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여인훈계

여인훈계 - 한국어

관 리 인 2018. 4. 30.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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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훈계(女人訓戒)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40)

번역 : 홍성필


 타츠노 유타카(辰野 隆) 선생님이 쓰신 “프랑스 문학 이야기”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글이 있다.


 “1884년이라고 하니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오베르뉴 지방 끌레르몽 페랑 시에 사는 시브레 박사라고 하는 안과 명의가 있었다. 그는 동착적인 연구에 의해 인간의 눈은 짐승 눈과 바꾸기 쉬우며, 유독 짐승 중에서도 돼지와 토끼눈이 가장 사람 눈과 가깝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어느 소경인 여인에게 이 놀라운 수술을 시도한 것이다. 접안재료로서 돼지 눈은 아무래도 좀 불쾌하므로 토끼눈을 쓰기로 했다.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고 그 여인은 그날부터 세상을 지팡이로 더듬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디푸스 왕이 버린 빛의 세상을 그녀는 토끼눈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상당한 화젯거리였는지 당시 신문에도 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그 접안을 봉합한 곳에 염증이 생겨 ― 아마도 수술 당시 소독이 불완전했을 것이라는 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 그녀는 또다시 소경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그녀와 가까웠던 사람이 훗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나는 두 가지 기적을 목격했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전설 속 기적과 같은 의미에서의 기적이 신앙에 의하지 않고 과학적 실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두 번째 기적이 내게는 더욱 놀라웠다. 그것은 그녀가 토끼눈을 가지고 있었던 며칠 동안, 그녀는 사냥꾼을 보면 반드시 도망쳤다는 현상이다.”


 이상이 그 선생님 글인데 이렇게 옮겨 놓고 보니 어쩐지 군데군데 선생님의 교묘한 신비적인 날조도 가미되어 있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 돼지 눈이 가장 사람 눈에 가깝다는 점 등은 아무래도 너무나 통쾌하다. 그러나 아무튼 이는 진지한 기사이다. 일단 그대로 믿지 않는다면 선생님에 대해 실례이다. 나는 전부를 그대로 믿기로 한다. 이 불가사의한 보고 중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그 마지막 한 줄에 있다. 그녀가 사냥꾼을 보면 반드시 도망쳤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지금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녀의 접안 재료는 토끼눈이다. 아마도 병원에서 기르고 있던 집토끼임이 분명하다. 집토끼가 사냥꾼을 무서워할 리가 없다. 사냥꾼을 본 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산속에 사는 야생 토끼라면 어쩌면 사냥꾼에 대한 두려움도 알고 있어 이를 멀리 하는 것도 또한 당연하다고 여겨지나, 설마 박사님이 애써 산속 깊숙이 들어가 야생 토끼를 힘들게 포획하여 이를 가지고 실험에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사육된 집토끼였음이 분명하다. 아직 사냥꾼을 본 적도 없는 그 토끼 눈이 왜 갑자기 사냥꾼을 알아보고 이를 두려워하게 되었는가. 여기에 사소한 문제가 있다.


 대수로울 것 없다. 답은 간단하다. 사냥꾼을 두려워한 것은 토끼 눈이 아니라 그 토끼 눈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다. 토끼 눈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토끼 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잘 알고 있었다. 토끼 눈을 갖기 전부터 사냥꾼의 잔인한 성격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녀 집 근처에 실력 좋은 사냥꾼이 살고 있어, 그 사냥꾼은 유독 야생토끼 사냥을 잘 하여 오늘은 열 마리, 오늘은 열다섯 마리, 산에서 잡아왔다는 이야기를 그 사냥꾼으로부터 직접 또는 그 사냥꾼 부인으로부터 듣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해결은 쉽다. 그녀는 집토끼 눈을 갖고 그 빛나는 세계를 볼 수 있었으며 그녀 자신이 토끼 눈을 매우 아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예전부터 들어왔던 사냥꾼이라는 토끼의 적을 증오하고 두려워하여 결국에는 그를 노골적으로 회피하게 된 것이다. 즉, 토끼 눈이 그녀를 토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가 토끼 눈을 사랑하는 나머지 스스로 자진하여 그녀 쪽에서부터 토끼가 되어준 것이다. 여성에게는 이와 같은 육체도착이 매우 자주 보이는 듯하다. 동물과의 육체교류를 태연하게 긍정하고 있다. 어떤 영어학원 여학생이 ‘L’이라는 발음을 정확하게 발음하고 싶은 나머지 우설스프를 일주일에 두 번씩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또한 이와 비슷하다. 서양인이 ‘L’이라는 발음을 그렇게 정확히, 그것도 어렵지 않게 하고 있는 이유는 옛날부터 육식을 했기 때문이다. 쇠고기를 먹고 있으므로 소 세포가 어느새 인간에게 이식되어 소처럼 혓바닥이 어느 정도 길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도 ‘L’ 발음을 정확하게 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지금 일주일에 두 번씩 우설스프를 열심히 먹고 있다고 한다. 우설스프는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소 혓바닥으로 만들어진 스프이다. 우족 같은 것보다 직접 혓바닥에 효험이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놀라운 점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그녀의 혀는 길어지고 ‘L’ 발음도 서양인들과 비슷해졌다는 현상이다. 이 이야기는 나도 전해들은 것이므로 직접 그 용감한 여학생을 뵌 적은 없기에 지금 여러분들께 보고함에 있어서는 조금 자신감이 없으나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세포의 동화력은 실로 놀랍다. 여우 목도리를 하면 갑자기 거짓말쟁이가 되는 부인이 있었다. 평소는 매우 겸손하고 얌전한 부인인데 일단 여우 목도리를 하고 외출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활한 거짓말쟁이가 된다. 여우는 내가 동물원에서 자세히 관찰해본 바에 의해도 절대 교활하거나 악한 성질을 가진 동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성적이고 얌전한 동물이다. 여우가 변신한다니, 여우한테 있어서는 당치도 않는 누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변신할 수 있다면 굳이 그런 좁아터진 우리 안에서 볼품없이 어슬렁거리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 도마뱀으로라도 변신하여 스르륵 우리 속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할 수 없다는 점을 보면 여우는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근거 없는 과대망상이다. 그 부인도 또한 여우는 사람을 속인다고 맹신하고 있는 듯 누가 부탁하지 않는데도 목도리를 쓸 때마다 애써 거짓말쟁이가 돼 보여준다. 참으로 수고가 많다. 여우가 부인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부인 쪽에서부터 그 부인의 공상 속에 있는 여우와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도 위에서 본 맹인 여성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토끼 눈은 조금도 사냥꾼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냥꾼이라는 것을 본 적도 없는데도 토끼 눈을 가진 여성 쪽에서 애써 사냥꾼을 두려워한다. 여우가 사람을 속이는 것도 아닌데 그 목도리를 가진 부인이 애써 사람을 속인다. 그 심리상태는 두 여인 모두 거의 비슷하다. 전자는 실제 토끼 이상으로 토끼가 되고, 후자는 실제 여우 이상으로 여우가 되면서도 태연하다. 기괴한 노릇이다. 여성들이 갖는 피부촉감의 과민성이 지나쳐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촉각을 이와 같은 두 세 사실로도 분명하게 입증할 수 있다. 어떤 영화배우는 피부색을 희게 하기 위해 오징어 회를 열심히 먹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이를 섭취하면 오징어 세포가 그녀의 육체 세포와 동화되어 유연하고 투명한 흰색 피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미신이다. 그런데 불쾌하게도 그녀는 그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풍문이다. 이제 이 지경까지 오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여성을 가엾게 여기는 수밖에 없다.


 뭐든 될 수 있는 것이다. 북방에 있는 등대지기 부인이 등대에 부딪혀 죽은 갈매기 깃털들을 모아 작은 흰 조끼를 만들었는데, 정숙하고 귀여운 부인이었으나 그 조끼를 옷 밑에 입고 나서부터는 갑자기 침착함을 잃고, 그 성격이 들뜨더니 남편 동료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서 결국 어느 겨울밤, 등대 꼭대기에서 새 날개처럼 두 팔을 벌리고는 바위에 몰아치는 파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는 외국 이야기가 있으나 이 부인도 스스로 자진하여 가엾은 갈매기가 되어버린 것이리라.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일본에도 예부터 고양이가 노파로 변하여 집안에 소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그것도 또한 생각해보면 고양이가 노파로 변한 것이 아니라 노파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고양이로 변한 것이 분명하다. 비참한 노릇이다. 귀를 살짝 만지면 움찔하고 그 노파 귀가 움직인다지 않는가. 유부를 좋아하고 쥐를 잡는다는 이야기도 어쩌면 과장이 아닌지도 모른다. 여성 세포는 매우 쉽게 동물과 동화될 수 있다. 이야기가 점점 암울해지기 시작하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는 요즘 인어라는 것에 대한 실재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인어’란 옛날부터 항상 여성이다. 남자인 인어가 나타났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항상 여성인 것 같다. 여기에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숨어 있다. 나는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밤 그녀가 매우 거대고 징그러운 생선을, 몸가짐도 뒤로하고 다 먹어버리고는 나중에 왠지 그 생선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여성 마음에 깊이 남는다는 것은 즉 서서히 육체 세포에 변화가 시작된 증거이다. 순식간에 가속이 붙어 가슴이 타들어가듯 바다가 그리워지고, 맨발로 집을 뛰쳐나가 첨벙첨벙 거리며 바다로 돌진한다. 가슴에 우툴두툴 비늘이 나기 시작하고는 몸을 꿈틀거리며 헤엄쳐 나아가자 안타깝게도 그 몸은 기이한 인어. 이런 식이 아닐까 한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그 육체 세포에 의해 물에 잘 뜨고 수영을 잘 한다고 한다.


 교훈. “여성은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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