에 오뎅집에 걸리게 되면 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는 일도 있다.


 작업실.


 그러나 그 작업실은 어느 여성의 집이다. 그 젊은 여성이 아침 일찍 니혼바시(日本橋)에 있는 어떤 은행으로 출근한다. 그 후에 내가 가서, 그리하여 4, 5시간 거기서 일을 하고, 그 여성이 은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나선다.


 애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내가 그 분의 어머님을 알고 있어, 그리하여 그 어머님은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 따님과 떨어져 동북지방에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가끔 내게 편지를 보내주어 그 따님의 혼담에 대해 내 의견을 구하기도 하고, 나도 그 후보자인 청년을 만나, 그 사람이라면 괜찮은 신랑감이겠지요, 찬성입니다, 라고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써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머님보다도 따님이 훨씬 더 나를 신뢰하고 있는, 아무래도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키쿠 짱, 얼마 전 너의 미래 신랑감을 만났어.”


 “그래요? 어땠어요? 좀 겉멋 들지 않았나. 그렇죠?”


 “뭐, 그저 그랬지. 그야 뭐 나에 비하면 어떤 남자라도 바보처럼 보일 테니까. 네가 참아라.”


 “그것도 그러네요.”


 따님은 그 청년과 깨끗이 결혼할 마음인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날 밤, 나는 술을 많이 마셨다. 아니, 술을 많이 마시는 건 매일 밤의 일이었으므로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었으나, 그날 밤 작업실에서 돌아가는 길에 역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곧바로 단골 오뎅집으로 안내하고 거하게 마시고는 서서히 술이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무렵, 잡지사의 편집자가, 아마 여기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며 위스키를 들고 나타나, 그 편집자를 상대로 또 그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이제 토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 될까 하고 중얼거리며, 왠지 끔찍한 생각이 들기에 이쯤에서 끝내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친구가 자리를 옮겨 이제부터는 자기가 사겠다고 말하더니 전철을 타고 그 친구의 단골 요리집으로 끌려가서는 거기서 다시 정종을 마시고, 간신히 그 친구, 편집자와 헤어졌을 때 나는 이미 걷지 못할 정도로 취해있었다.


 “재워주게. 집에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 이대로 잘 테니까 부탁이야.”


 나는 코타츠에 발을 집어넣고 윗도리를 입은 채로 잤다.


 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캄캄했다. 몇 초 동안 나는 내 집에서 자고 있는 줄만 알았다. 다리를 조금 움직여보자 내가 양말을 신은 채로 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럴 수가! 큰일이다!


 아아, 이런 경험을 나는 지금까지 몇 백 번, 몇 천 번을 되풀이했을까.


 나는 심음 소리를 냈다.


 “춥지는 않으세요?”


 라고 키쿠 짱이 어둠 속에서 말했다.


 나와는 직각으로 코타츠에 다리를 집어넣고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아니, 춥진 않아.”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창문에서 소변을 봐도 될까.”


 라고 말했다.


 “상관 없어요. 그게 더 간편하고 좋겠네요.”


 “키쿠 짱도 가끔 하는 게 아냐?”


 나는 일어서서 전등 스위치를 돌렸다. 안 켜졌다.


 “정전이에요.”


 라고 키쿠 짱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창문 쪽으로 가서는 키쿠 짱의 몸에 발이 걸렸다. 키쿠 짱은 가만히 있었다.


 “아이구, 이런.”


 라고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간신히 창문 커튼을 만지고, 그것을 제친 후 창문을 조금 열어 물소리를 냈다.


 “키쿠 짱의 책상 위에 클레브 공 부인이라는 책이 있었지?”


 나는 다시 예전처럼 몸을 누이면서 말한다.


 “그 무렵의 귀부인들은 궁전 마당이나, 아니면 복도 계단 밑에 어두운 곳 같은 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변을 보고 그랬거든. 창문에서 소변을 보는 것도 그래도 본래는 귀족적인 일이야.”


 “술 드시겠다면 있어요. 귀족은 자면서 마시는 거죠?”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마시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귀족은 암흑을 꺼려하는 법이지. 원래부터 겁이 많으니까 말이야. 어두우면 무서워서 안돼. 초는 없나. 촛불을 켜주면 마셔도 괜찮아.”


 키쿠 짱은 말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촛불이 켜졌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제 이걸로 오늘 밤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고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놓을까요?”


 “등불은 등경 위에 두라고 성격에 나와 있으니 높은 곳이 좋겠지. 그 책장 위는 어떨까.”


 “술은요? 컵으로 드시겠어요?”


 “심야에 마시는 술은 컵에 따르라고 성경에 나와 있어.”


 나는 거짓말을 했다.


 키쿠 짱은 싱글싱글 웃으며 큰 컵에 술을 가득 따라서 가지고 왔다.


 “아직 한 잔 더 따를 건 있어요.”


 “아니, 이것 만으로 됐어.”


 나는 컵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마신 후 다시 누웠다.


 키쿠 짱도 나와 직각으로 누워, 그리고 속눈썹이 긴 큰 눈을 연신 깜빡이고 있어, 잠이 들 것 같진 않았다.


 나는 가만히 책장 위에 있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촛불은 살아있는 것처럼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하며 움직인다. 보고 있는 동안 나는 문득 어떤 일이 뇌리를 스쳐 두려움을 느꼈다.


 “이 촛불은 짧군. 조금 있으면 떨어질 것 같은데. 더 긴 촛불은 없나?”


 “그것뿐이에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늘에 기도를 하고픈 심정이었다. 저 촛불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내가 잠이 들던지, 아니면 한 컵의 술기운이 깨든지, 그 둘 중 하나가 아니면 키쿠 짱이 위험하다.


 촛불은 깜빡 거리며 조금씩 짧아지고 있으나 나는 전혀 잠이 오질 않았으며, 또한 한 컵의 술기운도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온몸을 뜨겁게 하고 점점 나를 대담하게 만들어갈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한숨이 나왔다.


 “양말을 벗지 그러세요?”


 “왜?”


 “그게 더 따뜻해요.”


 나는 그녀의 말대로 양말을 벗었다.


 이제 큰일이다. 촛불이 꺼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나는 서서히 각오를 하려 하고 있었다.


 촛불은 어두워지고, 그로부터 몸부림치듯 좌우로 움직이더니 순간 크고 밝아진 후, 직직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오므라들고는 꺼졌다.


 조금씩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방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이미 어둠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 집으로 갈 차비를 했다.



'다자이 오사무 >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 일본어  (0) 2018.04.30
아침 - 한국어  (0) 2018.04.30
Posted by 문학관 관리인 위어조자(謂語助者)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