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짧은 백일몽

짧은 백일몽 - 한국어

관 리 인 2018. 5. 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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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백일몽

홍성필 (1996)


1. 


그리 맑은 날은 아니었다. 일기예보는 365일 '기압골의 영향을 받아, 대기가 불안정하므로......' 라고 시작하여 오늘도 일교차가 심하단다. 


화창한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오랜만에 바깥 공기도 마실 겸 점심을 대충 때우고 집을 나섰다. 특별한 행선지를 정해놓지 않은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머리 속에서는 정신없이 매연을 몰고 다니는 시내버스가 오간다. 믿을 수 없는 정거장 표지판, 눈이 나쁘거나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만큼 숨어 다니는 시내버스, 지구력보다는 순발력과 날렵함을 겸비하여야만 비로소 탑승에 성공할 수 있는 전혀 대중적이지 못한 대중교통수단. 


버스를 탄다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아무리 귀를 쫑긋 세우고 안내방송을 들어봤자 '학교 앞', '다리 앞', '약국 앞', '학교 앞'의 우아한 메들리로 이어지며, 가끔 장단을 맞춘답시고 '은행 앞'이 등장한다. 오오, 사랑스러운 현대화여. 차라리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아리송한 말투로 속았을 때가 무언가 있어 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거리의 건물도 30초만 눈을 감았다 뜨면 어딘지 감도 안잡힌다. 너무 복잡해서? 차라리 복잡하면 인상에도 남는다. 정거장 이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조로운 건물들. 그나마도 오가는 차 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1997년도 이렇게 아무런 의미없이 흘러가는 거겠지.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21 세기가 오는 것일까. 21세기......아직 몇 년이나 더 남았는데 벌써 나는 그 이름에 질려버렸다. 21세기 정당, 21세기를 준비하는 모임, 21세기 학회, 21세기 주식회사, 21세기 빨래방, 21세기 편의점, 21세기 컴퓨터 세탁소, 21세기 연구회, 21세기 대학교, 새나라 21세기 유치원, 21세기 통신을 위한 모임. 한 술 더 떠 요즘 애들 중에는 '김 이십일세기' 라는 이름까지 있다니 말도 안나온다. 세월이 지나 22세기가 와도 숫자 하나만 고치면 유행에 곧바로 편승할 수 있으니 편리할런지도 모른다. 


간혹 유행과 개성이 공존하며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있다. 다른 이들과 똑같거나 비슷하게 하고 다니지 않으면 어디지 불안하게 느껴지며, 한 편으로는 그 틀 속에서 개성이라는 유치찬란한 코메디를 연출한다. 조그만하고 보잘 것 없는 틀에서 살짝이라도 벗어나노라면 촌스럽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니 가관이다. 이런 세파에 신물이 나, 아예 옷을 벗거나 입을 봉해 버린 사람들이 없으니 신기할 정도다. 


찝찝한 생각에 잠기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현관문으로 걸어 나가며 무심코 살짝 우편함을 보니 약간 두툼한 흰 봉투가 꽂혀 있었다. 이 건물의 한 방 마다 하나 씩 우편함이 있다보니 수 십 개에 달하지만, 늘 확인을 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찾게 된다. 카드청구서 치고는 너무 두껍고, 소포 보다는 작아 보인다.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슬그머니 꺼내보니, 받는 이와 보내는 이의 이름 이나 주소가 없고, 우표만 달랑 하나 붙어있을 뿐이다. 소인도 안찍힌 우표를 보니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발행된 기념우표가 아닌가. 


봉투만 하더라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제우편용 봉투다. 주위 네 모서리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찍혀 있으며, 봉투만을 햇빛에 비춰보면 비행기 무늬가 보이는 봉투. 우표와 더불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들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과연 훌륭하군." 


나도 모르게 냉소적 말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용물이 궁금하기는 하였으나 겉보기부터 벌써 쉽게 검토할 수 있는 분량으로 보이지는 않았기에, 우선 가지고 있던 서류가방에 달랑 넣고서는 현관문을 나섰다. 


차도를 건너 광화문으로 가는 좌석버스에 올라타고는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서울 변두리는 그나마 도심 보다는 오히려 개성미에 넘친다. 이른바 세련미가 부족하다고 누구는 말할지 모르나, 아직은 완벽하게 규칙적이지 않은 모습들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눈의 피로감을 덜어준다. 시간상으로 애매해서인지 거리에 행인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보도블럭 위에 찾을 수 없는 발자국은 여기저기 흩어져 제 갈 길을 가겠지만, 결국 끝까지 남아있는 것은 보도블럭일 뿐. 그 위를 지나는 행인은 나타나고 곧 사라진다. 저 많은 블럭 중 아직 한 사람도 건드리지 않은 것이 과연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있을 필요가 없었던 걸까. 밟히기만을 위해 깔린 존재라면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을 결론내리기도 가끔은 쉽지 않게 다가온다. 


버스가 달리는 길은 이미 익숙해져 버렸기에 눈을 감고 있어도 대략 어디 쯤에 와 있는지 짐작은 가므로, 다른 때와는 달리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까지는 없었다. 잠시 눈을 떠 점점 좁아지는 하늘을 보니 이제 내릴 때가 다가 왔음을 알았다. 


광화문 네거리에 내리고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려고 지하도를 지나서 종로 쪽으로 향했다. 넥타이를 달랑달랑 매달며 허탈한 표정으로 지나는 사람들. 시원스럽지도 않게 넘긴 반짝이는 머리카락이 왠지 마음에 들지마는 않는다. 제복을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여사원들과 그 사이로 와글와글 지나가는 대학생들. 이런 광경은 시내 번화가에만 가야 볼 수 있다. 아무리 변두리에까지 유흥가가 들이닥친다 해도 거기서는 넘치는 술냄새와 화장냄새에 사람들로부터 뿜어나오는 생기가 가려진다. 일명 '길보드'라 불리우는 리어커를 끌고 나와 불법테이프를 파는 상인들, 인형이나 악세사리를 파는 상인들. 시장바닥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들. 


"주 예수를 믿으시오.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쉬어가는 목소리 배경으로 들려오는 목탁과 불경소리가 은근히 구수한 맛을 자아내기도 하는 거리를 얼마나 걸었을까. 종로 2가와 3가를 가르는 네거리 횡단보도를 인사동 쪽으로 건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사동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넓지도 않은 골목에 10m가 멀다고 걸려있는 현수막, 도굴품과 유사품에 가득 찬 이 거리는 종로와 사뭇 다른 묘한 활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어차피 사지도 않을 물건들이니 가짜면 어떻고 훔쳐온 거면 또 어떠랴. 박물관에 전시된 골동품들이 모두 가짜라 해도 진짜처럼 보이면 만족할 수도 있다. 이럴 때에 쓰는 말이 '모르는게 약'이라던가. 그런 거리에 걸맞게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비싼 땅 위에 허름한 집을 세워놓고 허름한 차나 음식을 파는데, 수입 또한 상상도 못할 정도라니 그야말로 이 거리에 제격이다. 물론 그렇게 따지자면 이 거리에 모여 든 사람들도 모두 한통속이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미술관도 겸하고 있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분위기인 전통찻집 안에 들어갔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는 이 집을 개조하여 지금은 찻집으로 쓰고 있다는데, 한여름에 사랑방으로 쓰였을 한 방에 앉아 창문을 세 개 모두 활짝 열어 놓고 있노라면, 제 멋대로 바람들이 들어와 노닐고 나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시원하게 보인다. 


구름을 보니 눈이라도 내릴 것만 같은 1월인데 차가운 바람을 상상하는 건 어딘지 모르게 잔인한 감도 없지 않으나, 시원한 대기의 흐름을 머리 속에서 그리는 것만도 즐거울 때가 있다. 작은 바가지 메뉴판을 보고 생강차를 하나 시킨 후, 집을 나설 때 우편함에 들어있던 두툼한 봉투를 꺼내 들었다. 봉투를 뜯기 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던 나는 문득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얼핏 보기에는 흔한 봉투에 우표가 붙어 있는 줄 알았건만, 지금 보니 아예 봉투에 우표가 인쇄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우표수집에 대해 문외인인 나라고 해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우표가 찍힌 국제용 봉투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설마 내게 이런 걸 보내려고 손수 만든 것 치고는 너무도 정교했으며, 인쇄 상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다른 기념우표도 아닌, 사람이 죽었을 때 발행된 것인 만큼 기분은 그리 썩 좋지는 않았으나, 흥미는 조금씩 증폭해 갔다. 손으로 풀칠을 한 듯한 이 봉투를 조심스레 뜯고서 내용물을 꺼내보니, 역시나 몇 십장에 이르는 편지였는데 모두가 손으로 적힌 것들이다. 더구나 글씨체를 보면 활자처럼 개성없는 글씨의 나열이 아닌,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적힌 흔적을 여기 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글씨를 잘 쓰건 못 쓰건 간에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보면 대충 일정 정도 규칙성이 있다. 우선 필순도 대부분 일정하며, 이미 손에 익은 글씨를 쓰기 때문일텐데, 이 편지에 적힌 글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국민학생이나 어린 아이들이 또박또박 쓴 글씨와는 사뭇 다르다. 우선 글씨 자체가 깨알 만하며, 상당한 정교함 없이는 이런 편지를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이 편지를 읽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두로 시작한 이 편지를 읽은 내 앞에서 생강차는 말 없이 식어가기만 했다. 




2. 


이 편지를 받으시고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나 않았는지 조금 우려가 되는군요. 저 나름대로는 그래도 자연스럽게 하려고 적지 않은 노력을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조금 걱정이 되었으며, 비록 그루티스는 걱정없다고 말을 해 주기는 했으나, 혹시나 그런 점 때문에 미처 읽지도 않고 폐기 당하지나 않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말씀드릴 점이 있습니다. 제가 글을 써 나가면서 가급적 많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려 했으나 여러가지 제약상 부득이하게 추상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또한 글의 맞춤법도 제대로 됐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군요. 지금은 당시의 표기방식을 제대로 완벽하게 찍어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기계들이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악필이나마 손으로 쓰게 된 점도 널리 양해 바랍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구체적인 년도는 말씀드리기가 어렵겠으나, 아무튼 직접적으로 저와 만날 수는 없는, 조금 오랜 시간이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저는 동양문헌학을 전공하고 있는 일개 학생에 불과합니다만, 여러 이유 때문에 서면으로나마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가진 자료에 의하면 대략 20세기 후반이라고 밖에는 예측할 수가 없었으며, 봉투나 우표, 그리고 편지지도 당시의 것과 유사한 물건을 어렵게 구해서 보내드린 것입니다. 


구체적인 접촉을 원한 이유로서는 일단 제 작은 호기심에 기인한다는 점을 인정하여야만 하겠네요. 저희로서는 몇 안되는 자료와 상상만으로 밖에는 되짚을 수밖에 없는 그 시대는, 아마도 세기말에 접어들어 적지 않은 혼란을 겪고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그런 현상은 각 세기말 마다 나타난 현상이고 몇 십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 속에서 간혹 나타나곤 했으며, 하물며 대란까지 겪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 신념에 입각한다면 아무리 과학기술과 사회가 발달한다 해도 그 내부에 흐르는 개념이나 법칙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며, 다만 현상에 차이가 있을 뿐 원리까지 파고 내려간다면 미미하리라 믿습니다. 


본래 과거와의 접촉은 그로 말미암아 현재의 예상치 못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극히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고 있어, 예컨대 불과 몇 년 전이거나 할 경우는 절대 불가판정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벌어지면 벌어질 수록 이미 지난 과거에 손을 댄다 해도 현재에 미치는 영향은 전무에 가깝게 되며, 만일을 대비해서 그루티스에게 다시 확인작업을 받았습니다. 


부디 긴장을 푸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이 편지를 받으신 분께서 만약 끝까지 읽고 어떠한 행동을 한다 해도 결국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진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한 개인 때문에 역사가 바뀌지는 않으며, 또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물선정도 거친 상태이니까요. 그저 끝까지 읽어주시고 마지막에 제가 바라는 아주 쉬운 부탁만 들어주신다면 저로서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단지 삼류 소설을 읽어 내려가듯 아무런 부담 없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3. 


문득 눈앞을 보니 낯익은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텅 빈 엘리베이터에는 날씨 때문인지 파리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아늑한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폐소에 의한 공포 보다는 조금은 친숙해진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며 1층 단추를 눌렀다. 


이미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진 철판상자는 가벼운 진동을 일으키며 가속을 시작하여, 마치 무중력 상태로 나를 만들려듯 하강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안락한 등속운동으로 이어졌다. 




4. 


"어디라구? 거긴 안돼.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 더구나 오늘은 금요일이야.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행렬이 별로 즐겁게 보이지마는 않거든. 그래, 좋아. 6시? 알았어. 그 때 보자꾸나." 


결국 아침과 밤이 뒤바뀌고 말았다. 해는 중천에 떠 있는데 기껏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일어나고 보니 이유없이 자존심이 상했다. 다행이 지난 밤에는 늦게 잠이 들어 그 악몽과도 같은 마이크 소리를 듣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했다. 


방음창문이 오늘은 울리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만약 밖에 나간다면 지금 짐작컨대 적어도 두 번은 맨정신으로 악몽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찔해진다. 도대체 시간이라도 정확하면 말도 안하겠다. 특히나 오늘은 '그들' 이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날이니 길을 걷기가 영 불편하리라 짐작된다. 이런 나를 보면 덜떨어진 인간이라며 뭐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난리법석을 떠는 건 내 체질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제대로 정신이 박힌 무리들이 할 짓은 못된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누워있고 싶었으나 푸시시한 머리를 한 내 모습이 조금은 궁금해져 천천히 일어나 거울 쪽으로 다가섰다. 일어나자마자 고운 생각이라고는 티끌만치도 안했던 내 표정이 자신의 얼굴이라고 보기 좋을 리도 없었다. 


거울을 즐겨보는 습관은 묘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고 있으면, 거울 안에 있는 눈과 머리를 본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머리는 지금 거울밖에 있는 내 머리를 보고 있으며, 나도 역시 거울 속을 들여다 보며 그의 생각을 상상한다. 그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밖에 있는 내 머리 속의 상상이며, 나 또는 그의 머리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한다. 이 하염없는 무한루프는 거울 속에 있는 쪽이든 밖에 있는 쪽이든 어느 한 쪽이 거울 앞을 떠날 때에 비로소 인터럽트가 걸린다. 


즐겁지도 않은 게임을 마치고 목욕탕에 들어가 천천히 머리도 감은 후, 텔레비전을 키며 타올로 머리를 털었다. 텔레비젼에서는 오늘 있을 공판안내가 끝난 후, 얼마 전 대통령 선정파문에 관한 내용을 계속 내 보내고 있었다. 파문의 내용인즉, 그 동안 직선제로 대통령 선거를 하다 보니 투표율이 3%를 밑돌아 하는 수 없이 국회의원끼리 선거를 치뤘으나, 득표수가 동수인 세 후보가 선정되었는데, 아무리 선거를 해도 무효표만 늘어갈 뿐 제대로 대통령이 선정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세 후보가 협의하여 합리적인 선정방식을 내 놓겠다며 공언하고 며칠 후 독고문식 후보가 선정되었는데, 취임식 직전에 선정방식이 문제가 되었다. 


문제가 된 점은 다름 아닌 세 후보가 가위바위보를 한 결과 '보자기'를 내서 지게 된 독고문식 후보가 선정되었다는 풍문이 나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간에 이런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건 어느 비서실장이 술자리에서 세상한탄을 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나온 발언부터였다. 이 사건 이후 언론에서는 연신 이 화제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마침 어느 고위관직자라는 사람이 모자이크에 가득 찬 화면에 나타나 기자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독고당손자가 '보자기'를 내소 젓다는대 그개 사실임니가?" 


"아님니다. 저가 알기론 '가이'라구 드러슴니다." 


"그론대 구 사실울 종부애소는 외 욜을 내몬소 숨길라고 하는고조?" 


"이보소. 족오도 한 나라애 온수라눈 사람이 이앙 낼라문 보자기나 주목을 내아지, 새상에 가이룰 내서 당선댔다먼 이개 올마나 낫 뚜거운 일이개소?" 


그 말을 들은 기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금 질문을 한다. 


"일리가 잇긴 하군요. 하지만, 곡 그로캐까지 해소 대통령을 뽑아야 하눈곤가요? 만악 사종이 요이치 안타면 내각재로 존한하눈 방안도 곰토해 볼만할 곳 가툰대요." 


"이 사람이 시방 누굴 놀리나. 지굼 한 사람한태 시키기도 힘둘고 장간 할 사람 구하기도 어러운 판애 어러 명이 누가 하갯다고 나소게소? 혹시 당신 대통령 하실라우? 내가 직좁 아라보갯수다." 


방송 같지도 않은 방송을 보고 있는 나 자신도 가끔 한심해 진다. 이 세상에 이제 권력이라는 단어가 거의 사라져갈 무렵, 아무런 할 일 없는 대통령 자리를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뭔가 하나 하려고 하면 법원에 끌려가 빨간 줄이 그어지거나, 아니면 사법부 산하에 있는 언론기관에 의해 망신살을 당하게 된다. 그런 예가 몇 번 되풀이 되자 이제는 대통령이란 곧 전과자로의 첩경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기에 이르렀다. 십 몇 년 전에는 대통령으로 뽑힌 자가 끝까지 안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국가원수모독죄로 지금까지 징역을 살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사실을 외국에게는 일체 보도가 금지되어있다는 점이다. 보도 뿐만이 아니라 외국인에게 이런 사실을 단순히 말하기라도 하면 전재산 몰수에 삼족을 멸한다는 일명 '국가보안법'도 재작년에 제정되었다. 입법취지에 따르면 국가의 명예와 국위에 손상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는 내용인데,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이렇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장담하건대 하나도 없으나, 이렇게까지 해 가며 나라가 지탱되고 있다는 점을 딱하게 여겨서인지, 아니면 자국의 언론수준이 급격하게 전락하는 걸 우려해서인지, 아직 외국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공식적으로 보도된 적은 없다고 한다. 


탁한 공기가 방안에 가득차 있는 것 같아 커튼을 제치고 문을 활짝 열었다. 10층에서 바라보는 좁은 길가에 예쁘게 서 있는 은행나무들에서는 아직 싹이 나지 않았으나, 가끔은 찬 공기에 섞여 감미로운 봄내음이 풍겨오기도 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그래도 많은지 벌써부터 땅바닥에 엎드렸다 일어나는 모습이 몇몇 보인다. 벌써부터 설치는 사람들의 얼굴빛은 심각하기 짝이없다. 




5. 


전차를 잡아타고 20분 정도 달리다 내리면 바로 거기가 '우리들의 광장'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매력적이거나 예술적이지 못한 이름은 늘 내 마음 속에 불만으로 남는다. 지난 세월들의 위인들의 동상이나 비석이 여기 한 곳에 모여 있는데, 과거에는 '영웅들의 광장'이었다가 그 다음 '열사의 광장'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도저히 한 종류의 범주로 묶어 규정을 할 수 없다는, 국어실력이 부족한 관료들에 의해 결국 가장 무난한 지금 이름이 된 것이다. 


태극무늬 휘장을 펼치려 하고 있는 동상부터 시작해서 총 들고 머리에 총알 박힌 동상, 별 무늬가 수없이 찍힌 헌겁을 찢어버리는 두 남자, 한 손을 앞으로 뻗어낸 목에 혹이 달린 동상, 군복 차림의 대머리 동상,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묵묵히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는 동상 등, 정확한 설명문은 전혀 없고 그저 동상만 여기저기에 수 십 개가 흩어져 있다. 사실 이 광장을 계획한 사람들도 과거 자료들에 실린 사진들을 보고 대충 만든 것이므로, 실질적인 역사적 의미는 아직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얼마 전, 저기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동상은 역사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유력한 학설이 제기되어 눈길을 끌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므로 사람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지극히 한적한 소위 YeS 동상 앞에서 보기로 하였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광장입구에서 15분 정 도 걸어 들어가야 하며 관리상태도 비교적 부실하다. 아무리 역사적 의미가 부정확하다고는 하나, 그 형태나 분위기가 괜찮게 보이는 동상이 인기가 있는데, 특히 아무런 특징도 없고 눈 쳐진 늙은이가 멍청하게 서 있는 이 동상은 하물며 '키보드 앞 사나이' 보다도 훨씬 더 천대를 받는다. 


얼마 동안 기다렸을까. 서서히 그녀가 오는 느낌이 든다. 문득 시계를 보니 6시 20분을 조금 넘겼다. 


"안농. 잘 지냇지?" 


"응. 집에서 곧바로 나오는 것 같지는 않네?" 


"잠간 새나라촌에 갓다왓오. 가마니 생각해 보니가, 오눌 놀 돈이 옴눈곳 가타서 말이아." 


"뭐라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긴 가지 말라고 했잖아." 


"논 노무 보수족이라소 탈이아. 남둘 다 가눈 곳인대 모가 오때소? 노도 좀 개방적이 대바." 




최근에 들어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개방화 바람에 힘입어서인지 나날이 여자들의 새나라촌 방문이 늘어만 가는 추세에 있다. 언젠가 길을 가던 도중 거기를 지난 적이 있는데, 몇 백 미터에 달하는 길고도 비교적 넓은 골목이 있고, 양 옆에는 깔끔한 벽이 이어진다. 그 벽에는 위에 두 개 그리고 아래에 두 개씩 네 개가 한 쌍이 되어 일정한 간격으로 말뚝이 박혀있으며, 가운데 바닥에는 얕은 계단이 놓여있다. 그 사이에 치마 입은 여자들이 한 명씩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것이다. 


그 거리를 '볼일 있는 남자'들이 지나며 마음 내키는 여자에게 돈을 주면, 여자는 우선 10cm 정도의 계단을 올라 벽 윗편에 박힌 양쪽 두 말뚝을 잡고는 아래에 박힌 두 개의 말뚝 위로 각각 하나씩 다리를 살짝 올려 놓는다. 그 모습을 보면 과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도가 떠오른다. 


이윽고 남자는 여자의 치맛자락을 살며시 올려 마치 노상방뇨라도 하듯 볼일을 보고, 일을 마치면 지퍼를 올리고는 떠난다. 이 과정에서 여자와의 대화는 거의 오가지 않으며, 여자도 어느 정도의 돈이 생기면 그 자리를 떠나면 된다. 위생적으로도 피부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고, 의학적으로도 여자가 서 있기에 수정률은 극히 낮다고 하며, 체력 소모 때문에 불편이 느껴지거나 임신의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20m 간격으로 있는 창구에서 알약 하나만 먹으면 말끔히 해결된다. 


"거긴 사람들이 많니?" 


"요줌은 앳날보단 만아젓오. 하지만 오눌운 벌로 사람둘이 업소소 만이 눗눈 줄 알앗고돈." 


얘기를 들으며 나는 주머니를 뒤지며 담배를 찾았으나, 막상 담배갑을 꺼내어 보니 구부러진 담배 한 까치밖에 없었다. 


"혹시 담배 가진거 있니?" 


"참 나. 요줌애도 아직 담배피눈 요자가 잇대?" 


나는 구부러진 담배에 불을 붙이며, 천천히 옆에 앉으면서 하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담배를 한 먹음 빨아들이고 불며 왼쪽으로 눈을 돌리자 땅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는 여기까지도 오는구만." 


"구로개 말이아. 대단한 수고내." 


"저런 걸 왜 한다고 했지?"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마치 재채기라도 하다 만 듯한 표정을 짓는다. 


"넌 맨날 앳날 책만 둘오다 보고, 요줌 일을 도무지 모루니 그것도 문재아. 조론개 바로 오채투지잔아." 


"맞아, 오체투지. 그런데 넌 저런 것엔 관심이 없나보지?" 


"아니, 내가 외 간심이 업갯니. 조 사람둘이 주장하눈 교리애눈 논리송이나 과학족인 축몬우로 보먼 부족한 좀이 잇지만, 그래도 훙미를 주는 점이 만아. 그로찬아도 요줌 조곳에 대한 책울 좀 일고 잇거든? 노도 한 본 볼래?" 


자신의 가방에서 슬그머니 푸른 색 무늬가 가득 찍힌 책을 한 권 꺼내며 말한다. 그 책을 받아 펴 보니 벌써 한 두 번 읽은게 아닌 듯, 여기저기에 밑줄과 메모로 가득 차 있다. 


원래 어떤 종교의식으로부터 시작하였다는 이런 기이한 행동이 지금은 대중적 신앙으로 변천했다고 한다. 종교순례도 아닌 것이, 매주 금요일 마다 아침에 1시간 씩 저런 행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 매년 하루는 도심에 떠 있는 섬을 향해 저렇게 해 가며 모여든다고 한다. 아직 화폐가 국가와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시절, 어떤 이가 길을 가다 연속으로 세 번 엎어졌다는데, 마지막으로 일어나 보니 바닥에 지폐가 한 장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기념하여 그 곳을 성지로 정해놓고서 계속 저런 짓을 했다고 하는데, 몇 년 동안은 광기의 극치라거나 추한 인간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대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씩 비슷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일이 시초라고 한다. 나아가서는 이제 세상이 얼마 후면 환난에 휘말리게 되며, 그 때는 유일한 가치적 기준인 지폐가 선택된 자들에게만 하늘에서 내려져 부귀를 누린다는 교리까지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천천히 지나는 사람들은 땅과의 수 많은 마찰이 빚어낸 너덜너덜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위안 삼아 낀 장갑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듯, 보기만 해도 애처롭다. 


"오모, 지굼 몃시아?" 


"7시 10분 전이네. 또 시끄럽게 생겼구만." 


"구로개. 발리 자리나 옴기자. 아가도 둘엇는내, 하루애 두 본 들을 건 못되눈 곳 갓도라." 


"너도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니 다행스럽군. 그냥 거기로 가지 뭐." 


둘은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 빠른 걸음으로 광장 입구를 향했다. 가는 길에 아니나 다를까 싸이랭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귀막이 두 개를 그녀에게 전해주고 서둘러 나도 꽂았다. 사실 하찮은 귀막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길바닥에서 허우적 대는 인간들의 장갑이나 다를 바 없는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일정한 리듬을 지닌 음악이 점점 커져가고는 살떨리는 여자의 음성이 귀를 강타한다. 교리를 외우는 저 목소리. 그리고 이어 온 나라가 그야말로 땅바닥에서부터 아우성에 휩싸인다. 낯익은 술집으로 가는 길목은 온통 광기 어린 표정으로 심각하게 소리지르며 절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매워져서 하나하나 피하면서 걷기에 걸음걸이는 더욱 더디어질 수밖에 없다. 




6. 


우울한 분위기의 술집. 조명이 어둡지는 않으나 술을 들이키는 사람들과 주인, 그리고 오가는 종업원이 자아내는 느낌은 그리 부드럽지마는 않다. 사람들이 바글대는 구석을 둘이 삐져들어가 어렵싸리 좁은 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작은 나무의자에 앉았다. 


공간은 그리 좁은 편은 아니나 어디선지 기어들어온 무리들 때문에 여기는 늘 혼잡하기 짝이없다. 깔깔대는 여자 웃음소리에 섞여 어디선지 모르게 남자의 흐 느끼는 소리까지도 들려온다. 담배연기에 덮인 이 특이한 공간은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아울러 술과 담배로써 잠시 피로를 잊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다.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 남긴 채 떨어진 탁자 위에는 누군가가 장난스레 남겨놓은 낙서가 눈에 들어온다. 


'난 돈이 조아' 


바깥세상에서의 분노를 참지 못하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 인간의 - 힘부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한탄하는 곳이다. 어릴 때의 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껍질만으로 삶을 이어나가려면 그 짐을 길바닥에 뿌려놓지 않는 한, 여기서 이렇게 망각을 즐기며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술잔을 기울인다. 


스트레스? 이는 망각이 아니라 향수의 대상물이다. 대를 위한 진취 속에서 필 요악으로 나타나는 것이 곧 스트레스이며, 만일 필요악을 위한 생이라면 그 틀 속에 박혀있는 사람 자체가 광대나 다름없다. 한 때는 권력의 부활을 꿈꾼 자도 있으며, 다른 교리를 깨우치려 애 썼던 자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정 반대의 논리를 가진 사람들과 이리도 슬프게 술을 마시고 있지 않는가. 여기는 어떤 의미에서 완벽한 천국이다. 인간과 인간이 대립점의 해소로 인한 슬픔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천국이란 환희와 이유 모를 기쁨으로 아우성치는 곳만은 아니리라. 


"과연,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군. 여긴 언제 오나 분위기가 낯익어. 마치 내가 태어난 곳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난 몰라. 단지 요기 분이기가 괸찬아소 구래. 요줌운 사람둘이 우는 골 보기 힘둘지 안니? 물론 나도 울지 안눈 곤 독갓지만......" 


희미하게 바깥에서의 스피커 소리가 여기 지하 5층까지 밀려온다. 지금이야 거의 국가적인 행사이기에 그들을 보고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자들은 없으나, 그들 또한 여기 이렇게 있는 이들에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구나조나, 준비하고 잇다눈 논문 준비눈 잘 되고 잇니? 맨날 조사다 자료수 집이다 하묘 요기조기 돌아다니돈대." 


"잘 되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조급한 심정을 달래기 위한거지 뭐. 지금은 간단한 실험준비를 하고 있어." 


"실홈? 그러타몬 가고에 폰지라도 띠우갯다눈고니?" 


"넌 가끔 그럴 때를 보면 그루티스를 능가하겠어. 대단한 상상력이야." 


"니가 골치아푼 논문울 쑤기 시작햇다눈 곤 주이애소 다 아눈 사실이고, 실홈이라 해밧자 솔마 구 논문애 실험간이라도 구릴 것 갓진 안찬아? 기껏해소 가고로 폰지룰 띠우눈 일 정도갯지. 아니몬 CD 몃 장이라도 보내려고 구로니?" 


"아니, 물론 CD를 쓰면 화상과 함께 음성까지도 보낼 수는 있겠지만, 지금도 수시로 사양이 바뀌는데 당시의 기기에서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리고 또한 너무 상세한 지금 세상을 과거로 보낸다는 일이 그리 유익할 것 같지는 않고, 그렇게 되면 그루티스한테 당장 걸리고 말거야." 


"이재 실홈도 끗나몬 '옛날에는 말이야' 라눈 니 입보룻도 조금운 고초질까? 니 모리애소눈 오디 요줌 사람둘울 이해하료눈 생각이 업수니, 원." 


"그건 착각이야. 어떻게 지금을 이해 못하고 과거를 말할 수 있지?" 


"야, 내 말이 바로 구 말이야. 노룰 보먼 가거도착중......이라눈 말이 재대로 마줄지 모루지만, 아무툰 현재애 대한 부종하구 인식애 대한 외곡이 심해. 아니지, 단순히 현재애 대한 부종이라기 보다눈 시각이 조굼 유볼나다고 할까. 아무툰 조굼 재대로 된, 다시 말해소 노와 다룬 시각울 가진 만운 사람둘울 이해하료고 해바. 애룰 둘오 새나라촌애 대한 인식도 구래. 노애 대한 생각울 보리라는 곤 아니지만, 존재애 인정부토 시작해소 일종종도 궁종족인 축면도 바라 보아야 하지 안겟니?" 


그는 잔잔히 울려퍼지는 JUKE BOX 음악소리와 담배연기로 그녀의 목소리를 가려본다. 




7. 


"......습니다. 


너무 글이 길어진 것 같군요. 아무래도 설명문이라 딱딱한 문체이다 보니 읽으시기에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희들의 구체적인 생활모습이나 환경 등을 조금은 매끄럽게 담아보고도 싶었으나, 결국 이런 재미 없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글을 읽고 난 후에 어떤 행동을 하셔도 결국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저 읽고 그 자리에서 잊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으며, 그러는 편이 서로에게 보다 도움 이 되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이 편지 마지막 장 뒷면에 가능하시다면 지금 살고 계시는 세상에 대해 간략히 적은 후, 편지를 보내드린 봉투에 넣어 다시 들어있던 우편함에 꽂아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편지지를 얌전히 접어 봉투에 넣은 후 식은 생강차를 뒤로 했다. 모종의 해답을 얻으려는 생각 없이 그저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빈 머리를 안은 채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탔다. 


하마터면 놓칠뻔한 정류장을 간신히 내려 건물 입구까지 걸어와 마치 무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다시 가방에서 봉투와 볼펜을 꺼내 들고는 편지를 꺼내어 마지막장 뒷면에 보낸 이가 원했던 글을 쓰려했으나, 결국 나로서는 한 줄 밖에 쓸 수가 없었다. 


다시 내 우편함에 넣은 후 방에 들어갔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시금 1층으로 내려와 우편함을 보자 그 새에 이미 봉투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8. 


"땡." 


문득 눈앞을 보니 낯익은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 텅빈 엘리베이터에는 날씨 때문인지 파리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아늑한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폐소에 의한 공포 보다는 조금은 친숙해진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며 1층 단추를 눌렀다. 


이미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진 철판상자는 가벼운 진동을 일으키며 가속을 시 작하여, 마치 무중력 상태로 나를 만들려듯 하강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안락한 등속운동으로 이어졌다. 


찝찝한 생각에 잠기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현관문으로 걸어 나가며 무심코 살짝 우편함을 보니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빈 우편함 앞에 잠시 서며 머리 속을 맴도는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결국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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