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노 쥬자/살아있는 창자

살아있는 창자 - 한국어

관 리 인 2018. 5. 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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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창자(生きている腸)

운노 쥬자(海野十三)

번역 : 홍성필


기이한 의대생

의대생 후키야 류지(吹矢隆二)는 그 날도 아침부터 창자 생각만 하고 있었다.

오후 3시를 알리는 시계가 울리자 그는 외출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고가 철도 밑을 집처럼 개조한, 매우 독특한 주택이었다.

그런 색다른 집에 살고 있는 후키야 류지라는 인물이, 이 또한 매우 색다른 의대생이어서, 조수도 아닌데도 의과대학에 벌써 7년이나 재학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둘도 없는 장기 의대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그가 과목별 학과시험 중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과목만 치르기로 하고, 절대 욕심을 내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입학 이후 7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아직 불합격 과목이 다섯 과목에 이른다.

후키야는 대부분 학교에 가지 않았고, 대개는 그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독특한 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집을 들여다본 사람은 아마도 세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은 집주인이며, 다른 한 사람은 그가 지금부터 창자에 대해 전화를 걸려고 하는 인물 ― 즉 쿠마모토(熊本) 박사 정도이다.

그는 창백한 얼굴 위에 사자처럼 긴 더벅머리를 얹혀놓고 보기 드물 만큼 마른 몸매에, 반들반들 길이 든 금단추 달린 검은 제복을 입고서 역전 공중전화박스로 다가갔다.

그가 전화를 거는 곳은 남성 재소자 2,700 명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 부속병원이었다. 여기서는 여성 간호사를 두지 못하게 되어 있어 모두 남성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남성 죄수에게 여성을 보이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네에. ○○교도병원(矯導病院)입니다"

"○○교도병원인가? ―― 흠. 쿠마모토 박사를 불러주게. 내 말인가? 나는 그냥 이노마타라고 전해주게나"

그는 왠지 가명을 쓰며 건방진 말투로 교환수에게 전화선을 통해 겁을 주었다.

"그래, 쿠마모토 군인가? 나는 ―― 말 안 해도 알고 있지? 오늘은 괜찮겠어? 틀림 없겠지? 정말로 창자를 준비해주었다는 말이군. ―― 남쪽에서 세 번째 창문이었지. 만약 잘못되면 나도 생각이 있다구. 그건 아마도 자네가 직장을 잃고, 다음은 밥줄이 끊기겠지. ―― 아니, 협박이 아니야. 자네는 항상 ‘예, 예,’ 하며 내 말을 따르면 돼. ―― 지금 간다. 반드시. 오늘 11시에 말이야."

거기서 그는 누가 들어도 언짢게 여길 만한 통화를 마쳤다.

쿠마모토 박사라고 하면 사람들로부터 그 훌륭한 인격으로 칭송 받고 있는 ○○교도병원 외과 과장이었다. 그는 가정에 마네킹과도 같은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 있으며, 또한 적지 않은 재산도 있는, 마치 행복 그 가체를 그림으로 그린 듯한 의학자였다.

그러나 왠지 후키야는 그런 박사를 무참히 짓밟아버린다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물론 그의 말에 의하면 쿠마모토 박사 같은 인간은 말도 안 되는 사기꾼이며, 하늘을 대신해서 마음껏 괴롭혀줄 필요가 있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토록 괴롭히고 있는 반면 의대생 후키야는 학력에 있어서 몇 발자국 앞서있는 쿠마모토 박사를 십분 이용하여 적지 않은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쿠마모토 박사를 항상 노예처럼 부려먹고 있었다.

"창자는 준비되어있겠지?"

방금 전 후키야는 그런 전화를 걸었으나, 이를 보면 그는 쿠마모토 박사에 대해 또다시 위협수단을 쓰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창자를 준비"한다니 무슨 뜻일까. 그는 지금 무엇을 계획하고 또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오늘 11시가 되어야만 그 답은 나올 것이다.


세 번째 창문

이미 오후 10시 58분이었다.

○○교도병원의 작은 철문에 한 대학생의 몸이 퉁 하고 부딪혔다.

"일찍도 닫았군."

한 마디 내뱉고는 철문을 밀었다.

철문은 쉽게 열렸다. 열쇠를 잠그는 것이 아니라 철문 밑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살짝 받혀놓았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쇼."

수위가 후키야의 인사를 받고는 넙죽 고개를 숙인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권위자인 쿠마모토 선생을 함부로 대하는 의대생이니, 외모는 볼품없으나 쿠마모토 박사의 고향 어른 자손이라도 되나 하고 좋게 해석하여, 따라서 이 철문에서는 항상 정중하게 경례를 붙이곤 하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허름한 옷차림에 사자 머리를 한 의대생 후키야 류지는 수위 앞을 지나치자 어두운 병원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어두운 마당을 부엉이처럼 신속하게 지나갔다. 이윽고 눈앞에 제 4병동이 나타났다.

‘남쪽에서 세 번째 창문이었지.’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창문 밑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귤상자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이것도 쿠마모토 박사가 배려해준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발 받침대로 삼아 무거운 창문을 위로 끌어올렸다.

창문이 조용히 열렸다. 쿠마모토 박사가 사전에 창문을 받치는 롤러에도 기름을 쳐놓았기에 이처럼 쉽게 올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의대생 후키야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탁자 위에 놓여진, 상당히 굵고 길이 1미터 정도 되는 유리관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 들어 있다."

의대생 후키야는 그 둔탁하고 무거운 유리관을 담장 위에 있는 가로등에 비추어 보았다. 유리관 안에는 맑은 액체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 속에는 회색이라고도 연보라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기이한 빛깔의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래. 갖고 싶었던 것을 이제서야 손에 넣을 수 있게 됐어. 이건 정말 대단한걸?"

후키야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서 창문을 본래대로 닫았다. 그리고 훔쳐낸 굵은 유리관을 오른손에 지팡이처럼 들고서 땅바닥 위로 내려왔다.

"정말 밤에 산책하는 건 기분이 좋군요."

철문 앞을 지나칠 때에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인사를 했다. 그가 손에 넣은 물건이 워낙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아이구, 조심해 가십시오."

수위는 단단히 긴장하며 인사했다.

문을 나서자 그는 굵은 유리관을 어깨에 매고 슬리퍼 차림으로 부지런히 걸어갔으며, 세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거리는 피로에 지쳐 쓰러진 것처럼 조용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전등을 켰다.

"좋아. 아주 훌륭해. 정말 대단한 창자야."

그는 유리관을 들어올려 불빛에 비춰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약간 푸른 빛이 나는 액체 속에 그가 말하는 ‘창자’라는 것이 물컹거리며 들어있다.

"어, 살아있다."

연보랏빛 창자를 자세히 보니 꿈틀꿈틀 움직인다. 링거씨액 속에서 굼실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창자!

의대생 후키야가 쿠마모토 박사에게 지난 1년 동안 끈질기게 요구한 것은 바로 이 살아있는 창자였다. 다른 청은 들어주어도 이 살아있는 창자에 대해서만은 좀처럼 들어주지 않았다.

"이봐, 어쩌자는 거야. 네가 있는 곳에는 남성 재소자가 2,900명이나 있잖아. 그 중에는 사형이 될 놈도 있고 맹장염에 걸려 죽는 놈도 있겠지. 그 중에서 불과 1미터 정도의 창자를 빼낼 수 없을 리가 있나. 이것 보라구.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걸 거시기하는 수가 있어. 그게 싫다면 어서 내 말을 따르라구."

이렇게 협박한 결과 1년여 만에 간신히 애타게 기다리던 살아있는 창자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는 왜 이토록 징그럽기 짝이 없는 살아있는 창자를 원했는가. 그것은 그의 편집증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링거씨액 속의 생물

살아있는 창자 ㅡㅡ 라고 하는 것이 문헌상으로는 그리 진귀하지 않다.

생리학 교과서를 보면 링거씨액 속에서 살아있는 모르모트 장기, 토끼 장기, 개의 장기, 그리고 인간의 장기 등 너무나도 많이 적혀 있다.

표본으로서도 살아있는 장기는 그리 보기 드문 것은 아니다.

의대생 후키야가 지금 남몰래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은 이 훌륭한 크기를 가진 대장이 지팡이보다도 길어, 링거씨액이 든 1미터짜리 유리관 안에서 활발하게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훌륭한 것은 아마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참으로 우리 쿠마모토 박사도 대단하다며 그는 유리관을 보고 근엄하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창자를 방 중앙에 장식했다. 천장에 끈을 걸어, 거기에 유리관 입구를 매달아 놓았으며, 아래쪽에는 유리관 받침대를 만들었다.

곰팡이 냄새 나는 의학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그리고 알 수 없는, 녹이 슨 수술도구나 의료기기로 가득 찬 의대생 후키야의 방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기괴괴한 모습이었으나 지금 이 ‘살아있는 창자’를 들여놓음으로써 그 모습은 더욱 괴기스러워졌다.

후키야는 천장에 매달아놓은 유리관 앞으로 높은 세발의자를 가져갔다. 그는 그 앞에 살짝 앉아 매우 감명 깊다는 듯 팔짱을 끼고서 맑은 액체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이한 인체의 일부를 응시하고 있다.

꿈틀, 꿈틀, 꿈틀.

가만히 보면 창자는 인간의 얼굴로써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 온 몸을 비틀어가며 움직인다.

"이상한 노릇이야. 이 녀석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인간보다도 수준 높은 생물체처럼 느껴져."

의대생 후키야는 문득 논리학을 초월한 고차원적 소견을 말했다.

그로부터 후키야는 그 자신이 마치 살아있는 창자 자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리관 앞에 석고상처럼 가만히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창자로부터 눈을 떼려 하지 않았다.

식사도, 조금 저질이긴 하지만 배설마저도 그는 최소한도로 줄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과 1, 2분조차도 그는 살아있는 창자 앞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가 사흘 동안 이어졌다.

그 다음 일이었다.

그는 연일 긴장했던 생활에 지쳐 어느새 세발의자 위에서 앉은 채로 잠이 들었는지, 본인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방 안은 캄캄했다.

그에게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는 곧바로 의자에서 내려와 전등 스위치를 켰다. 귀중한 살아있는 창자가 설마 도난 당하지나 않았을까 했던 것이다.

"휴, 다행이야."

창자가 들어있는 유리관은 여전히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앗! 큰일이다. 창자가 움직이질 않아!"

후키야는 쿵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찌었다. 그는 미친 듯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칠흑과도 같은 절망!

"자, 잠깐 ㅡㅡ"

그는 혼자서 얼굴을 붉히며 일어섰다. 그는 퓰렛 주사기를 손에 들고 세발 의자 위로 올라갔다.

유리관 속으로 맑은 액체를 퓰렛 주사기 가득히 빨아들이고는 그것을 배수구에 버렸다.

그 다음 약품 케이스 안에서 1만 배 콜린(choline)이라고 붙어있는 병을 가지고 내려와 빈 퓰렛 주사기를 꽂았다.

액체가 아래로부터 빨려 올라 온다.

그는 신속하게 다시 세발 의자 위로 뛰어올라 그 콜린이 든 퓰렛 주사기를 조용히 유리관 안으로 주입시켰다.

액체는 조용히 링거씨액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유리관 속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의 눈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ㅡㅡ 움직이기 시작했어."

창자는 또다시 꿈틀, 꿈틀, 꿈틀 하고 굼실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콜린을 잊고 있다니 나도 정신이 없었나보군."

그는 소녀처럼 쑥스럽다는 듯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창자는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곧바로 훈련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도중에 죽어버릴지도 모르겠어."

그는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벽에 걸어두었던 수술복을 입기 시작했다.


훌륭한 실험

그는 딴 사람이 된 것처럼 활발해졌다.

"자, 훈련이다."

무슨 훈련을 하려는 것인가. 그는 방안을 돌아다니며 사관냉각기나 청정기, 발판 등 여러 가지 기구들을 끌어 모았다.

"자, 의학사상 최초의 대실험을 난 기필코 성공시키고야 말 테야."

그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이어서 레토르트, 금속망사, 분센버너 등을 가지고 왔다.

그러고서 그는 모아온 도구 한 가운데 서서, 마치 무대 도구담당처럼 실험용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얼마 있자 유리와 금속부품들, 그리고 액체들로 이루어진 조립품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그 기구들은 아무래도 살아있는 창자가 든 유리관을 중심에 둘 것처럼 보였다.

전기 스위치가 들어가자 파일럿 램프가 파랑에서 빨강으로 바뀌었다. 방 구석에서는 딸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펌프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대생 후키야 류지의 두 눈은 드디어 사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시작하려 하는가.

전기를 통해 분센버너에도 연푸른 불이 들어왔다.

살아있는 창자가 든 유리관 안으로 두 개의 가느다란 유리관이 꽂혀졌다.

그 중 한 쪽에서 부글부글 하며 작은 기포가 나왔다.

후키야 류지는 큰 화판 같은 것을 목에 끈으로 걸고는, 거기에 연필끝을 핥으면서 전류계나 비중계, 그리고 온도계 앞을 번가라서 왕래하며, 목에 건 방안지 위에 색연필로 표시를 적어갔다.

빨강, 파랑, 초록, 보라, 검은 색 곡선이 조금씩 방안지 위에서 뻗어간다.

그러는 동안에도 후키야는 유리관 앞으로 고개를 돌려 계속 요동치는 창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한 채 끈질긴 실험을 계속했다. 과연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끈기였다.

아침 6시와 저녁 6시, 이 두 시간대에 창자의 상황을 비교하면 분명 조금씩 변화가 보인다.

나아가 12시간이 더 지나면 다시 어떠한 변화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험이 계속해감에 따라 링거씨액 온도는 조금씩 상승하여, 이와 함께 링거씨액 농도는 조금씩 감소해갔다.

실험 제 4일째에 있어서는 창자를 수용하고 있는 유리관 내부에 들어있던 액체는 대부분 물처럼 되었다.

실험 제 6일째에는 유리관 내부에 액체가 사라지고, 그 대신 연분홍색 가스가 조금씩 구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유리관 안에는 액체가 없어졌다는 것도 모르는지 그 창자는 여전히 꿈틀꿈틀 요동치고 있었다.

의대생 후키야의 얼굴은 긴장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흠. 흠. 이제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세계 의학사를 멋지게 깨고도 남았다. 가스 안에서 살아있는 창자! 아아, 이 얼마나 위대한 실험인가!"

그는 연이어 오래된 장치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설치했다.

실험 제 8일째, 유리관 내부에 있던 가스는 무색투명해졌다.

실험 제 9일째, 분센버너가 꺼지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가스가 멈췄다.

실험 제 10일째, 모터 소리까지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실험실 내부에는 폐허처럼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정확히 오전 3시였다.

그 이후 24시간 동안 그는 신중하게 지켜보며 그대로 방치시켜놓았다.

24시간이 지난 그 다음 날 오전 3시였다. 그는 천천히 유리관을 들여다보았다.

유리관에 들어있는 창자는 지금 상온온도인 대기중에서 꿈틀꿈틀 활발하게 요동치고 있다.

의대생 후키야 류지는 그가 고안한 독자적인 훈련법으로써 세계 어느 의학자도 시도해보지 못한, 대기중에서 창자를 생존시키는 실험에 드디어 성공한 것이었다.


동거생활

후키야는 눈앞에 놓인 탁자 위에 누워있는, 살아있는 창자와 놀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살아있는 창자는 매우 놀랍게도 감정과도 같은 반응조차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스포이트로 조금씩 설탕물을 살아있는 창자에게 한쪽 입을 통해 넣어주자, 장은 곧바로 활발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즉시 창자 일부가 그가 있는 쪽으로 뻗쳐온다.

"설탕물을 더 달라"

마치 그렇게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 설탕물을 더 먹고 싶니? 물론 주지. 하지만 아주 조금만 더 줄 거야."

그러면서 후키야는 다시 설탕물 한 방울을 살아있는 창자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놀라운 고등동물이라니’

후키야는 남몰래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이처럼 그가 훈련한 살아있는 창자를 눈앞에 두며 놀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그는 마치 꿈인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부터 그는 한가지 비약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창자 중 한 조각이 링거씨액 안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면 링거씨액이 아닌 다른 영양매체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핵심은 링거씨액이 살아있는 창자에게 공급하는 생존조건과 동등한 것을 다른 영양매체에 의해서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인간의 창자가 만약 살아있다면 신경 또한 있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듯 체질상 변화도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그는 살아있는 창자에게 적당한 영양을 공급할 수만 있다면 그 창자를 대기중에서 생활하게끔 만드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ㅡㅡ 이와 같이 상상으로 추리를 발전시켜나갔다.

그와 같은 기본관념을 가지고 그는 상세한 곳에 이르는 연구를 계속해 나아갔다. 그 결과 약 1년 전에 비로소 자신감과도 같은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실험은 드디어 대성공을 이루어냈다. 더구나 비교적 뜻밖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수고만으로 말이다.

사색으로 괴로워하기 보다는 우선 손을 써보는 자가 이긴다고 어느 실험학자는 말했다. 그건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사색 중에 생각해낸, 보기에 따라서는 황당무계한 ‘살아있는 창자’가 이렇게 눈앞에 놓인 탁자 위에서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도무지 꿈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서특필해야 할 점은 이렇게 그의 손에 의해 대기 중에서 사육되기 시작한 창자가, 그가 지금까지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흥미로운 반응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금도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살아있는 창자가 설탕물을 더 달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점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것 만이 아니다. 창자와 놀면서 그는 이 창자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가느다란 금속 스틱 끝을 살아있는 창자에 대고는 그대로 600메가 사이클 정도 되는 진동전류를 흘려 보내자, 살아있는 창자는 갑자기 미끈미끈한 점액을 토해낸다.

한편 후키야는 살아있는 창자 속 내벽 일부에 소리굽쇠로 만든 정확한 진동수에 맞추어 음향을 순서에 따라 대 본 결과, 그 내벽 일부가 음향에 대해 매우 민감해졌다는 점도 발견했다. 우선 그 곳에 인간의 고막 같은 능력이 생겨난 듯하다. 그는 이윽고 살아있는 창자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고 믿었다.

살아있는 창자는 대기중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표면은 점점 건조해졌다. 그리고 표피와도 같은 것이 몇 번이고 떨어져 나갔다. 그러고 나자 살아있는 창자 표면은 조금 빛 바랜 사람 입술과 매우 흡사한 피부로 덥혔다.

살아있는 창자 탄생 50일경 ㅡㅡ 탄생이란 이 창자가 대기중에서 서식할 수 있게 된 날을 말한다 ㅡㅡ 에 있어서 그 신종 생물은 의대생 후키야 류지가 사는 방 안을, 탁자 위건 책 위건 간에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봐 치코, 여기에 설탕물을 놔뒀다."

‘치코’란 살아있는 창자에 대한 애칭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후키야가 설탕물이 담긴 접시가 있는 곳에서 손뼉을 치면, 치코는 반가운 듯 등(?)을 산처럼 부풀어 올렸다. 그리고 치코에게 식욕이 생기면 그 생물체는 혼자서 천천히 접시 쪽으로 기어가서는 쩝쩝 소리를 내며 설탕물을 마셨다. 그 행태는 매우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의대생 후키야 류지는 살아있는 창자인 ‘치코’에 대한 성장실험을 일단락 짓고, 드디어 이제부터 대논문을 써서 세계 의학자들을 졸도시키려고 생각했다.

어느날 ㅡㅡ 그날은 치코 탄생 120일째 되는 날이었다. 후키야는 드디어 다음날부터 대논문을 집필하기 시작하기로 하고, 그 전에 조금 외출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어느새 가을은 깊어가고 바깥은 플라타너스 낙엽이 바람과 함께 거리에 흩날리고 있었다. 점점 추워진다. 후키야 혼자라면 모를까 올해 겨울은 치코과 함께 지내야 하므로, 쓸만한 전기난로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예전에 사 모아두었던 통조림도 이제 동이 났기에 그것 또한 보충해두어야 한다. 치코를 위해 여러 가지 수프를 사 가자.

그는 근래 백 수 십일 동안 한 발자국도 집을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 나갔다 올게. 설탕물은 탁자 위 한 켠에 많이 만들어놓았으니까."

그는 갑자기 바깥이 그리워졌기에 치코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대충 하고 출입문을 잠그고는 거리로 나선 것이었다.


오산(誤算)

의대생 후키야 류지는 무려 7일간이나 바깥에서 놀고 지냈다.

한 발 문을 나서자 바깥에서는 화려한 환희와 위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후키야의 본능은 급속도로 등줄기를 타고 홍수처럼 넘쳐 나왔다. 그는 본능이 명하는 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락의 거리를 휘지고 다녔다. 그리고 7일째가 되어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치코가 식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조금 걱정되었다. 날짜를 세어보니 그 설탕물도 이제는 바닥났음 분명하다.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그는 또다시 환락에 빠졌다.

그날 저녁,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발걸음을 ○○형무병원으로 돌리고는 쿠마모토 박사를 방문했다.

박사는 후키야가 너무나도 사람냄새가 나는 인간으로 변하여 응접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놀랐다.

"예전에 말했던 그 일은 어떻게 됐죠?"

박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살아있는 창자 말이지. 그 점에 대해서는 머지 않아 발표할 거야. 으흐흐흐."

"그 물체는 며칠 정도 움직이고 있었나요?"

"흐핫. 머지 않아 발표한다니까. 그러나 쿠마모토 군. 창자라는 놈은 감정을 나타내더군. 뭐라고 할까. 내게 애정 같은 감점을 표현하는 거야. 정말이라니까. 나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구. ㅡㅡ 그런데 그건 대체 어떤 재소자한테서 얻어낸 것인가? 알려주게."

"……"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다면 박사가 대답하지 않거나 할 경우 버럭 화를 내곤 했으나 그날 따라 후키야는 매우 기분이 좋은 듯, 목을 더듬으며 싱글벙글 웃고 있다.

"그리고 말이야 쿠마무토 군. 호르몬에 관한 문헌을 정리해서 내게 주지 않겠나. ㅡㅡ 호르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병원에 있던 그 미인 교환수는 어떻게 됐나? 스물 넷이나 먹었으면서 독신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그 아가씨 말이야."

야부키는 어딘지 모르게 징그러운 웃음을 띄우며 쿠마모토 박사를 쳐다보았다.

"아, 그 아이요……"

박사는 순간 안색이 변했다.

"그 아이는 이미 죽었습니다. 맹장염이었거든요. 상, 상당히 오래된 일입니다."

"그래? 죽었어? 죽었다면, 어쩔 수 없지."

후키야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아가씨에 대해 흥미를 잃은 듯한 말을 했다. 그리고 다시 오겠다며 총총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새벽 1시.

의대생 후키야는 그제서야 8일째에 집 앞으로 돌아왔다.

그는 겸연쩍게 출입문 열쇠구멍으로 열쇠를 집어넣었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놀았나. 살아있는 창자 ―― 그렇지. 치코라는 이름을 붙여줬었지. 치코는 아직 살아있을까. 죽어 있더라도 상관 없어. 어쨌든 세계 의학자들을 놀라게 할 만한 논문자료는 이제 충분이 모아놓았다.

그는 출입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기에 섞여 어딘지 모르게 여자 체취와도 같은 것도 느낀 듯했다.

‘이상하다’

방안은 캄캄했다.

후키야는 손을 더듬어서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순간 환하게 밝았다.

그는 쓸쓸한 듯한 눈으로 실내를 돌아보았다.

치코의 모습은 탁자 위에도 없었다.

‘이상하다? 치코는 죽었나? 아니면 틈새로 해서 바깥으로 도망쳤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으나,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나갈 때 치코를 위해 만들어 놓은 설탕물이 담긴 접시 쪽으로 눈을 돌렸다.

유리 접시 안에는 설망물이 아직 절반 정도나 남아 있었다 그는 놀라운 소리를 냈다.

"어? 지금쯤이면 설탕물도 바닥이 났을 줄 알았는데 ―― 치코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바로 그 순간.

후키야 눈 앞에 무언가 흰 지팡이와도 같은 것이 기이한 신음소리를 내며 휙 날라왔다.

"으악!"

소리도 낼 틈도 없이 그것은 후키야 머리에 휘감겼다.

"으으윽 ――"

후키야의 목은 강력한 힘으로 조여졌다. 그는 허공을 잡으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의대생 후키야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반 년이나 지난 후였다. 일 년치씩 내기로 되어 있는 집세를 주인이 독촉하러 왔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의 시신은 이미 백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후키야의 사망원인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또한 그가 남긴 ‘살아있는 창자 치코’에 관한 위대한 실험에 대해서도 누구 하나 아는 자가 없었다.

‘살아있는 창자’에 대한 실험은 모두 백지가 되고 말았다.

단 한 사람, 쿠마모토 박사는 후키야에게 제공한 ‘살아있는 창자’에 대한 사실을 간혹 떠올리곤 하였다. 사실 그 창자는 어떤 재소자부터 얻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창자’는 도대체 누구 뱃속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형무병원에 근무하던, 스물 네 살 먹은 처녀 교환수로부터 얻어진 창자였다. 그녀는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 때 집도한 의사가 쿠마모토 박사였다고 하면 그 다음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처녀 뱃속에서 절단된 ‘살아있는 창자’가 의대생 후키야의 목을 졸라 그를 죽인 사실은 그의 죽음을 남몰래 기뻐하는 쿠마모토 박사도 모른다.

더군다나 ‘살아있는 창자’ 치코가 후키야와 120일에 걸친 동거생활 동안 그에게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8일만에 돌아온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후키야의 목을 향해 달려들어, 불행하게도 후키야를 목 졸라 죽이게 하고 말았다는 사실 또한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 ‘살아있는 창자’가 설마 그와 같은 여성 몸에서부터 나온 창자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의대생 후키야 류지야말로 대단히 불행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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