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식

홍성필 (1998)


등장인물 : 


김덕길 노인 


김영선 : 김덕길 노인의 3녀 


김대식 : 김덕길 노인의 장남 


경혜선 : 김대식의 처. 이옥순의 외동딸 


이옥순 : 경혜선의 모 


윤수복 노인 : 김덕길 노인댁 이웃 


백함순 (백씨): 윤수복 노인의 처 


명희, 윤숙, 연경 : 영선의 대학 동창 


우체부, 순경, 하객, 사회자,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제 1 막 


199x년 4월 1일 아침 김덕길 노인 집 


무대 우측에 김덕길 노인댁 거실이 보이며, 좌측에는 현관이 있고, 현관 좌측에는 앞뜰이 있다. 김덕길 노인댁 거실의 벽은 뚫려 안이 보인다. 정면에는 김덕길 노인의 서재로 통하는 입구가 있으며, 우측에 침실 입구가 있고. 그 사이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서재 입구 앞에는 쇼파가 하나, 침실 앞과 맞은 편에는 각각 세 개짜리 쇼파가 있으며, 가운데에 직사각형 탁자가 놓여 있다. 


제 1 장 


우체부, 순경 


(우체부와 순경 좌측에서 등장) 


우체부 : (순경에게) 아이구, 이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거야 원 이쪽에는 워낙 길이 복잡해서, 저 같은 신참한테는 어디 번지수 하나 가지고 찾을 수나 있어야죠. 


순경 : 누가 아니래요. 도대체 누가 정해놨는지 원. 순경이나 우편 배달부, 그리고 중국집 골탕먹이려고 한게 아니라면 이렇게 멕이기도 어려웠을게요. (김덕길 노인댁을 가리키며) 자, 여기가 그 영감 집입니다. 아마 지금쯤은 아직 계실겁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쇼. 내가 좀 불러보리이다. (현관문을 두드린다) 영감님! 계신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는 몇 번 더 부른다) 


제 2 장 


우체부, 순경, 김덕길 노인 


(서재에서 김덕길 노인 등장) 


김덕길 노인 : 허 참. 아니, 내 귀가 먹은 줄 아나. 시방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거야. 누구여? (현관문을 연다) 어이구, 이거 순경양반 아니오? 이런 대낮부터 무슨 일이라도 있소? 그렇잖아도 심심했던 참인데 잘 됐구려. 자, 어서 들어오시게나. (순경의 등을 안고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순경 : (김 노인을 만류하며) 영감님, 그게 아니라 저……여기 우체부 청년이 영감님께 우편물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일을 맡았나 본데 여기 골목이 좀 복잡해야 말이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데리고 온 겁니다. 


김 노인 : 그래? 우편이라니 어디서 올 데가 있다구. 어디 한 번 줘보게나. (현관을 나와 우체부가 가진 봉투를 받으려 한다) 


우체부 : (노인의 손을 슬쩍 잡으며) 할아버지, 잠시만요. 이게 저, 등기우편이라서 받으시기 전에 도장을 찍어야 하거든요. 


김 노인 : 도장은 무슨 도장이야. 나헌테 온 거라면서? 아니면 젊은이는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조금 큰 소리로) 주민등록증이라도 보여주랴? 


순경 : 영감님, 이건 다른 우편과는 다른 거라서요. 받으실 때에는 도장을 찍으셔야 본인에게 무사히 전달이 됐다는 근거가 남거든요. 이건 저, 등기우편이라는 거라서 말입니다. 


김 노인 : 뭐라구? 허 참, 오래 살다보니 별 일 다 보겠네. 알았어, 됐네. 도대체 누가 그딴걸 보내가지고 사람을 귀찮게 만드나. (거실 쪽을 보고) 저기, 영선아. 거기 내 도장 좀 가지고 와라. 


제 3 장 


우체부, 순경, 김덕길 노인, 김영선 


(부엌에서 영선 등장) 


영선 : 갑자기 도장은 또 왜요? (방안을 둘러보며) 가만 있자……도장이 어디 있었나. (탁자 쪽을 보며) 여기 뒀었나? (탁자 밑에 있는 작은 상자를 뒤지고는 도장을 꺼낸다) 쓸 일이 없으니 이런 것도 까먹네요. 아빠, 여기 있어요. (현관 쪽으로 와 김 노인에게 도장을 건내준다) 


김 노인 : 여기 내 도장이오. 이게 벌써 10년은 된 거라네. 어때? 우리 아들이 내 생일 때 해 준거라구. (우체부에게 건내준다) 


영선 : (뒤를 돌아보고 독백) 흥, 맨날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우체부 : (도장을 건내받고는 입김으로 불고는 도장을 찍고 돌려준다) 예, 됐습니다. 자, 받으세요. (도장과 봉투를 노인에게 준다) 


김 노인 : 어디 보자. 대체 누가 대낮부터 사람을 성가싫게 굴어. (봉투를 받아들고 뜯기 전에 살핀다) 흠,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네그려. 어디, 자네가 한 번 봐 주겠나? (봉투를 우체부한테 건내준다) 


우체부 : (이리저리 봉투를 살피고는) 김대식……이라고 돼 있네요. 


순경 : 대식 씨라면, 그 서울에 있는 아드님이시잖아요? 


영선 : 오빠한테서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등기로 보냈대요? 


김 노인 : 아암, 그렇구 말구. (봉투를 햇빛에 비춰보며) 글쎄 이 놈이 어떻게 된게 결혼한지 1년이 지나도록 손주 소식을 못 듣겠다우. 아들이라고는 그 놈 하나 밖에 없는데, 정작 내 성씨를 딴 손주를 언제 볼 수나 있을런지 원……. 


영선 : 어이구, 그러다가 목이 빠져 버리겠어요. 아빠도 참,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나요. 재작년에는 큰 언니가, 작년에는 둘째언니랑 미영언니가 아들 낳았잖아요. 


김 노인 : 에잇, 딸년이 낳은 건데 아들을 열 명 낳은들 뭘하겠어? 그래도 대를 이을 대식이 놈이라면 그래, 딸이라도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놈들이 원……. (큰 기침을 하고는 봉투를 만지작 거린다) 


우체부 : 영감님, 이제 됐으니 어서 뜯어보시지 그러세요? 


김 노인 : (우체부를 힐끔 쳐다 보고는 다시 봉투를 만지작 거린다) 어, 음. 그래야지. 그런데 이거 왜 이리 마음이 불안헌고. 미리 전화도 없이 이런 걸 보내다니 말이야. 


영선 : 아휴. 아니, 언제까지 현관에서 서성이세요? 어서 들어오시지 않구. 순경아저씨도 한가하면 좀 들어왔다 가세요. 


순경 : 그럴까요? 그럼 차나 한 잔 얻어먹고 가겠습니다. (김 노인에게) 자, 영감님도 들어가시죠. 


우체부 : 그럼 전 이만 물러가도 되겠죠? 안녕히 계십쇼, 영감님. (등을 돌려 퇴장하려 한다) 


김 노인 : (황급히 우체부를 잡으며) 이봐 젊은이. 아니, 이건 자네가 가지고 온게 아닌가. 그럼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어디로 내빼려구 해! 같이 들어가 보자구. 


우체부 : (놀란 표정으로) 책임이라니요. 제게 무슨 책임이 있다고 그러세요. 단지 전 이것만 전해 드리면 제 임무는 끝난 거잖아요. 


김 노인 : 아니, 이 녀석 좀 보게. 어디서 노인한테 눈을 부릅뜨고 말대꾸야. 그리고 임무? 무슨 얼어죽을……자네가 책임을 질 것도 아니면서 남한테 도장까지 받아 쳐먹어? 허튼소리 말구 어서 따라 들어오기나 해! 


(일동 김 노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제 4 장 


전동. 


김 노인은 정면 쇼파에, 순경는 좌측, 우체부는 우측 쇼파에 앉는다. 


김 노인 : 영선아, 어서 여기 차 좀 가지고 와라. 


영선 : 예, 알았으니 어서 뜯어 보세요. (영선, 부엌으로 퇴장) 


제 5 장 


영선을 제외하고 전동 


김 노인 : 가만 있자……안경이 여기 있었을텐데. (탁자 밑에서 안경을 찾아 낀다) 올커니. 그럼 어디 한 번 봅시다. (봉투를 뜯고는 안에 들어있는 카드를 꺼낸다. 


우체부 : 무슨 초청장이나 청첩장 같은데요? 


김 노인 : (큰 소리로) 옛기 이 사람아. 우리 아들이 벌써 결혼한지가 언제라구 청첩장이야! 무슨 파티라도 있나. 이게 뭐야. (어이 없는 표정으로) 이, 이봐, 순경양반.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순경 : 예, 이 한자가 그러니까, 이, 혼, 식……이라고 돼 있네요. 


김 노인 : 이, 이 사람아. 내가 글씨를 못 읽어서 그런가.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거야. 이게……이게……. 


제 6 장 


김 노인, 순경, 우체부, 영선. 


(영선, 찻잔을 들고 등장) 


영선 : 뜯어 보셨나요? 뭐가 들었길래 등기로 보냈대요? 


김 노인 : (불안한 표정으로 영선에게 손짓을 한다) 야, 영선아. 그래, 네가 와서 한 번 봐라. 이게 도대체 뭔 뜻인지 도무지 짐작이 안가네 그래. 


영선 : (차를 김 노인, 순경, 우체부 앞에 놓고는 카드를 받는다) 이혼식? 뭐라구요? 아니, 이럴 수가. 결혼식도 아니고 이혼식이라니. 세상에 이런 것도 다 있나요……. 


순경 : 글쎄 말입니다. 이혼식이라는 건 저도 처음 들어 보네요. 보통 이혼이라고 하면 서로 감정이 상해서 싸우도 다투고 하면서 헤어지지 않나요? 그런데, 이혼식을 올리면서 이혼을 한다는 말인가보죠? 


김 노인 : 이봐! 시방 누구 남 얘길 하나? 이, 이건 대식이 얘기야. 내 아들한테서 보내 온거라구. 이 사람아, 자네는 어떻게 그리도 침착할 수 있나! 허허어, 참. 


영선 : 세상에, (김 노인을 보고) 그럼 오빠가 이혼한단 말이에요? 


김 노인 : 이런, 답답한 녀석이 있나. 낸들 그걸 어떻게 알어! 나 이거 원……. 


제 7 장 


전동, 윤수복 노인. 


(윤수복 노인, 좌측에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윤수복 노인 : 이봐, 덕길이. 나 왔네 그려. 거, 왜 현관문은 열어놓고 대낮부터 야단들이야? 목소리 큰 걸 자랑할라고 작정을 했구만. 


김 노인 : 어, 수복이. 자네, 참 잘 왔으이. 어서 들어와서 이걸 좀 보세. 어디 소란을 안떨게 생겼냔 말일세! 


윤 노인 : 왜 그래? 자식들이 이혼이라도 한다든? 


(일동 놀란다) 


김 노인 : 뭐라구? 아니,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윤 노인 : 뭐,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그냥 한 번 해 본 말인데……그럼 정말로 그 대식이가 헤어진단 말이야? 


김 노인 : 이런, 사람 하구. (혀를 찬다) 아무튼 어여 이리로 와서 이것 좀 보라구.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란 말이야. 


(윤 노인, 김 노인으로부터 카드를 받아들고 서서 읽는다) 


윤 노인 : 이혼식? 허허어, 이건 또 웬 예술적인 말인감. 


김 노인 : 예술? 이봐 수복이. 자네 보기엔 내가 지금 농담하고 있을 기분처럼 보이나.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일세. 


윤 노인 : 어디 일단 한 번 읽어나 보자구. (순경 옆에 앉으며 카드를 펴서 읽는다) 에……지난 수 년간 저희의 사랑으로 가꾼 가정을 돌보아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저희는 이번 화창한 봄날을 맞아, 함께 지내왔던 생활에서 벗어나 서로의 미래를 가꾸어 나아가기로 결심을 하여, 아래와 같이 이혼식을 거행하고자 하오니, 하객 여러분께서는 바쁘시더라도 참석을 하셔서 우리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 노인 : 뭐가 어째구 어째? 축하? 아니, 젊은 연놈들이 같이 살면서, 화창한 봄날에 그리도 할 짓이 없어 이혼을 한단 말이야! 내 이놈들을 그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윤 노인 : 허허어, 이봐 덕길이. 좀 진정하라구. 


김 노인 : 진정? 아니, 지금 이 판국에 진정하라는 소리가 그 주둥아리에서 낼름 튀어 나온단 말이야? 내 이 놈들을 당장 가서 그냥 화악……. 


윤 노인 : 거 괜히 나한테 왜 화풀이야. 지금 그렇게 흥분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자, 자. 우리 앉아서 좀 생각해 보자구. (덕길의 팔을 잡고 앉힌다) (영선을 보고) 그래, 대식이한테 그 동안 전화나 다른 연락은 없었냐? 


영선 : 예, 요즘은 조금 뜸한 편이었어요. 그래도 지난 달에 연락이 왔을 때에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순경 : (영선을 보며 경찰수첩을 펼쳐든다) 그래도 다른 때에 비해서 어딘가 좀 수상하다거나 음흉한 구석이 있거나 하진 않았습니까? 


김 노인 : 이 양반이. 시방 무슨 사건이라도 조사하는 줄 아시오? 


순경 : 아니, 그래도 혹시나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그만…….(어줍잖다는 표정으로 수첩을 집어넣는다) 


김 노인 : 단서는 무슨 얼어죽을 단서야. 가만,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영선을 보고) 여, 영선아. 어서 그 놈한테 전화를 걸어 보자구. 우리가 지금 이렇게 태연하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야. 


(영선이 전화를 걸려하자 윤 노인이 말린다) 


윤 노인 : 이봐. 이런 딱한 사람이 다 있나. 금방 알아차릴 줄 알고 내 가만히 있었는데, 자네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나? 


김 노인 : 뭐? 무슨 날이긴 오늘이……. 


우체부 : 어? (큰 소리를 내며 웃는다) 오늘이 그러고 보니 4월 1일이네요. 


김 노인 : 웃기는 시방 어디서 방정맞게 웃어! 그러니까 오늘이 무슨 날인데 그래? 


윤 노인 : 이런, 이런. 사람이 이렇게 둔해서야 원. 오늘이 4월 1일 만우절 아닌가. 


영선 : 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네요.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아빠, 오늘이 그 거짓말을 해도 되는 만우절이잖아요. 


김 노인 : 어, 그……그랬던가. 흠…….(잠시 생각에 잠긴다) 


순경 : (씁쓸하게 웃으며) 영감님, 아무래도 아드님께서 농을 부렸나 봅니다. 


김 노인 : 아냐. 이런 괴씸한 노릇이 다 있나. 아니, 세상에 그래, 속일 놈이 없어서 지 애비를 속여먹어? 제아무리 만우절이 아니라 만우절 할애비라도 그래. 이런 버리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구. (영선을 보며) 영선아, 당장 이 놈한테 전화를 걸어. 단단히 혼 좀 내줘야겠어! 


영선 : 그래도 아빠, 오늘 정도는 만우절이라는데 그 정도는 참아줘도 되지 않겠어요? 


순경 : 장난 치고는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진 않으나, 그냥 넘기는게 좋겠습니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는데요, 영감님도 아시겠지만 옛날에는 얼마나 짓궂은 일이 많았습니까. 오늘 같은 날이면 소방차들도 쉴 새 없이 헛고생을 하는 날이었다니까요. 


윤 노인 : 그래,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오늘 같은 날 재롱을 부릴 자식이 있다는 것도 이게 얼마나 복인가, 안그래? 그냥 웃어 넘기는 것도 어른으로서 할 도리라구. 


김 노인 : 허, 그래. 수복이 말 잘했다. 좋아, 이런 날은 웃어 넘기기도 해야지. 아암, 그렇구 말구. 그런데 이런 괴씸한 녀석이, 그렇잖아도 손을 못봐 애달복걸인데 허구많은 재롱 중에서 지네들 이혼하겠다는 소리를 지껄이나? 그것도 친구들이면 또 몰라. 아니, 지 애비한테 이런 헛수작을 한다는게 말이 돼? 안되겠어. (영선에게) 얘야, 빨리 전화를 하라니까 왜 멍하니 앉아 있어! 


우채부 : 할아버지. 제가 나서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그냥 웃고 마는게 어떠실런지……. 


김 노인 : 뭐가 어째? 이봐, 젊은이. 이 좋은 날에 버리장머리 없이 귀찮게 도장을 찍으라느니 재주를 부리라느니 해 놓고 자네한테는 책임이 없는 줄 알어? 대체 어쩔 셈이야! 자네가 이래도 일을 똑바로 하고 있는 거야 뭐야! 


우채부 : 예, 예……? 재주를 부리라뇨. 그리고 책임이라뇨. 단지 전……. 


김 노인 : 허허어. 그래도 어른 앞에서 꼬박꼬박 말대꾸 하는 꼴 좀 보게. 자네는 가만히 있어.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는 영선을 노려본다) 


영선 : 아이구, 예. 알았어요. 걸게요. 잠깐만 전화번호가……. (탁자 위에 있는 전화번호부를 뒤진다) 


(영선이 전화번호를 찾고 수화기를 들으려는 순간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일동 조금 놀란다) 


영선 : 아이, 깜짝이야. 아니, 이게 또 누구야. (수화기를 든다) 여, 여보세요? (놀라며) 어머, 할머님 아니세요. 예, 무슨 일이라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김 노인을 본다) 예, 예? 아니, 그런. 예, 예. 아이, 그럼요. 그냥 만우절이려니 하는거죠 뭐. 예, 아휴,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빠들 장난이 너무 지나치다고 해서 지금 전화를 걸어 단단히 혼내주려던 참이었습니다. 예, 예, 예? 아아, 네에. 그럼요. 예, 예. (미소를 띄며) 아유, 잘 알겠습니다. 이거 괜한 일로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하하, 예. 예. 예에,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예, 예……예,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고는 미소를 지으다 말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김 노인 : (잠시 침묵) 할머님이라니? 누가 건 거야? 


영선 : 아니, 그게 저……. 


김 노인 : 여, 영선아. 설마 이놈들이 사돈댁한테도 이런 장난을 쳤다는 건 아니겠지? 앙? 왜 가만히 있어? 어서 말을 해 보라구! 


영선 : 이게 그러니까 저……. 


김 노인 : 어서 말을 해 보라니까 그래! 


영선 : 아무래도 그런가보네요. 좀 장난이 심했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만우절이니 너무 지나치게 다그치지는 말라고 하시더군요. 


김 노인 : 나, 이런. 도대체 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이 녀석이 쥐약을 쳐먹었나 이게 무슨 짓거리야! (이마에 손을 얹으며) 아이구, 그래. 이래서 놀라 지 애비 뒤지면 속이 참 후련하겠다. 


순경 : 아이, 말씀을 하셔도……. 


윤 노인 : 이런, 쯧쯧쯧. 


순경 :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네요. 자, 그럼 저희들은 일어나 보겠습니다. 


우채부 : 이젠 남은 일도 있으니 저도……. 


윤 노인 : 어이구, 사람 성격 하고는 나도 가 보겠네. 


김 노인 : 그래. 그래. 잘 들 가슈. 


(윤 노인, 우채부, 순경 현관으로 퇴장) 


제 8 장 


김 노인, 영선 


영선 : 방에 조금 누워서 쉬세요. 그러다가 또 예전처럼 큰일나면 어쩌시려고요. 물 좀 갖다 드릴게요. (부엌 쪽으로 일어선다) 


김 노인 : 이거 혈압이 올라가서 도저히 안되겠다. 일단 전화는 다음에 걸어 보자꾸나. 영선아, 어서. 어서 약좀 가지구 와! 


(영선, 부엌 쪽으로 퇴장) 


제 9 장 


김 노인 


김 노인 : (일어서며 독백) 이 놈의 자식들이……. 도대체 내가 어떻게 성사시킨 결혼인데 그걸 장난 삼아 지껄여. 내가, 어떻게, 어떻게 시킨 결혼인데……, 어떻게……. 


(막) 


제 2 막 


5월 6일 낮 김덕길 노인 집 


제 1 장 


김 노인, 영선, 윤 노인, 백 함순. 


(김 노인은 중앙소파, 윤 노인과 영선은 각각 좌우측 쇼파에, 백 함순은 윤 노인 옆에 앉아 있다. 김 노인은 몹시 지친 표정으로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있다.) 


윤 노인 :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대식이가 그런 말을 했다구? 


김 노인 : 아이구, 말도 말게.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보오. 아들 한 놈 키워서 장가까지 보내놨더니 지금 와서 이렇게 망신을 시키니 내가 더 이상 살아서 뭐 하겠소……. 


윤 노인 : 그 놈이 쥐약을 먹었나 왜 그런 수작을 부린다지? 왜 이혼을 하겠다는 거냐구. 


김 노인 : 글쎄. 난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 (영선을 보고) 얘야, 네가 한 번 말해봐라. 


영선 : 그러니까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으나 이제부터는 각자 살아가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러니까……. 


김 노인 : 웃기는 소리! 결혼이 애들 장난이냐! (머리에 손을 얹으며) 아이구……. 


영선 : 아이, 참.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몸도 편치 않으시면서, 조금 침착하시라니까요. 


백씨 : 하지만 얘, 영선아. 이혼식인지 뭔지가 내일이라면서? 대체 어떡할 셈이니? 


영선 : 모르겠어요. 할머니 댁에도 초대장이 갔다면서요? 저희 주위를 돌아보니까 청첩장을 돌린 곳 모두에 똑같이 붙였대요. 


윤 노인 : (초대장을 손으로 흔들리며) 이걸 글쎄 가야 돼, 말아야 돼? 덕길이, 자네는 어쩔 생각인가? 


김 노인 : (계속 이마에 손을 얹고 천장을 보며 작은 소리로) 글쎄다. 이건 장난도 아니야. 단지 만우절 장난이 아니라구. 벌써 한 달도 더 지났는데……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제 전화가 와서 오라는 걸세. 


백씨 : 정말 어쩌려고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네요. 영감이 아들 하나라고 너무 끼고 돌아서 그런게 아니에요? 그 놈이 부족한걸 몰라서 그럴 지도 모르잖아요. 


윤 노인 : 허어. 이 사람이 남 일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네. 그 녀석이 그래도 흑백은 가릴 줄 아는 놈이야. 


백씨 : 아니, 그런 녀석이 웬 이런 난리를 치고 그래요. 이혼식이라니? 이혼식은 무슨 이혼식. 하여튼 요즘 젊은 녀석들이 하는 짓이라곤……. 


윤 노인 : 임자는 가만히 좀 있으시게. 통 도움이 안돼. 


백씨 : 그건 그렇고 영감님. 내일 가실 거예요, 말 거예요? 


김 노인 : 이유야 어떻든 남들한테도 이런 걸 보냈다고 하니, 안 갈 수야 없잖소. 


백씨 : 그러다가 가서 앰한 망신이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구요? 


윤 노인 : (백씨를 보고) 설마 자식이 지 애비한테 망신이야 시키겠나. 대식이가 그 정도로 분별 없는 녀석은 아니라니깐 그러네. 


백씨 : 망신을 안시킨다뇨. 벌써 이것 만으로도 충분한 망신 아니겠어요? 거기다가 내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아요? (김 노인을 보고) 영감님, 내가 영감님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웬만하면 그냥 가지 마시지 그러세요? 뭘 좋은게 있다고 가세요. 나 같으면 차라리 그냥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겠다. 영선아, 안그러냐? 


영선 : 글쎄요. 하지만 며칠 전부터 여러 차례 저희 집에도 전화가 오고 그랬거든요.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물어보는 전화며, 조소 섞인 전화며 수 십 번은 더 걸려왔을 거예요. 


백씨 : 그걸 왜 여기다가 묻니? 대식이네다가 직접 물어보지 않구선. 


영선 : 오빠네 연락을 하려 해도 잘 안되나봐요. 어차피 오빠나 올케언니도 아침에 일찍 나가 밤 늦게 돌아오고 그러니까요. 더구나 저희도 몇 번 연락을 해보려고 했지만 요즘은 아예 전화번호를 바꿔놓은 것 같아요. 


윤 노인 : 뭐? 그럼 대식이네가 번호를 알려 오지도 않았다는 말이냐? 


영선 : 예……. 며칠 전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을 때 물어보려고 했는데……. 


김 노인 : (영선을 보고) 얘야, 나 좀 잠깐 누워 있어야겠다. (윤 노인과 백씨를 보고) 나 실례 좀 해야 되겠소. 몸이 영 좋지 않아서 말일세……. (천천히 일어선다) 


윤 노인 : 그러세. 내가 보기에도 좀 쉬는게 낫겠네 그려. 


백씨 : (윤 노인을 보고) 그럼 우리는 이만 일어나 보죠. 


제 2 장 


전동. 명희, 윤숙. 


좌측에서 명희, 윤숙 등장. 


윤숙 : 얘, 이혼식에도 주례가 있을까? 


명희 : 하하. 주례가 있어봤자 무슨 말을 하겠니? 이제 둘이 이혼하고 잘 먹고 잘 살라구? 아니면 "이런 나쁜 놈들아!" 라고 혼을 낼까? 


(윤 노인과 백씨가 현관으로 나오고, 그 뒤를 영선이가 잇는다.) 


영선 : (윤 노인과 백씨를 보고) 그럼 살펴 가세요. 


윤 노인 : 오냐. 네 아버지를 좀 잘 돌봐 드려라. 아무래도 너무 충격을 받은 것 같으니 말이야. 에이, 원……. 


명희·윤숙 : (윤노인과 백씨를 보고) 어머, 안녕하세요? 


윤 노인 : 어허, 그래. 너희들이구만. 잘 들 지내냐. 


명희 : 날씨도 좋은데, 나들이 하시나봐요? 


백씨: 그래, 근데 (김 노인 집을 돌아보며) 날씨가 너무 좋아도 탈인가 보더라. 


명희 : (김 노인 집을 보며) 예...? 


윤 노인 : 아, 아니야. (백씨를 보고) 당신은 참……쯧쯧쯧. (명희와 윤숙을 보고) 그래, 이만 가보겠다. 잘 지내라. 


명희·윤숙 : (윤노인과 백씨를 보고) 예, 안녕히 가세요! 


(윤노인과 백씨, 좌측으로 퇴장) 


제 3 장 


명희, 윤숙, 영선 


영선 : (명희와 윤숙을 보고) 어머, 너희들이 웬 일이니? 


명희 : 그냥 지나가는 김에 들려볼라구 왔어. 아버님 계시니? 


영선 : (독백) 오빠가 설마 쟤네들한테까지 그런 걸 보냈을까. (명희와 윤숙을 보고) 아빠는, 계시긴 한데 괜찮아. 어서 들어와. 


(명희와 윤숙, 거실로 들어간 후 좌측 쇼파에 앉는다) 


영선 : 뭐 마실래? 커피면 됐지? 


윤숙 : 신경 쓰지 마. 괜찮으니까. 


영선 : 거기 앉아 있어. 금방 타 올테니까. 


(영선, 부엌으로 퇴장) 


제 4 장 


명희, 윤숙 


명희 : 얘, 윤숙아. 근데 너도 갈거지? 


윤숙 : 내일 말이니?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남 좋은 일도 아니고, 이혼식이 뭐니. 장례식이라면 또 모를까. 


명희 : 얘는, 말을 해두. 하지만 좀 그렇지? 결혼식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가야하는 건지, 아니면 엄숙하고 칙칙한 시커먼 옷을 걸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등장해야할지 말이야. 


윤숙 : 그래도 그 초대장 좀 봐. 얼마나 화려하니. 마치 결혼식처럼 말이야.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복장이나 그런건 초대장의 분위기랑 맞추면 무방하다 그랬어. 


명희 : 야. 그건 흔하디 흔한 결혼식이나 그렇지. 하지만 도대체 이혼식이라니.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것도 분수가 있지 무슨……. (부엌 쪽에서 들어오는 영선을 보고 말을 멈춘다) 


제 5 장 


명희, 윤숙, 영선 


(영선, 부엌 쪽에서 찻잔을 들고 입장한다) 


영선 : 지금 보니 너네들 본 것도 오랜만이네. 이렇게 화창한 날에 데이트도 안하고 여긴 웬 일이니? (탁자에 찻잔을 놓고서는 우측 쇼파에 앉는다) 


윤숙 : 으, 응. 그냥 우리도 오랜만에 영선이 얼굴이나 보고 수다나 떨러 온거야. 


영선 : 수다? 하하. 그래, 그럼 어디 이야기 봇다리나 풀어보시지 그래? 


명희 : 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너네 오빠, 왜 그런데? 


영선 : (놀란다) 무, 뭐? 아니, 너네들한테까지도 그럼……? 


윤숙 : 그래. 나도 받아보고 어이가 없어서 진상규명 하러 왔다.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거니? 


영선 : (태연하게) 어떻게 받아들이다니, 이혼식 한다잖아. 이혼식이라니까 이혼한다는 거겠지. 


명희 : 누가 이혼 한다는 걸 몰라서 물어봤니?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래, 이혼을 한다면 그건 너네 오빠네 사정이야. 하기사 요즘 뭐 이혼하는 부부가 한 둘이니? 옛날 우리 옆 집 아저씨 이종사촌 동생의 앞 집 부부도 얼마전에 이혼했단다. 


영선 : (물끄러미 명희를 쳐다보며) 넌 참 요즘도 한가하긴 하나보네, 그런 것까지 다 알구. 


명희 :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좋아, 아니, 좋을 거야 없지만. 아무튼 좋아. 이혼을 해야겠다면 하란말이야. 그런데, 이런 아리까리한 걸 보내오면 우리더러 어쩌라는거야. 


영선 : 보낸게 뭐가 이상해. 결혼식 때도 너네들 불렀잖아. 그래서 이혼식에도 부른건데 얼마나 시종일관 되고 수미상접 되고 초지일관 된 일이야? 


명희 : 어이쿠. 문자 쓰면 단줄 아니. 결혼할 때 초청했으니 이혼할 때도 초청한다고 하면 말이야 될지 모르지. 하지만 말이야,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냔 말이야. 


영선 :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서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야. 


윤숙 : 아하. 그럼 너네 오빠도 이혼식을 거행하면서 역사발전에 일획을 긋겠다는 거구나? 


명희 : (윤숙을 보고) 얘가 국민교육헌장 같은 소릴 하구 앉았네. 


영선 : (오른 손을 들고 연설조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이혼식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명희 : (영선을 보고) 그래도 농담이 나와? 지금 남말 하는게 아니라구. 가장 긴박해야 할 얘가 이렇게 태연하니 허, 왠지 우리가 김 새네. 


영선 : 안긴박해 보이니? 


윤숙 : 응……. 전혀. 


영선 : 생각해봐. 한 달 넘게 긴박해왔어. 이젠 긴박하기도 지쳤다구. 


명희 : 아무리 지금까지 긴박했다고 해도 그렇지. 며칠 뒤도 아니고, 내일이라구.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영선 : 무슨 내가 이혼하기라도 하니?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우리 오빠가 하는 거라구. 


명희 : 그래, 남의 오빠가 아니라 바로 니 오빠야. 전대미문 기상천외한 이혼식인지 뭔지를 성대히 거행하시는 날이 바로 내일이란 말이야. 


영선 :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 


명희 : 옳거니. 할 일이 많아서 이혼식도 한대? 


영선 : 얘네들이 가만히 보니까 이상하네. 아니, 이 좋은 날씨에 오랜만에 만나서는 왜 시비니? 


명희 : 영선이 니가 너무 태연해서 그런다. 어떻게 친오빠가 이혼을, 그것도 괴상막측한 이혼식이라는 걸 한다는데도 그렇게 침착하니, 보고 있는 우리가 더 답답해서 그러는 거라구. 


영선 : 이젠 괴상망측 씩이나? 무슨 잉카인이 심장이라도 도려낸다디? 


명희 : (가슴을 손으로 치며) 아이구 답답해라. 정말 네 사상이 의심스럽다. 


윤숙 : (얼굴을 영선에게 다가가며) 그런데 축의금은 얼마나 내야되는거니? 


명희 : (윤숙을 보고)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뭘 축하할게 있다구 축의금이야. 불난 집에 부채질 할 일 있나. 


윤숙 : 그래도 초청장에 보니까 전혀 안축하받을 분위기가 아니던데? 화창한 봄날을 맞아 함께 지내왔던 생활에서 벗어나 서로의 미래를 가꾸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는데 축하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명희 : 그래, 너나 열심히 축하해 주고 장차 본받아서 어디 한 번 성대하게 치뤄봐라. 


윤숙 : 얘는, 악담을 해도……. 


영선 : 우리나라에 지금 같은 결혼식을 치루게 된 지도 얼마 안됐잖아. 언제나 처음 하는 일에는 모험이 따르기 마련이라구. 


명희 : 차라리 로빈슨 크루소가 백 벌 낫다. 


영선 : 아무튼, 오빠가 이렇게까지 일을 벌여놨으니 알아서 수습을 하겠지. 


명희 : (한 숨을 쉰다) 그래, 좋아. 알았어. 우리가 여기서 흥분해봤자 될 일이 뭐가 있겠니. (초청장을 들며) 근데 이 말도 안되는 게 온 후로 오빠랑 연락해봤니? 


영선 : 응. 며칠 전에 잠깐 통화했었어. 


명희 : 오빠는 뭐래? 결혼식 분위기래, 아니면 장례식 분위기라디? 


영선 : 무슨 장례식 분위기야. 남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보든 간에 오빠랑 언니는 화려한 파티로 생각하나보더라. 


윤숙 : (명희를 보고) 그것 봐. 그럼 역시 축의금을 내야 하는 거잖아. 


명희 : (딱한 눈초리로 윤숙을 바라본다) 그래,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영선에게) 그런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설마 결혼식 만큼 바글바글하진 않겠지? 


영선 : 모르는 소리 마. 요즘 세상이 얼마나 심심하고 진부한데 이렇게 재미있는 걸 사람들이 놓치겠니? 오빠가 그러는데 몇 몇 신문사랑 방송국에서도 취재하겠다며 연락이 왔다더라. 


윤숙 : (큰 소리로) 정말이야? 얘, 그럼 우리도 잘하면 매스컴 타겠네? 그치, 영선아? 


명희 : (윤숙을 보고) 아이, 참. 넌 좀 가만히 있어. 결혼식이나 축하연도 아니고 이혼식에 나오는건데 얼마나 수치스럽니? 에이, 난 안갈까보다. 


영선 : 이상한 애네. 수치스럽긴 뭐가 수치스러워? 유사이래 처음으로 치뤄지는 영광된 파티에 출연하는건데 수치스럽다면 말이 되니? 이왕 가는거, 아주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 봐. 오빠 말 들어보니 정말 대대적으로 휘황찬란하게 하는 것 같더라. 


명희 : (영선에게) 근데 너희 아버님은 뭐라 하지 않으셔? 역시 너처럼 눈 초롱초롱 빛내가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좋아하시니? 


영선 : 아니, 앓아 누우셨어. 


명희 : (영선을 가리키며) 야, 그게 바로 정상이야. 아버님이 그렇게 정상인데 너희 남매는 왜 그러는건데? 


영선 : 왜는 뭐? 참 나……. 


(전화벨이 울린다) 


영선 : 어, 잠깐만.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어, 오빠? 잠깐만. (수화기를 막고 명희에게) 얘, 지금 오빠한테서 온 전화거든? 스피커폰으로 할테니 너희들도 궁금하면 들어봐. 그대신 조용해야 해! (전화기 스위치를 누른다. 영선이는 수화기를 든 채로 통화) 오빠, 회사야? 


김대식(목소리) : 그래. 잘 있었니?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도 화 나셨어? 


영선 : 그렇지 뭐. 아직 좀 그러신가봐. 


명희 : 좀 그런거 좋아하네. 


영선 : (명희를 보고 인상을 찡그리며 검지를 입에 갖다 댄다) 오빠,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서 그런데 말이야. 내일은 어떤거 입고 가면 돼? 


김대식(목소리) : 뭐? 하하하하. 누가 그러디? 


영선 : 웬만한 사람들은 다 그걸 고민하던데? 특히 내 친구들 말이야. 설마 우중충하게 검은 옷에 눈물 닦으며 가는 분위기는 아니지? 


김대식(목소리) : 무슨 소리야? 있는 힘껏 화려하게 치장하고 와라. 너도 말이야 얼마 전 괜찮은 정장 한 벌 샀다고 했지? 그걸 입고 와. 다른 사람들한테도 행여 장례식처럼 생각하지 말고 멋내고 오라고 전해. 그런데, 명희나 윤숙이도 온다디? 


영선 : (조금 당황하며) 으, 응. 그럼 가겠지. 


김대식(목소리) : 그럼 내일 아버지 모시고 잘 와야 된다. 너 아버지 모시고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 알고 있지? 


영선 : (갑자기 스피커폰을 끈다) 으, 응. 그럼. 어? 정말이야? 아휴, 그래 알았어. 아이, 알고 있다니깐. 그래, 끊어. (서둘러 수화기를 끊는다) 


영선 : (천장을 보며) 휴……. 


명희 : 얘, 잘 나가다가 왜 갑자기 스피커폰을 끄니? 무슨 얘길 했는데? 


영선 :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너네 알았지? 


윤숙 : 그럼 화려하게 입고가면 되는거지? 그런데 텔레비전에는 정말 나온대? 


명희 : (윤숙을 보고) 으이그……. 


영선 : 하하. 모르겠어. 하지만 한 번 기대해 봐. 


명희 : 그래, 니가 모르겠다니 누군들 알겠니. 야, 윤숙아. 우리도 이제 이만 가자. 


윤숙 : (방긋 웃으며) 그러자. 내일 입을 옷도 골라야 하니까. 


명희 : (일어서며 윤숙을 보고 한 숨을 쉰다) (영선에게) 그럼 내일 보자구. 


영선 : (현관까지 배웅한다) 그래, 잘 가. 


(명희, 윤숙 퇴장) 


제 6 장 


영선 


영선 : (독백) 이것 참 고민되네……. 그나저나 아빠가 내일 가셔야 할텐데, 아잇 참. 오빠두 나한테 이런……. 에이, 모르겠다. 어쨌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뭐. 


(영선, 부엌으로 퇴장) 


(막) 


제 3 막 


이혼식장. 


화려한 결혼식장과도 같은 분위기. 


무대 좌측에는 스탠드 마이크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으며, 그 안쪽에는 사회자 강대상과 의자, 그리고 피아노가 있고 반주자가 우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식장에는 부페가 마련되어 있어 정장을 차려입은 하객들이 여기저기 모여 음식을 먹으며 여러 얘기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 주위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어딘지 모르게 적응이 안된다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나눈다. 의자는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모두들 자유롭게 걸어다닌다. 


출입구는 무대 우측에 있다. 


제 1 장 


명희, 윤숙, 하객들 


(명희, 윤숙 우측 출입구에서 정장차림으로 무대 중앙으로 등장) 


명희·윤숙 주위를 돌아본다. 


윤숙 : (명희를 보고) 그것 봐. 역시 결혼식 분위기잖아. 


명희 : 그래, 분위기는 어느 정도 맞춘 것 같긴 한데, 사람들 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 좀 봐. (하객들을 돌아보며) 어, 저기 연경이도 왔네. 


제 2 장 


명희, 윤숙, 연경, 하객들 


명희 : 연경아! 너도 왔니? 


연경 : (하객들에게 잠시 인사를 하고 명희 쪽으로 온다) 어머, 너희들 오랜만이다. 


명희 : 그래, 공교롭게도 여기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보는구나. 


윤숙 : (밝은 목소리로) 그럼 재혼할 때도 또 보겠네? 


명희 : (당황하는 연경을 보고 윤숙 옆꾸리를 팔꿈치로 찌른다.) (연경에게) 그나저나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니. 혹시나 하고 와 보니 오히려 결혼식 보다도 더 화려하네. 


연경: 그러게. 나도 긴가민가 했는데 와보니 정말 분위기는 결혼식이더라구. 너넨 지금 온거니? 


명희 : 응. 근데 대식이 오빠는 아직 안왔어? 


연경 : 그러게, 나도 조금 전에 왔는데 오빠도 영선이도 아직인가봐. 


명희 : 오빠라…근데 오늘은 그 둘을 신랑 신부가 아닌 뭐라고 불러야 되지? 


윤숙 : 물론 그야 구랑 구부……. 


명희 : (이마에 손을 얹으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윤숙 : 근데, 연경아. 넌 축의금 가지고 왔니? (진지하게) 아니, 내가 집에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축의금이라기 보다는 그…뭐냐, '격려금'이라고 해야할 것 같더라. 안그러니, 명희야? 


명희 : (여전히 이마에 손을 얹으며) 그래, 수고했다. 열심히 격려해줘라. 


제 3 장 


명희, 윤숙, 연경,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하객들 


출입구에서 신문사 기자와 카메라맨이 등장하고 하객들에게 취재를 시작한다. 기자는 수첩과 펜을 들고 출입구 부근에 서 있는 남성 하객과 대화를 나누고 남성 하객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손짓을 하며 몇 마디를 나눈다 (음성 없음) 


카메라맨은 식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계속 찍어댄다. 


윤숙 : (기자와 카메라맨을 보며) 얘, 얘, 어떡해. 정말 취재왔나봐. 


연경 : (냉소적으로) 어머, 정말. 무슨 경사가 났다고 저렇게 설친다니. 


명희 : (윤숙의 소매를 잡으며) 야, 우리 좀 저쪽에 가 있자. 올까봐 겁난다. 


윤숙 : 겁이 날게 뭐가 있어. 오히려 오면 좋지 않니? 혹시 또 알아? 이름이 나갈지 말이야. 


명희 : 얘, 만약 질문이라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하니? 정말 기쁜 일이니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다고라도 해야겠니? (기자를 돌아보고 목소리를 죽이며) 얘! 큰일났어. 일루 오잖어! (윤숙을 보고) 야, 너 저런거 좋아하지? 너 책임져! 


기자 : (셋이 모여 있는 무대 중앙으로 온다) (명희에게) 저…매일신문에서 나온 기잔데요, 몇 마디 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명희 : (당황하며) 저, 저……, 예. 근데, (윤숙 등을 밀며) 근데 그런건 얘가 잘하거든요. (윤숙에게 목소리를 죽이며) 야, 뭐해! 


기자 : (윤숙에게) 오늘 이혼식이라는 건 아시고 오셨겠고. 이런 행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윤숙 : (약간 당황하며) 예, 그러니까. 저……. (울상을 지으며) 여, 연경아. 


연경 : (기자를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자가 깜짝 놀라 연경 쪽으로 돌아선다) 물론 정말 생소하며 외국에도 이런 사례는 없을 줄 압니다만,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치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의의를 가지며, 이러한 사실이 세계에 알려지면 장차 널리 보급되어……(목소리 fade out) 


명희 : (연경의 말하는 모습을 보고 넋을 잃으며) 얘, 윤숙아. 쟤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니? 


윤숙 : 그, 글세. 쟤가 원래 저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지만 말빨 한 번 끝내주네. 


명희 : 야, 넌 어제 그렇게 설쳐대더니 오늘은 말한마디 못하고 뭘 하는거야. 


윤숙 : 으, 응. 할 말은 많이 생각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네……. 


(이 때 연경과의 대화동작을 마무리하고, 연경에게 "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고 한 후 관객쪽으로 가서 직접 관객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명희 : 하이구……. (출입구 쪽을 보고 놀라며) 어? 얘, 윤숙아, 저기 누가 들어온다. 


제 4 장 


명희, 윤숙, 연경,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하객들, 사회자 


사회자가 시계를 보며 허겁지겁 빠른 걸음을 하며 무대 안쪽으로 들어오고는 사회자 강대상에 선다. 반주자의 음악소리가 멎는다. 


사회자 : (숨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하, 하객여러분. 죄송합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된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공사다망하신 데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리를 빛내 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지금부터 안내해 드린 바와 같이 김대식씨와 경혜선씨와의 이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주인공인 김대식씨와 경혜선씨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잠시 간격) 두 분 입장! 


(피아노 반주자가 베토벤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제 5 장 


명희, 윤숙, 연경,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하객들, 사회자, 김대식, 경혜선. 


정장을 차려입은 김대식과 경혜선이 나란히 음악에 맞추어 입장을 한다. 


하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박수를 친다. 


김대식과 경혜선은 무대 좌측까지 행진을 하고는 두 대의 마이크 옆에 선다. 


사회자 : 다음으로 두 분의 인사말이 있겠습니다. 먼저 김대식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김대식 : 여러분, 오늘 바쁘신 와중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간 많은 논란이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적지 않게 혼란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첫째로, 결혼은 행복이요 이혼은 불행이라는 무책임한 선입견을 깨고자 하는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경혜선 : 음……결혼이라는 행사는 예나 지금이나 인륜지대사로 여겨지면서도 혼례 자체의 형태나 의미, 나아가 여기서 파생되는 수 많은 현상들은 알게 모르게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예컨대 함과 예물, 그리고 지참금이나 혼수 같은 것들을 우리는 이미 결혼에 있어서 당연한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갖춘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여기에는 암암리에 왜곡된 부분마저 부각되어 사회적으로 문제시가 되어 온지 오래입니다. 


김대식 : 요즘은 결혼률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왜 일까요? 물론 인구의 증가도 원인중 하나일 수 있겠으나, 여기에는 이혼률의 증가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결혼이 인생에 있어 큰 행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행사도 없이 그저 불행의 결과로만 인식되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사회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이혼에 관해서만은 눈을 가리고 억지로 회피하려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점에도 결혼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혜선 : 과거 조선시대에는 이혼을 제기하는 권한 마저도 남성의 특권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른바 소박맞은 여성은 거의 인생을 포기하여야만 했습니다. 나아가 재혼이라는 것은 꿈도 못꾸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현재는 어떻습니까. 여성의 사회진출도 나날이 증가추세에 있으며 남성 못지 않은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대식 : 이러한 과정에서 이혼을 꼭 비극의 결과물로 볼 수가 있을까요? 여러 하객들을 모시고 함께 하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알리는 것이 결혼이라면, 이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가 자신의 길을 나아가고자 한다면 역시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경혜선 : 이제 저희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각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욱 성숙한 관계로 발전해 나아갈 것을 약속 드립니다. 


김대식 : 아울려 또 한 가지 말씀드려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약간 침묵)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 중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출입구 쪽에서 큰 남성 소리가 들려오며 소란스러워진다) 


제 6 장 


명희, 윤숙, 연경,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하객들, 사회자, 김대식, 경혜선. 김덕길, 영선. 


김 노인 : (출입구 바깥에서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들어온다) 네 이놈들! 이게 도대체 무슨 짓들이야! 당장 집어 치우지 못해! (김대식 앞으로까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고는 가만히 대식을 노려본다) (영선은 어쩔줄을 모르며 김 노인 뒤를 따라간다) 


김대식 : 이제 오셨군요. 죄송하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김 노인 : 하지만? 야, 이 놈아. (경혜선 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아가야, 내가, 내가 너, 너희들을……. 너희들 결혼을 어떻게……, 어떻게 시킨 결혼인데……. (울먹인다) 


김대식 : (영선에게) 영선아, 아버님을 잠시 저 쪽으로 모시고 가서 진정시켜드려라. 약은 가지고 왔지? 그리고 명희야. 와 줘서 고맙다. 미안하지만 아버지께 물 좀 드릴 수 있겠니? (영선은 사회자 강대상 옆에 있는 의자에 김 노인을 앉힌다) (명희, 옆에 있던 테이블에서 물을 따라 영선에게 건낸다) (영선은 핸드백에서 약을 꺼내어 김 노인에게 물과 함께 건내준다. 김 노인은 처음에 뿌리치지만 두 번째 약을 받아 마신다) 


김 노인 : (물을 삼키고는) 야, 이, 이……. 


김대식 : (김 노인에게)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더 제 말씀을 들어주세요. (마이크에 대고 다시 하객들에게) 여러분,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이혼식 외에도 중요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는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 중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부분입니다. 그것은 바로 또 하나의 새로운 결혼식을 거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식장 내가 웅성거린다) 


남성하객 1 : (김대식에게) 또 하나의 결혼식이라니? 그럼 이제 이혼식은 끝내고 그대로 다시 결혼하겠다는건가? 


김대식 : (하객쪽을 보며)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이 결혼식에 앞서 먼저 여러분께 설명을 드려야 하겠군요. 여러분,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저희 어머님께서는 제 나이 불과 2살 때 타계하시고, 저희 부친께서 지금까지 홀로 네 남매를 키워오셨습니다. 그리고, 한편 제 부인인 경혜선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어 어머님 혼자서 외동딸을 키워오셨습니다. (잠시 침묵) 저희가 어떤 사실을 안 것은 결혼식을 앞둔 바로 얼마 전이었습니다. (고개를 숙인다) 


경혜선 : 이 사실은 저 혼자만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이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결혼인지를 이미 대식씨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50년 전, 물론 저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지요. 여러분이 믿으실지 모르겠으나, 저희 어머니와 김대식씨 아버님께서는 이미 서로를 아는 관계셨습니다. 아니, 서로와 누구보다도 더할 나위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사이였습니다. 


김대식 : 그러나, 그 결혼은 친인척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어 무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시대가 시대인지라 부득이하게 둘은 갈라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는 갈라서더라도 자식들로 인하여 함께 살자는 굳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의 혼례는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 이루어진 결혼이었습니다. 


김 노인 : (김대식에게) 야, 이 놈아. 지금 무슨 소릴 짓거리겠다는계야! 그래, 네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가 없진 않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마음에 안들어서 둘이 갈라 선다는게냐? 이 늙은이한테 또 다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작정이냐! (흐느낀다) 


김대식 : 아버지,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가 생각한 이 문제의 진실된 해결방법은 다른 곳에 있기에, 단지 저희가 결혼한다고 하여 두 분의 한이 풀어지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김 노인 : (고개를 들며) 무, 무슨……? 


김대식 : 자, 여러분. 오늘의 마지막 행사이자 최대의 행사인 성대한 결혼식의 막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영선에게) 영선아, 어서 모셔와라. 


영선 : (김 노인과 김대식을 번갈아 본다) 아, 알았어……. (영선, 빠른 걸음으로 퇴장) 


(하객들이 다시 웅성거린다) 


제 7 장 


영선을 제외하고 전동 

사회자 : (관중들을 향해) 자, 여러분. 그럼 지금부터 신랑 김덕길씨와 신부 이옥순씨의 결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부, 입장! 


반주자가 결혼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제 8 장 


명희, 윤숙, 연경, 신문사 기자, 카메라맨, 


하객들, 사회자, 김대식, 경혜선. 김덕길, 영선, 이옥순 


영선, 손수건을 얼굴에 대고 흐느끼는 이옥순과 함께 식장에 입장한다. 


하객들 박수를 친다. 


김 노인 : (의자에서 일어선다) 아니……이런. (이옥순에게 다가가며) 이, 이 보시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반주자의 반주가 멈춘다) 


이옥순 : (고개를 숙인 채로) 저도 오늘 아침에 여기에 도착하고 난 다음에 영선이로부터 들었습니다. (다시 흐느낀다) 


김 노인 : 아니,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 이게……. 


이옥순 : 말이 될 리가 있나요.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이제 조금이라도 옛날 일들을 잊을 수 있게 되었다 싶더니 다시 또 이런 일이……. 


김 노인 : (김대식에게) 야, 이 놈아. 이유야 어떻든 간에 너희들은 이미 부부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냐. 그런데 무슨 회괴망측한 소리를 지껄이는게야! 


경혜선 : 아버님, 걱정마세요. 저희는 이런 사실을 알고나서부터 일찍이 부부로서의 생활을 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방도 따로 썼음은 물론입니다. 이제 저희는 부부가 아닌 남매로서 새롭게 출발할 생각입니다. 


김대식 : (하객들에게) 자, 여러분. (주머니에서 비행기 표 두 장을 꺼낸다) 이 두 분께서는 오늘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이 두 분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큰 박수를 보내 드립시다! 


(하객들 우렁찬 박수를 치고, 반주자는 결혼식에서 퇴장할 때의 결혼행진곡을 친다) 


(주위에서는 폭죽과 꽃가루가 쏟아지고, 카메라맨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댄다. 김 노인은 흐느끼는 이옥순을 포옹하고 사회자, 경혜선, 영선, 명희, 윤숙, 연경, 그리고 일부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천천히 퇴장한다.) 


(음악소리와 조명이 어두워진다) 


제 9 장 


남은 하객들, 김대식, 남성하객 1, 남성하객 2. 


퇴장해 가는 하객들 사이에서 남성하객 1과 남성하객 2가 무대 앞쪽으로 나오며 조명이 켜진다. 


남성하객 1 : 이봐, 넌 어떻게 생각하나? 대식이 저 녀석이 정말 계속 방을 따로 썼을까? 


남성하객 2 : 하하. 너도 그런 생각을 했구만. 글쎄다. 내가 아는 저 녀석이라면……하하. (뒤를 돌아보고 다시 남성하객 1에게) 야, 이런 문제는 말이야 우리 한 번 직접 물어보자구. 


남성하객 1 : 그래? 좋아. (뒤를 돌아보고) 야, 대식아! (빠르게 손짓을 한다) 


김대식 : (두 남성하객들이 있는 곳으로 온다) (웃는 얼굴로) 왜? 무슨 일이야? 


남성하객 2 : (한 손으로 김대식의 목에 팔을 걸친다)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라. 너 정말 혜선씨랑 계속 방을 따로 쓰면서 생활을 했어? 


김대식 : 하하. 그게 무슨 뜻인데 그래? 


낭성하객 1 : (김대식의 머리를 툭 친다) 얌마. 그러니까 그게……. (조금 머뭇 거린다) 


남성하객 2 :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결혼하고 지금까지 정말 혼자서 잤냐 이 말이야! 


김대식 : 아아, 그 말이었군.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오늘이 음력으로 몇 일인지 혹시 알아? 궁금하면 한 번 달력을 보는 것도 좋겠지. 그럼 난 이만 간다! (웃으면서 남성하객 2의 팔을 뿌리치고 퇴장) 

제 10 장 


남성하객 1, 남성하객 2. 


남성하객 1 : (출입구 쪽을 보며) 야, 저게 무슨 말이냐. 


남성하객 2 : 글세……. (수첩을 꺼내고 남성하객 1과 같이 수첩을 드려다 본다) 음력이니깐, 어제가 3월……그러니까 오늘이 4월……. 


남성하객 1 : 어!?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아니, 이런……. (잠시 서로 배를 잡고 웃는다) 


남성하객 1 : 저 자식이 그냥……. (출입구 쪽으로 달려간다) 야, 대식아! 대식아! (퇴장) 


남성하객 2 : 어? 야, 같이 가! 이봐! (출입구 쪽으로 달려가며 퇴장) 


(경쾌한 음악이 흐른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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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식 - 한국어  (0) 2018.05.03
Posted by 문학관 관리인 위어조자(謂語助者)

열리지 않는 금고
홍성필 (1997)


1.

'조금 흐린 날씨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리 상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뜬 후 처음 든 생각이다. 그 다음은 가로수가 양쪽 길가에 끝없이 늘어선 시내 어느 한 거리를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기분 좋게 밖으로 나갔을까.'

"미경아, 아무리 일요일이라도 그렇지. 넌 언제까지 자고 있니? 어서 일어나지 못해. 빨리 씻고 밥 먹어라."

필요 이상으로 자서 그런지, 더 이상 잠이 오지도 않았지만 왠지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있고 싶었다. 이왕이면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일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아직 자고 있는 척을 했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일요일이라서일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별로 없어서였을거야. 다른 날이라면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노려본 후로는 모든 일이 반사적으로 일어나, 결국은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마는 반복되는 생활에 한 때는 만족했었다. 의미없는 생각이란 나한테 아무런 필요도 없고 도움도 안돼. 하지만 지금은 무척 그립다. 어떤 일이 머리에 떠올라서가 아니라, 단지 머리에 떠올린다는 일 자체만으로도 너무 즐거워질 것만 같이 느껴진다. 감미롭다.

몇 번 반복되는 엄마의 말 소리에 지쳐, 더 이상 누워있어 봤자 좋은 생각이 나기도 전에 온갖 사악한 생각이 정복해 버릴 것만 같아, 하는 수 없이 부시시 일어났다.

"씻었니? 그럼 이리 와서 밥먹어라."

"응...... 아빠는?"

"출근하셨다. 무슨 일이 그리도 바쁘신지. 남이 들으면 사업하시는 줄 알거다."

"공무원 맞어?"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넌 이런 화창한 날에 약속도 없니?"

"화창해? 엄마, 오늘은 조금 흐린 날씨 아냐?"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넌 창문도 안봤니? 구름 한 점 없단다."

나는 잠시 숟가락을 놓았다.

"어......안되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침의 그 느낌이 반드시 맞기를 바랬다

"화창하면 곤란할 일이라도 있니? 근데, 넌 언제 애인이라도 생기니? 애인 있는 자식 기르는 집에서는 데이트다 뭐다 해서 돈도 많이 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네가 몇 살이야? 네가 코가 두 개니, 눈이 세 개니?"


"엄마, 됐어. 밥 먹는데 너무 그러면 배탈 날지도 몰라. 남자들이야 주위에 한 둘도 아닌데 뭘 어때."

"그래, 잘 한다. 조금만 더 있어봐라. 어느 미친놈이 너한테 눈길이나 주겠니? 어서어서 임자 구해서 어떻게 좀 잘 해봐라."

"잘 해보긴 뭘 잘해. 근데 이 된장국, 조금 맛이 깔깔하지 않어?"

엄마는 내 말을 듣고서 숟가락을 뺏고는 직접 드셔보았다.

"아니? 늘 하던대로 만든건데, 이상해? 잠깐 너 혓바닥 좀 내밀어봐."

난 아무런 생각없이 낼름 내밀었다. 철이 든 후 처음으로 엄마한테 혓바닥을 내민 기념할 만한 사건이다.

"쯧쯧, 혓바늘 솟았다. 회사 일이 피곤하니?"

"아니."

"그럼,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

"널 맨날 괴롭힌다는 박 대리가 강제로 술집으로 끌고 가서, 억지로 술 먹이고는 같이 여관 가자고 그러디?"

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이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훌륭하다.

"엄마, 정말 내가 그런 꼴을 당했으면 좋겠어?"

"그럼 천하태평인 네가 웬 혓바늘이냐?"

"몰라. 엄마, 나 있다가 잠깐 나갔다 올게."

"데이트도 없는 주제에 어딜 가?"

"데이트도 없으면 밖에도 못 나가? 책 사러 종로나 가 볼래."


정말 혓바늘 때문인지 식욕이 별로 없었다. 한 공기도 다 비우지 않은 채 일어서고는, 화장품 몇 개를 대충 얼굴에 찍어 바른 후, 청바지 차림으로 밖에 나 갔다.

그러자 바로 아침에 상상했던, 끝없이 뻗은 가로수 길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지 않는가......라면 거짓말이다. 조금 원했던 건 사실이지만, 역시 현실은 무미 건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멋 없고, 가장 개성도 없는 집들을 긁어모아 한 자리에 몰아 놓기도 쉽지 않을텐데 문밖을 나서면 언제나 처음 보는 광경이 이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내 삶 또한 멋도 개성도 없는 이유 중에는 이 골목도 한 몫 하고 있을지 모른다.

골목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셔터가 내려진 구멍가게를 돌자마자 비교적 큰 금고 하나가 나타났다. 높이가 60센티 정도는 될까? 아니, 아무리 못해도 80센티 는 돼 보인다. 금고는 흔한 진녹색을 하고 있었으며, 발로 한 번 건드려 보았더니 둔탁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이유 모를 호기심이 불연듯 자극해서 잠시 관찰해 보기로 했다.

'어디서 갖다 놓은 걸까? 무슨 설치예술도 아닐텐데, 이사하나?'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돌아 보아도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상점들은 일요일이라서 셔터를 내렸으며, 가정집들도 조용하다.

'무거울까?'

나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발로 차 보았지만, 5초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내 발을 너무 과대평가 했거나, 아니면 금고를 과소평가 했기 때문이다. 너무 아팠다. 홧김에 그냥 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발에 대한 어떤 보상을 받고도 싶어 주위를 돌아 보았더니 마침 새끼줄이 하나 있었다.

'흠, 정말 편리한 소설이야.'

나는 분명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을 회사에서도 해 본적이 있어, 별 어렵지 않게 금고를 꽁꽁 묶었다. 이 금고를 끌고 파출소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집에 가져가려고도 하였으나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민의 모습인가. 그렇다, 나는 바로 정의의 화신이다. 아무리 세상이 썩어 빠졌다 고는 하나, 정의의 화신이 이런 금고 하나에 양심을 판다는 건 말도 안된다.


힘이 약한 편은 아니었으나 너무 힘들었다. 파출소 앞까지 가자 팔 뿐이 아니라 온몸이 쑤셨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파출소를 지키고 있던 순경 한 명이 수 많은 서류가 쌓인 책상 앞에 앉아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왔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 열심히 책상만 노려보는 순경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저......아저씨."

순경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놀라운 말을 했다.

"오오, 아가씨는 정의의 화신 아닌가."

내가 사욕을 뿌리치고 무거운 금고를 여기까지 힘들게 끌고 왔으리라고는 알 리가 없는데, 그 순경은 나를 보자마자 정의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이 순경은 역시 얼굴이 범상치 않아.'

나는 설레이는 가슴을 가라앉힐 틈도 없이 황급히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걸 아셨어요?"

"이마에 써 있잖아?"

순경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다. 깜짝 놀란 나는 서둘러 머리띠를 풀고 나서 다시 순경한테 말했다.

"저......지금 무척 바쁘신가보죠?"

"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우리 경찰은 언제나 바쁘지. 여기 있는 서류도 모두 시민을 위한 일이거든."


힐끔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무슨 서류가 이렇게 많아요?"

"이건 모두 양식이란다. 여기 이것과 이것은 각각 1,000원과 5,000원을 습득했을 때 제출하는 신고서, 그리고 저기 좀 큰 건 10,000원 용이고 저기 노랑색 서류는 수표용이지. 본관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알겠니?"

"그런 서류들을 모두 각각 만들다니, 조금 놀랍군요. 하지만, 습득한 지갑에 서로 돈이 섞여 있으면 어떡하죠?"

순경은 마치 모든 대책을 세워 놓았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한다.

"물론 그건 파출소에 어떤 서류가 많이 남아 있는가를 엄격히 심사해서 처리하지."

나는 한숨을 쉰 후, 내 용건이나 말하고 빨리 자리를 뜨기로 했다.

"저, 근데......"

순경은 말을 아직 제대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다며 황급히 내 말을 가로막고는, 서랍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들었다.

"아가씨, 잠깐. 아가씨한테는 일단 묵비권이 있고, 아가씨의 발언은 아가씨한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도 있으며, 변호사를 붙일 권리도 있다는 걸 알아두게. 만약 여의치 않으면 나라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주기도 한다구. 요즘은 일부 몰지각한 경찰들 때문에, 성실한 대다수 경찰들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지. 하지만 본관은 업무에 철저하거든. 자, 말해봐."

별로 웃음도 안나왔다.

"아니, 그건 누굴 체포했을 때나 하는 고지의무인데, 전 단지......"


경찰은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은 바쁘다구. 아가씨를 상대로 해서 소중한 근무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 빨리 말해 봐."

"예, 저......제가 방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금고를 주었거든요. 그래서 여기 신고하려고 끌고 왔어요."

"금고를? 길에서 지갑도 아니고 금고를 습득했다는 건가?"

경찰은 적지 않게 난감해 했다.

"왜요? 금고는 신고하지 못하나요?"

"이것 참 큰일이군."

얼마 동안 깊은 고민에 빠진 듯 침묵하고는 말했다.

"아가씨가 그냥 집에 가지고 가면 안되겠나?"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전혀 예상밖의 대답에 재빨리 물어보았다.

"예? 아니, 이런 걸 습득하면 당연히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는게 아닌가요?"

"음,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아가씨 충고는 본관이 깊이 새겨 듣겠으며, 그 충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게야. 하지만, 그건 그냥 가지고 가는게 낫겠어."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금고의 습득신고가 들어왔을 때 쓰는 신고서라는게 없거든."

"그래서 접수를 못하시겠다는 건가요? 농담이시죠?"

"이봐요, 아가씨! 본관이 아가씨와 농담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게 보이나?"

"그럼 만약 주인이 나타나서 금고를 물으면 어떡하실 건데요?"

"흠......아주 현명한 아가씨로군. 그럼 아가씨 생각은 어떤가."

달리 말하기도 싫고, 다시 저 무거운 금고를 집에까지 끌고 간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암담했다.

"여기 그냥 보관하면 안되나요? 저걸 여기까지 끌고 오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다구요."

"그럴 수는 없어. 아까도 말했듯이 신고서 양식도 없거니와, 여기는 너무 좁거든. 그럼 이렇게 하자구. 아가씨 호출번호를 여기 적어두면 어떻겠나. 습득물은 신고하지 않더라도 습득인 신고서만 작성하면 되겠지."

호출기라는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허리에 손이 갔다.

"호출기는 없는데......그냥 집 전화번호만 말씀드릴게요."

"무슨 소리야. 요즘 호출기도 없는 젊은이가 어디 있어? 그럼 안돼."

"왜요? 설마 그 신고서에는 전화번호를 적는 란이 없기라도 하나요?"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해서 뼈대있는 농담이나 한 마디 던졌다.

"응......"

"뭐라구요?"

"이상하게 왜 그런지 아무래도 모르겠어. 아마 실수였나 보구만."

"그럼 어떻게 하시려구요!"

"지금 어디서 본관한테 큰 소리인가. 알았소, 좋아. 그럼 내 수첩에 적어 놓기로 하지. 내 수첩에는 양식이 없거든."

'젠장......'

"하지만, 이걸 그럼 어떻게 끌고 가요? 설마 집에까지 가져다 주실 것도 아니잖아요."

"천만에. 우리는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이야. 잠깐만 기다려봐. 심부름 센터를 불러주지."

여차여차 해서 간신히 금고를 집까지 가져온 후로는 큰 고민이 생겼다.

'집도 좁은데 그건 또 뭐냐. 빨리 내다 버려!' 라며 난리를 치는 엄마도 그 원인이긴 하지만, 열쇠도 없는 이 금고를 도대체 어디다 쓰는가가 문제다.

이렇게 큰 금고를 베개로 쓸 수도 없고, 의자로 쓰기에는 너무 높다. 그렇다고 책상으로는 너무 좁으니, 그냥 방안에 놔두기만 하면 그렇잖아도 좁은 방이 더욱 좁아진다.

당연히 열어보려는 생각도 했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내가 보관하고 있고, 또한 이걸 분실한 사람도 금고 보다는 내용물이 중요할 것이며, 내용물을 확인하면 원래 주인을 찾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금고란 본래 열쇠없이는 좀처럼 열 수 없게끔 만들어졌으며, 이 금고는 남달리 튼튼해 보인다. 망치로 두들겨도 봤지만 이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짓이며, 열쇠가게에 부탁을 해보려고도 했으나 왠지 이상한 의심을 받을 것도 같아서 관뒀다.

'도대체 여긴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증은 나날이 더해가며, 그 만큼 이상한 기대감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튼튼한 금고에 넣어둘 정도라면 정말 대단한 것인지도 몰라. 금덩어리? 아니면 지폐뭉치?'

그러나, 손에 들고 흔들어 보지도 못하니 어차피 상상만으로는 풀리지 못할 의문이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커져가는 흥미는 급기야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이제 이 금고는 내꺼야.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주인이 안 나타나잖아? 그러니까 내 것을 넣어두어야 해. 비록 열리지는 않지만 나는 열은 거야. 나만이 열 수 있었으니, 닫는 것도 내 마음이야. 여기에 내 꿈과 희망을 넣어두자. 지금은 내세울만한 꿈이나 희망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젊었을 때의 꿈들을 언젠가는 그리워할 날이 올지도 몰라. 좋아, 나는 여기에 모든 꿈과 희망을 간직해 놓겠어.'

이렇게 해서 조금은 길었던 금고와 나와의 싸움은 기나긴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가끔 시간이 나면 금고를 닦았고, 왁스칠도 해주었다. 쓸모없는 금고를 아끼는 나를 보고 엄마는 처음에 구박도 했으나, 지금은 속으로 금고를 좋아하며, 가끔 내 방으로 금고를 보러 오신다.

"얘, 이 못생긴 금고가 뭘 좋다고 맨날 닦니?" 하시면서 손으로 툭툭 치고는 나가신다.

'설마 엄마도 여기에......?'

그럴 지도 모른다. 엄마도 여기에 엄마의 무언가를 넣어 두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역시 엄마 밖에 열지 못하므로 조금은 아쉬었으며, 한편으로는 아주 조금 질투까지 났다. 이런 생각은 단순히 내 상상만이 아니다. 언젠가 엄마 친구분이 집에 놀러오셔서 엄마랑 말씀 나누시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미경이가 큰 금고를 얻었다고 하죠?"

"예, 정말 빨리 시집이나 가지. 시간만 나면 금고를 닦고 그런다니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구......또 어떻게 보면 걱정되기도 하네요."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엄마의 저 말에는 분명 가시가 있다.


"정말 재미있네요. 도대체 뭘 넣어 놨길래 그런데요? 일기장이나, 아니면 남자 친구 사진?"

'흥, 일기장을 금고에 넣어두면 얼마나 귀찮을까. 더구나 남자친구 사진? 무슨, 남자친구 질식 시킬 일 있나.'

"아뇨, 열쇠도 없는 금고를 몇 년 전에 주워왔는데, 어디 열어볼 수가 있어야죠."

"어머, 그러세요? 제가 잘 아는 자물쇠집이 있는데, 거기 한 번 부탁해 볼까요?"

이 말을 들은 나는 긴장했다. 저 금고는 열쇠로 열지 못하니까 내 금고인데, 만약 열어버리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지나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냥 놔두세요. 얼마 전에 저도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쟤는 그냥 자기가 궁금한게 좋은가봐요. 얼마나 좋으면 이름까지 붙여주었어요. 저 금고는 분명 김 씨니까 이름은 '김 고'라나요? 저도 가끔 그 금고를 보면 재미있답니다."

"말씀을 듣고 있으니, 미경이 엄마가 더 그 금고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말씀들을 나누며 웃는 두 분은 참 보기가 좋았다. 서로 흰 머리도 눈에 많이 띄는 나이인데, 대화내용이나 웃음소리는 마치 어린 소녀들의 담소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금고, 아니, '김 고'는 그렇게 해서 이제는 어엿한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2.

이것은 아내와 4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오며 몇 번이고 들은 얘기다. 아무리 재벌집 딸이라 해도 저런 금고를 들고 시집 오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 더구나 열리지도 않는 금고라니.

전셋방부터 시작한 우리 부부생활에, 그렇잖아도 비좁은데 버젓이 눌러앉은 금고가 처음에는 밉기도 했으나, 아내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힘들 때도 가끔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저 낡은 금고한테 위안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꾸중을 듣기도 했단다.

이제까지 저 금고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 자식들도 사용해왔다. 엄마나 나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꿈이나 고민들을 각자 저 금고에 넣어 두고는 가끔 열어보며 힘을 얻었다.

며칠 전 막내 녀석 결혼식도 무사히 마쳤다. 이젠 아내가 금고를 가지고 왔을 때의 장모님 보다도 훨씬 더 나이를 많이 먹어 버렸다.

이미 저 금고 속의 실제 내용물은 중요하지가 않다. 비록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각자 '무엇을 넣어 두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하늘이 맑은 날, 창밖에서는 따사로운 햇빛이 거실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나와 아내가 탁자에 마주 앉아, 수 십 년을 함께 살아온 금고 얘기를 오랜만에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찰칵'

우리는 그 순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시선이 표정과 함께 굳었다. 분명 둘 모두 처음 듣는 소리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금고가 열리는 소리다.

주름살이 섞인 아내의 얼굴 속에 긴장감이 감돈다. 어떤 기쁨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이다. 침묵이 흘렀다.

"당신이 가봐......"

나는 조용히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먼저 달려가고 싶었으나, 처음 저 금고를 보아야 할 사람은 분명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일어서자, 금고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앉은 곳에서는 열린 금고의 문밖에 보이지 않았다.

금고에 못미쳐서 아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바로 다시 걷기 시작하고는 조용히 금고 앞에 앉았다.

아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단지 내가 평생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너무나도 고운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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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리지 않는 금고 - 한국어  (0) 2018.05.03
Posted by 문학관 관리인 위어조자(謂語助者)

살아있는 창자(生きている腸:いきているはらわた)

운노 쥬자(海野十三)

일본어 원문



 妙な医学生

 医学生吹矢隆二は、その日も朝から、腸(はらわた)のことばかり考えていた。

 午後三時の時計がうつと、彼は外出した。

 彼の住んでいる家というのは高架線のアーチの下を、家らしい恰好にしただけの、すこぶる風変りな住宅だった。

 そういう風変りな家に住んでいる彼吹矢隆二という人物が、またすこぶる風変りな医学生であって、助手でもないくせに、大学医科にもう七年も在学しているという日本に一人とあって二人とない長期医学生であった。

 そういうことになるのも、元来彼が課目制の学科試験を、気に入った分だけ受けることにし、決して欲ばらないということをモットーにしているのによる。されば入学以来七年もかかっているのに、まだ不合格の課目が五つほど残っていた。

 彼は、学校に出かけることは殆どなく、たいがい例の喧騒の真只中にある風変りな自宅でしめやかに暮していた。

 いまだかつて彼の家をのぞいた者は、まず三人となかろう。一人は大家であり、他の一人は、彼がこれから腸(はらわた)のことについて電話をかけようと思っている先の人物――つまり熊本博士ぐらいのものであった。

 彼は青い顔の上に、ライオンのように房づいた長髪をのせ、世にもかぼそい身体を、てかてかに擦れた金ボタンつきの黒い制服に包んで駅前にある公衆電話の函に歩みよった。

 彼が電話をかけるところは、男囚二千七百名を収容している○○刑務所の附属病院であった。ここでは、看護婦はいけないとあってすべて同性の看護夫でやっている。男囚に婦人を見せてはよくないことは、すでに公知の事実である。

「はあ、こちらは○○刑務病院でございます」

「ああ、○○刑務病院かね。――ふん、熊本博士をよんでくれたまえ。僕か、僕は猪俣とでもいっておいてくれ」

 と、彼はなぜか偽名をつかい、横柄な口をきいて、交換嬢を銅線の延長の上においておびえさせた。

「ああ熊本君か。僕は――いわんでも分っているだろう。今日は大丈夫かね。まちがいなしかね。本当に腸(はらわた)を用意しておいてくれたんだね。――南から三つ目の窓だったね。もしまちがっていると、僕は考えていることがあるんだぜ。そいつはおそらく君に職を失わせ、そしてつづいて食を与えないことになろう。――いやおどかすわけではない。君は常に、はいはいといって僕のいいつけをきいてりゃいいんだ。――行くぜ。きっとさ。夜の十一時だったな」

 そこで彼は、誰が聞いてもけしからん電話を切った。

 熊本博士といえば、世間からその美しい人格をたたえられている○○刑務病院の外科長であった。彼は家庭に、マネキン人形のように美しい妻君をもってい、またすくなからぬ貯金をつくったという幸福そのもののような医学者であった。

 しかしなぜか吹矢は、博士のことを頭ごなしにやっつけてしまう悪い習慣があった。もっとも彼にいわせると、熊本博士なんか風上におけないインチキ人物であって、天に代って大いにいじめてやる必要のあるインテリ策士であるという。

 そういって、けなしている一方、医学生吹矢は、学歴においては数十歩先輩の熊本博士を百パーセントに利用し、すくなからぬその恩恵に浴しているくせに、熊本博士をつねに奴隷のごとく使役した。

「腸(はらわた)を用意しておいてくれたろうね」

 さっき吹矢はそういう電話をかけていたが、これで見ると彼は、熊本博士に対しまた威嚇手段を弄しているものらしい。しかし「腸(はらわた)を用意」とはいったいなにごとであるか。彼はいま、なにを企て、そしてなにを考えているのであろうか。

 今夜の十一時にならないと、その答は出ないのであった。


三番目の窓


 すでに午後十時五十八分であった。

 ○○刑務病院の小さな鉄門に、一人の大学生の身体がどしんとぶつかった。

「やに早く締めるじゃないか」

 と、一言文句をいって鉄門を押した。

 鉄門は、わけなく開いた。錠をかけてあるわけではなく、鉄門の下にコンクリの固まりを錘りとして、ちょっとおさえてあるばかりなのであったから。

「やあ、――」

 守衛は、吹矢に挨拶されてペコンとお辞儀をした。どういうわけかしらんが、この病院の大権威熊本先生を呼び捨てにしているくらいの医学生であるから、風采はむくつけであるが熊本博士の旧藩主の血なんか引いているのであろうと善意に解し、したがってこの衛門では、常に第一公式の敬礼をしていた。

 ふふんと鼻を鳴らして、弊服獅子頭の医学生吹矢隆二は、守衛の前を通りぬけると、暗い病院の植込みに歩を運んだ。

 彼はすたすたと足をはやめ、暗い庭を、梟(ふくろう)のように達者に縫って歩いた。やがて目の前に第四病舎が現われた。

(南から三番目の窓だったな)

 彼はおそれげもなく、窓下に近づいた。そこには蜜柑函らしいものが転がっていた。これも熊本博士のサーヴィスであろう――とおもって、それを踏み台に使ってやった。そして重い窓をうんと上につき上げたのである。

 窓ガラスは、するすると上にあがった。うべなるかな、熊本博士は、窓を支える滑車のシャフトにも油をさしておいたから、こう楽に上るのだ。

 よって医学生吹矢は、すぐ目の前なるテーブルの上から、やけに太い、長さ一メートルばかりもあるガラス管を鷲づかみにすることができた。

「ほほう、入っているぞ」

 医学生吹矢は、そのずっしりと重いガラス管を塀の上に光る街路燈の方にすかしてみた。ガラス管の中に、清澄な液を口のところまで充たしており、その中に灰色とも薄紫色ともつかない妙な色の、どろっとしたものが漬かっていた。

「うん、欲しいとおもっていたものが、やっと手に入ったぞ、こいつはほんとうに素晴らしいや」

 吹矢は、にやりと快心の笑みをたたえて、窓ガラスをもとのようにおろした。そして盗みだした太いガラス管を右手にステッキのようにつかんで、地面に下りた。

「やあ、夜の庭園散歩はいいですなあ」

 衛門の前をとおりぬけるときに、およそ彼には似つかわしからぬ挨拶をした。が、彼はその夜の臓品が、よほど嬉しかったのにちがいない。

「うえっ、恐れいりました」

 守衛は、全身を硬直させ、本当に恐れいって挨拶をかえした。

 門を出ると、彼は太いガラス管を肩にかつぎ下駄ばきのまま、どんどん歩きだした。そして三時間もかかって、やっと自宅へかえってきた。街はもう騒ぎつかれて倒れてしまったようにひっそり閑としていた。

 彼は誰にも見られないで、家の中に入ることができた。彼は電燈をつけた。

「うん、実に素晴らしい。実に見事な腸(はらわた)だ」

 彼は、ガラス管をもちあげ電燈の光に透かしてみて三嘆した。

 すこし青味のついた液体の中に彼のいう「腸(はらわた)」なるものがどろんとよどんでいる。

「あ、生きているぞ」

 薄紫色の腸(はらわた)が、よく見ると、ぐにゃりぐにゃりと動いている。リンゲル氏液の中で、蠕動をやっているのであった。

 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

 医学生吹矢[#「医学生吹矢」は底本では「医学当吹矢」]が、もう一年この方、熊本博士に対し熱心にねだっていたのは、実にこの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であった。他のことはききいれても、この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の願いだけは、なかなかききいれなかった熊本博士だった。

「なんだい、博士。お前のところは、男囚が二千九百名もいるんじゃないか。中には死刑になるやつもいるしさ、盲腸炎になったりまた変死するやつもいるだろうじゃないか。その中から、わずか百C・M(ツェーエム)ぐらいの腸(はらわた)をごまかせないはずはない。こら、お前、いうことをきかないなら、例のあれをあれするがいいか。いやなら、早く俺のいうことをきけ」

 などと恐喝、ここに一年ぶりに、やっと待望久しかりし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を手にいれたのであった。

 彼はなぜ、そのような気味のわるい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を手に入れたがったのであろうか。それは彼の蒐集癖を満足するためであったろうか。

 否!


リンゲル氏液内の生態


 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なんてものは、文献の上では、さまで珍奇なものではなかった。

 生理学の教科書を見れば、リンゲル氏液の中で生きているモルモットの腸(ちょう)、兎の腸(ちょう)、犬の腸(ちょう)、それから人間の腸(ちょう)など、うるさいほどたくさんに書きつらなっている。

 標本としても生きている腸(ちょう)は、そう珍らしいものではない。

 医学生吹矢が、ここにひそかに誇りとするものは、この見事なる幅広の大腸(ちょう)が、ステッキよりももっと長い、百C・M(ツェーエム)もリンゲル氏液の入った太いガラス管の中で、活撥な蠕動をつづけ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った。こんな立派なやつはおそらく天下にどこにもなかろう。まったくもってわが熊本博士はえらいところがあると、彼はガラス管にむかって恭々しく敬礼をささげたのだった。

 彼は生ける腸(はらわた)を、部屋の中央に飾りつけた。天井から紐をぶら下げ、それにガラス管の口をしばりつけたものであった。下には、ガラス管のお尻をうける台をつくった。

 黴くさい医学書が山のように積みあげられ、そしてわけのわからぬ錆ついた手術具や医療器械やが、所もせまくもちこまれている医学生吹矢の室は、もともと奇々怪々なる風景を呈していたが、いまこの珍客「生ける腸(はらわた)」を迎えて、いよいよ怪奇的装飾は整った。

 吹矢は脚の高い三脚椅子を天井からぶら下げるガラス管の前にもっていった。彼はその上にちょこんと腰をかけ、さも感にたえたというふうに腕組みして、清澄なる液体のなかに蠢くこの奇妙な人体の一部を凝視している。

 ぐにゃ、、ぐにゃ、ぐにゃ。

 ぶるっ、ぶるっ、ぶるっ。

 見ていると腸(はらわた)は、人間の顔などでは到底表わせないような複雑な表情でもって、全面を曲げ動かしている。

「おかしなものだ。しかし、こいつはこうして見ていると、人間よりも高等な生き物のような気がする」

 と医学生吹矢は、ふと論理学を超越した卓抜なる所見を洩らした。

 それからのちの医学生吹矢は、彼自身が生ける腸(はらわた)になってしまうのではないかとおもわれるふうに、ガラス管の前に石像のように固くなったままいつまでも生ける腸(はらわた)から目を放そうとはしなかった。

 食事も、尾籠な話であるが排泄も彼は極端に切りつめているようであった。ほんの一、二分でも、彼は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の前をはなれるのを好まなかった。

 そういう状態が、三日もつづいた。

 その揚句のことであった。

 彼は連日の緊張生活に疲れ切って、いつの間にか三脚椅子の上に眠りこんでいたらしく自分の高鼾にはっと目ざめた。室内はまっくらであった。

 彼は不吉な予感に襲われた。すぐと彼は椅子からとびおりて、電燈のスイッチをひねった。大切な、生ける腸(はらわた)が、もしや盗まれたのではないかと思ったからである。

「ふーん、まあよかった」

 腸(はらわた)の入ったガラス管は、あいかわらず天井からぶらさがっていた。

 だが彼は、間もなく悲鳴に似た叫び声をあげた。

「あっ、たいへんだ。腸(はらわた)が動いていない!」

 彼はどすんと床の上に大きな音をたてて、尻餅をついた。彼は気違いのように頭髪をかきむしった。真黒い嵐のような絶望!

「ま、待てよ――」

 彼はひとりで顔を赭らめて、立ちあがった。彼はピューレットを手にもった。そして三脚椅子の上にのぼった。

 ガラス管の中から、清澄なる液をピューレット一杯に吸いとった。そしてそれを排水口に流した。

 そのあとで、薬品棚から一万倍のコリン液と貼札してある壜を下ろし、空のピューレットをその中にさしこんだ。

 液は下から吸いあがってきた。

 彼は敏捷にまた三脚椅子の上にとびあがった。そしてコリン液を抱いているピューレットを、そっとガラス管の中にうつした。

 液はしずかに、リンゲル氏液の中にとけていった。

 ガラス管の中をじっと見つめている彼の眼はすごいものであった。が、しばらくして彼の口辺に、微笑がうかんだ。

「――動きだした」

 腸(はらわた)は、ふたたび、ぐるっ、ぐるっ、ぐるっと蠕動をはじめたのであった。

「コリンを忘れていたなんて、俺もちっとどうかしている」

 と彼は少女のように恥らいつつ、大きな溜息をついた。

「腸(はらわた)はまだ生きている。しかし早速、訓練にとりかからないと、途中で死んでしまうかもしれない」

 彼はシャツの腕をまくりあげ、壁にかけてあった汚れた手術衣に腕をとおした。


素晴らしき実験


 彼は、別人のように活撥になっていた。

「さあ、訓練だ」

 なにを訓練するのであろうか。彼は、部屋の中を歩きまわって、蛇管や清浄器や架台など、いろいろなものを抱えあつめてきた。

「さあ、、医学史はじまっての大実験に、俺はきっと凱歌をあげてみせるぞ」

 彼は、ぼつぼつ独り言をいいながら、さらにレトルトや金網やブンゼン燈などをあつめてきた。

 そのうちに彼は、あつめてきた道具の真ん中に立って、まるで芝居の大道具方のように実験用器の組立てにかかった。

 見る見るガラスと金具と液体との建築は、たいへん大がかりにまとまっていった。その建築はどうやら生ける腸(はらわた)の入ったガラス管を中心とするように見えた。

 電気のスイッチが入ってパイロット・ランプが青から赤にかわった。部屋の隅では、ごとごとと低い音をたてて喞筒モートルが廻りだした。

 医学生吹矢隆二の両眼は、いよいよ気味わるい光をおびてきた。

 一体彼は、何を始めようというのであるか。

 電気も通じてブンゼン燈にも薄青い焔が点ぜられた。

 生ける腸(はらわた)の入ったガラス管の中には、二本の細いガラス管がさしこまれた。

 その一本からは、ぶくぶくと小さい泡がたった。

 吹矢隆二は、大きな画板みたいなものを首から紐でかけ、そして鉛筆のさきをなめながら、電流計や比重計や温度計の前を、かわるがわる往ったり来たりして、首にかけた方眼紙の上に色鉛筆でもってマークをつけていった。

 赤と青と緑と紫と黒との曲線がすこしずつ方眼紙の上をのびてゆく。

 そうしているうちにも、彼はガラス管の前に小首をかたむけ、熱心な眼つきで、蠕動をつづける腸(はらわた)をながめるのであった。

 彼は文字通り寝食を忘れて、この忍耐のいる実験を継続した。まったく人間業とはおもわれない活動ぶりであった。

 今朝の六時と、夕方の六時と、この二つの時刻における腸(はらわた)の状況をくらべてみると、たしかにすこし様子がかわっている。

 さらにまた十二時間経つと、また何かしら変った状態が看取されるのであった。

 実験がすすむにつれ、リンゲル氏液の温度はすこしずつのぼり、それからまたリンゲル氏液の濃度はすこしずつ減少していった。

 実験第四日目においては、腸(はらわた)を収容しているガラス管の中は、ほとんど水ばかりの液になった。

 実験第六日目には、ガラス管の中に液体は見えずになり、その代りに淡紅色のガスがもやもやと雲のようにうごいていた。

 ガラス管の中には、液のなくなったことを知らぬげに、例の腸(はらわた)はぴくりぴくりと蠕動をつづけているのであった。

 医学生吹矢の顔は、馬鹿囃の面のように、かたい笑いが貼りついていた。

「うふん、うふん。いやもうここまででも、世界の医学史をりっぱに破ってしまったんだ。ガス体の中で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 ああなんという素晴らしい実験だ!」

 彼はつぎつぎに新らしい装置を準備しては古い装置をとりのけた。

 実験第八日目には、ガラス管の中のガスは、無色透明になってしまった。

 実験第九日目には、ブンゼン燈の焔が消えた。ぶくぶくと泡立っていたガスが停った。

 実験第十日目には、モートルの音までがぴたりと停ってしまった。実験室のなかは、廃墟のようにしーんとしてしまった。

 ちょうどそれは、午前三時のことであった。

 それからなお二十四時間というものを、彼は慎重な感度でそのままに放置した。

 二十四時間経ったその翌日の午前三時であった。彼はおずおずとガラス管のそばに顔をよせた。

 ガラス管の中の腸(はらわた)は、今や常温常湿度の大気中で、ぐにゃりぐにゃりと活撥な蠕動をつづけていた。

 医学生吹矢隆二は彼の考案した独特の訓練法により、世界中のいかなる医学生も手をつけたことのなかったところの、大気中における腸(はらわた)の生存実験について成功したのであった。


同棲生活


 医学生吹矢は、目の前のテーブルの上に寝そべる生ける腸(はらわた)と、遊ぶことを覚えた。

 生ける腸(はらわた)は、実におどろいたことに、感情に似たような反応をさえ示すようになった。

 彼がスポイトでもって、すこしばかりの砂糖水を、生ける腸(はらわた)の一方の口にさしいれてやると、腸(ちょう)はすぐ活撥な蠕動をはじめる。そして間もなく、腸(ちょう)の一部がテーブルの上から彼の方にのびあがって、

「もっと砂糖水をくれ」

 というような素振りを示すのであった。

「あはあ、もっと砂糖水がほしいのか。あげるよ。だが、もうほんのちょっぴりだよ」

 そういって吹矢は、また一滴の砂糖水を、生ける腸(はらわた)にあたえるのだった。

(なんという高等動物だろう)

 吹矢はひそかに舌をまいた。

 こうして、彼が訓練した生ける腸(はらわた)を目の前にして遊んでいながらも、彼は時折それがまるで夢のような気がするのであった。

 前から彼は、一つの飛躍的なセオリーをもっていた。

 もしも腸(はらわた)の一片がリンゲル氏液の中において生存していられるものなら、リンゲル氏液でなくとも、また別の栄養媒体の中においても生存できるはずであると。

 要は、リンゲル氏液が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に与えるところの生存条件と同等のものを、他の栄養媒体によって与えればいいのである。

 そこにもっていって彼は、人間の腸(はらわた)がもしも生きているものなら、神経もあるであろうしまた環境に適応するように体質の変化もおこり得るものと考えたので、彼は生ける腸(はらわた)に適当な栄養を与えることさえできれば、その腸(はらわた)をして大気中に生活させることも不可能ではあるまい――と、机上で推理を発展させたのである。

 そういう基本観念からして、彼は詳細にわたる研究を重ねた。その結果、約一年前になってはじめて自信らしいものを得たのである。

 彼の実験は、ついに大成功を収めた。しかもむしろ意外といいたい簡単な勤労によって――。

 思索に苦しむよりは、まず手をくだした方が勝ちであると、さる実験学者はいった。それはたしかに本当である。

 でも、彼が思索の中に考えついた一見荒唐無稽の「生ける腸(はらわた)」が、こうして目の前のテーブルの上で、ぐるっ、ぐるっと生きて動いているかとおもうと、まったく夢のような気がするのであった。

 しかしもう一つ特筆大書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こうして彼の手によって大気中に飼育せしめられつつあるところの腸(はらわた)が、これまで彼が予期したことがなかったような、いろいろ興味ある反応をみせてくれることであった。

 たとえば、今も説明したとおり、この生ける腸(はらわた)が砂糖水をもっとほしがる素振りを示すなどということはまったく予期しなかったことだ。

 それだけではない。腸(はらわた)と遊んでいるうちに彼はなおも続々と、この生ける腸(はらわた)がさまざまな反応を示すことを発見したのだ。

 細い白金の棒の先を生ける腸(はらわた)にあて、それからその白金の棒に、六百メガサイクルの振動電流を伝わらせると、彼の生ける腸(はらわた)は急にぬらぬらと粘液をはきだす。

 それからまた、吹矢は生ける腸(はらわた)の腸壁の一部に、音叉でつくった正しい振動数の音響をある順序にしたがって当てた結果、やがてその腸壁の一部が、音響にたいして非常に敏感になったことを発見した。まずそこに、人間の鼓膜のような能力を生じたものらしい。彼はやがて、生ける腸(はらわた)に話しかけることもできるであろうと信じた。

 生ける腸(はらわた)は、大気中に生活しているためにその表面はだんだん乾いてきた。そして表皮のようなものが、何回となく脱落した。この揚句の果には、生ける腸(はらわた)の外見は大体のところ、少し色のあせた人間の唇とほぼ似た皮膚で蔽われるにいたった。

 生ける腸(はらわた)の誕生後五十日目ころ――誕生というのは、この腸(はらわた)が大気中に棲息するようになった日のことである――においては、その新生物は医学生吹矢隆二の室内を、テーブルの上であろうと本の上であろうと、自由に散歩するようになるまで生育した。

「おいチコ、ここに砂糖水をつくっておいたぜ」

 チコというのは、生ける腸(はらわた)に対する愛称であった。

 そういって吹矢が、砂糖水を湛えてある平皿のところで手を鳴らすと、チコはうれしそうに、背(?)を山のように高くした。そしてチコに食欲ができると、彼の生き物はひとりでのろのろと灰皿の[#「灰皿の」はママ]ところへ匍ってゆき、ぴちゃぴちゃと音をさせて砂糖水をのむのであった。その有様は、見るもコワイようなものであった。

 かくて医学生吹矢隆二は、生ける腸(はらわた)チコの生育実験をまず一段落とし、いよいよこれより大論文をしたため、世界の医学者を卒倒せしめようと考えた。

 ある日――それはチコの誕生後百二十日目に当っていた。彼はいよいよその次の日から大論文の執筆にかかることとし、その前にちょっと外出してこようと考えた。

 いつの間にか、秋はたけ、外には鈴懸樹の枯葉が風とともに舗道に走っていた。だんだん寒くなってくる。彼一人ならばともかくも今年の冬はチコとともに暮さねばならぬので電気ストーヴなども工合のいいものを街で見つけてきたいと思ったのだ。

 また買い溜をしておいた罐詰もすっかりなくなったので、それも補充しておきたい。チコのために、いろんなスープをさがしてきてやろう。

 彼はこの百数十日というものを、一歩たりとも敷居の外に出なかったのである。

「ちょっと出かける。砂糖水は、隅のテーブルのうえに、うんと作っておいたからね」

 彼は急に外が恋しくなって、チコに食事の注意をするのもそこそこに、入口に錠をおろし、往来にとびだしたのだった。


誤算


 医学生吹矢隆二は、つい七日間も外に遊びくらしてしまった。

 一歩敷居を外に踏みだすと、外には素晴らしい歓喜と慰安とが、彼を待っていたのだ。彼の本能はにわかに背筋を伝わって洪水のように流れだした。彼は本能のおもむくままに、夜を徹し日を継いで、歓楽の巷を泳ぎまわった。そして七日目になって、すこしわれにかえったのである。

 チコの食事のことがちょっと気になった。日をくってみると、あの砂糖水はもうそろそろ底になっているはずだった。

「まあ一日ぐらいは、いいだろう」

 そう思って彼はまた遊んだ。

 その日の夕方、彼はなにを思ったか、足を○○刑務病院にむけた。そして熊本博士を訪問したのであった。

 博士は、吹矢があまりに人間臭い人間にかわって応接室に坐っているのを見て愕いた。

「この前の一件は、どうしたですか」

 と、博士はそっとたずねた。

「ああ、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のことだろう。あれはいずれ発表するよ、いひひひ」

「一件は何日ぐらい動いていましたか」

「あはっ、いずれ発表する、だがね熊本君。腸(はらわた)というやつは感情をあらわすんだね。なにかこう、俺に愛情みたいなものを示すんだ。本当だぜ。まったく愕いた。――時にあれは、なんという囚人の腸(はらわた)なんだ。教えたまえ」

「……」

 博士は返答をしなかった。

 いつもの吹矢だったら、博士が返答をしなかったりすると、頭ごなしにきめつけるのであるが、その日に限り彼はたいへんいい機嫌らしく、頤をなでてにこにこしている。

「それからね、熊本君。ホルモンに関する文献をまとめて、俺にくれんか。――ホルモンといえば、この病院にいた例の美人の交換手はどうした。二十四にもなって、独身で頑張っていたあの娘のことだよ」

 と、吹矢は変にいやらしい笑みをうかべて熊本博士の顔をのぞきこんだ。

「あ、あの娘ですか――」

 博士は、さっと顔色をかえた。

「あの娘なら、もう死にましたよ、盲腸炎でね、だ、だいぶ前のことですよ」

「なあんだ、死んだか。死んだのなら、しようがない」

 吹矢は、とたんにその娘のことに興味を失ったような声をだした。そしてまた来るといって、すたすたと室を出ていった。

 その夜更けの午前一時。

 医学生吹矢隆二は、ようやく八日目に、自宅の前に帰ってきた。

 彼はおもはゆく、入口の錠前に鍵をさした。

(すこし遊びすぎたなあ。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そうだチコという名をつけてやったっけ。チコはまだ生きているかしら。なあに死んでもいいや。とにかく世界の医学者に腰をぬかさせるくらいの論文資料は、もう十分に集まっているからなあ)

 彼は、入ロの鍵をはずした。

 そして扉をひらいて中に入った。

 ぷーんと黴くさい匂いが、鼻をうった。それにまじって、なんだか女の体臭のようなものがしたと思った。

(おかしいな)

 室内は真暗だった。

 彼は手さぐりで、壁のスイッチをひねった。

 ぱっと明りがついた。

 彼は眩しそうな眼で、室内を見まわした。

 チコの姿は、テーブルの上にもなかった。

(おや、チコは死んだのか。それとも隙間から往来へ逃げ出したのかしら)

 と思ったが、ふと気がついて、出かけるときにチコのために作っておいた砂糖水のガラス鉢に眼をやった。

 ガラス鉢の中には、砂糖水がまだ半分も残っていた。彼は愕きの声をあげた。

「あれっ、今ごろは砂糖水がもうすっかりからになっていると思ったのに――チコのやつどうしやがったかな」 

 そういった刹那の出来事だった。

 吹矢の目の前に、なにか白いステッキのようなものが奇妙な呻り声をあげてぴゅーっと飛んできた。

「呀(あ)っ!」

 とおもう間もなく、それは吹矢の頸部にまきついた。

「ううっ――」

 吹矢の頸は、猛烈な力をもって、ぎゅっと締めつけられた。彼は虚空をつかんでその場にどっと倒れた。

 医学生吹矢の死体が発見されたのは、それから半年も経ってのちのことであった。一年分ずつ納めることになっている家賃を、大家が催促に来て、それとはじめて知ったのだ。彼の死体はもうすでに白骨に化していた。

 吹矢の死因を知る者は、誰もなかった。

 そしてまた、彼が残した「生ける腸(はらわた)チコ」に関する偉大なる実験についても、また誰も知る者がなかった。

「生ける腸(はらわた)」の実験は、すべて空白になってしまった。

 ただ一人、熊本博士は吹矢に融通した「生ける腸(はらわた)」のことをときおり思いだした。実はあの腸(はらわた)はどの囚人のものでもなかったのである。

「生ける腸(はらわた)」はいったい誰の腹腔から取り出したものであろうか。

 それは○○刑務病院につとめていた二十四歳の処女である交換手のものであった。彼女は盲腸炎で亡くなったが、そのとき執刀したのは熊本博士であったといえば、あとは説明しないでもいいだろう。

 処女の腹腔から切り放された「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が医学生吹矢の首にまきついて、彼を殺したことは、彼の死をひそかに喜んでいる熊本博士もしらない。

 いわんや「生ける腸(はらわた)」のチコが、吹矢と同棲百二十日におよび、彼に非常なる愛着をもっていたこと、そして八日目にかえってきた彼の声を開き、嬉しさのあまり吹矢の首にとびつき、不幸にも彼を締め殺してしまった顛末などは、想像もしていないだろう。

 あの「生きている腸(はらわた)」が、まさかそういう女性の腸(はらわた)とは気がつかなかった医学生吹矢隆二こそ、実に気の毒なことをしたも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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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학관 관리인 위어조자(謂語助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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